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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정쥰 Mar 28. 2021

호주 워홀러 그 이후, 솔직한 고민

내가 전공을 버린 이유

호주 워홀러의 신분에서 벗어난 지 벌써 1년 남짓의 시간이 흘렀다. 코로나로 인해서 매일매일의 시간은 특별할 것 없이 더디게만 가는 것 같은데, 되돌아보니 이렇게나 시간이 지나 있다.

나에게 워홀이란 그저 즐거웠던 추억으로 덮어놓기보다는 인생의 또 다른 트리거(trigger)로 작용했기 때문에 한 번은 꼭 글로 풀어내고 싶었던 주제이기도 했다.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느라 남기지 못했던 나의 지난 워킹 홀리데이 시절에 대한 회고에 앞서, 1년간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뒤, 그 이후 솔직한 고민에 대해 주절주절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나라는 사람은 게으를 때는 한 없이 게을러서 막상 시간이 많을 때에는 해야 할 일을 덮어두고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내버려 둔다. 시간이 많아서 차고 넘치는 워홀러 시절에는 하라는 미래 계획은 1도 안 하고 맘 편히 살았더랬다.

언제나 평온한 플라그스타프 가든.

솔직한 마음으로 호주에 있었을 때는 그때의 '평화로움'에 심취해있었다. 따사로운 햇살과 녹음이 우거진 멋들어진 공원, 맛있는 커피, 높은 시급, 나를 괴롭히던 취업이라는 현실에서의 해방 등등. 당시 바리스타와 서빙 일을 하던 나는 어떻게든 비자를 늘려 호주에 더 오래 있어 보려고 발악을 했다.

예를 들어 워홀 비자를 갑자기 원래의 계획에는 없던 학생비자로 바꾸어 비자 연장을 해볼까라는 생각에 갑자기 상담을 받아본다던가.

그런데 그게 또 내가 어렴풋이 꿈꾸던 미래와는 전혀 상관없는, 학비가 가장 저렴하다는 이유에서 혹했을 뿐인 요리학과를 알아본다던가, 멜버른보다 영주권 받기가 좀 더 쉽다고 하는 다른 주로 옮겨서 3-4년 죽은 듯이 일해서 영주권을 노려볼까-?라는 식의 정말 무언가 그냥 정말 호주의 삶을 '연장'하기 위한 지금 들어도 어처구니없는 계획뿐이었다.

이렇게 저렇게 하루에 열두 번은 방황했던 워홀의 끝물 시절, 결국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일단은 한국에 돌아왔는데, 이게 웬걸 한국에 돌아오고 나니 호주에 있을 때보다 길이 확실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자리 잡고 일하고 싶지 않았고,
해외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나만의 스킬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문화콘텐츠학과에 진학하여 몇 번의 인턴과 졸업 후에는 광고대행사에서 일했었지만, 막상 해외에 나가니 그런 경력들은 아무 필요가 없었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현지인 중에는 마케팅을 전공한 사람도 많았고, 그들은 영어가 모국어이다 보니 굳이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동양인을 채용해야 할 이유가 없었으며,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눈길조차 주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어떻게 하면 이 모든 고민을 뛰어넘을 만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지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주변 사람들을 한 명씩 만나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더더욱 해외에서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갔다. 그게 꼭 호주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나의 첫 목표는 기왕 이렇게 된 거 어디 가서나 환영받는 개발자가 되어보자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사실 바로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뛰어들기에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함과 두려움이 앞섰다. 이곳저곳 학원과 국비 수업을 비교해가며 무엇이 최선의 결정일지 고민하느라 꽤 시간을 보내며, 결국 내가 세운 결정은 먼저 '웹 퍼블리셔'로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까였다.

전공수업으로 디자인 툴과 영상 편집을 다룰 줄 알다 보니, Adobe에는 아예 무지한 사람은 아니었고 학부시절 팀 프로젝트로 기획하고 PPT를 죽어라 만들고 발표했던 일들이 떠오르는 것으로 보아 꽤 쓸만한 정도의 디자인 인사이트가 축적되어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신감에 근거한 타협점으로 볼 수 있었다.

그렇게 결심한 후 6개월 간의 uxui 반응형 웹 퍼블리셔 과정을 수료하고 2021년 3월, 현재는 웹 퍼블리셔로서 일하기 시작했다. (꽤나 비약했지만 웹 퍼블리셔 국비과정을 수강하던 과정에 대해서도 언젠가 적어보고 싶다.)

지금 돌아보니 이렇게 돌아오기까지 겪었던 경험들이 참 고맙다. 물론 전부 좋은 기억이라곤 말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이렇게 우리가 보내온 삶의 흔적이 어떤 형태로든 등장해 우리네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기도 하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모든 분들에게 마음속에서 진심으로 응원을 보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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