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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 Jan 15. 2024

맏이는 상상도 못 할 막내의 세계

남편 덕에 남들이 안 가는 길을 외롭게 가본다





남편은 삼 남매 중에 막내로 태어났다. 출생순위, 그것은 사람의 성격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준다고 믿는 나는 영락없는 K장녀로 책임감으로 똘똘 뭉쳐있다. 반면 남편을 보면 막내들 특유의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남들이 뭐라든 신경 쓰지 않는 그는 언제나 자신이 맞다고 믿으면 밀고 나가는 추진력을 갖췄다. 결국 그 일이 틀렸다고 해도 '아, 그럼 할 수 없지'의 자세로 유연하게 임해서 타격도 별로 입지 않는다. 덕분에 그에겐 새로움과 도전이 영역을 따로 두지 않는, 그야말로 문턱이 낮은 세계에 불과했다. 나에겐 거대한 장벽으로 느껴져 심호흡을 하고 벽돌 하나부터 쌓아야 하는 일도 그는 무작정 자신의 높이뛰기 실력을 믿고 대뜸 뛰어보는 식이었다. 분양권을 산 아파트를 단기임대 하자는 제안도 남편은 마치 작은 웅덩이를 건너듯 별 거 아닌 것처럼 말했다.



"내가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입주장에는 전세가가 너무 낮아.

 전세가격이 오를 때까지 우리 단기임대를 해보자.

 일주일에서 최대 3개월까지 임대를 주는 거지"



"어? 단기임대를 주자고?"



모든 일의 시작과 끝을 책임감에게 붙들려 있는 나에게 '단기임대'는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단어였다. '단기'가 가지고 있는 불확실성을 견뎌야 하는 일이 생각만 해도 힘들었다.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계속 설명을 이어나갔다.


"요즘 삼삼엠투를 통해서 단기임대 많이 해. 이사날짜가 안 맞는 사람들이 머물기도 하고 해외에서 잠시 한국에 살러온 사람들이 지내기도 하고. 내가 분석해 봤는데 근처에 대기업이 있고 동네가 개발단계여서 미리 살아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거야! 수요층이 있어"


남편은 확신에 차서 말했지만 월세도 전세도 아닌 단기임대는 아무래도 걱정되는 부분이 많았다. 게다가 '피터팬의 방 구하기'도 아니고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삼삼엠투'라는 어플을 통한 단기임대라니! 시대를 앞서가는 남편의 생각을 따라가려니 가랑이가 찢어질 판이었다. 입 안엔서 맴도는 질문이 하나 둘이 아니었지만 가장 시급한 것부터 물었다.



"셰어하우스 잊었어? 예산이 천만 원이 넘었다고!"   


단기임대는 월세랑은 또 다른 세계였다. 갈아입을 옷만 달랑 들고 며칠 머물다가는 식이었다. 그것은 곧 숟가락 하나까지 우리가 다 채워 넣어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이미 셰어하우스 때 집을 채울 예산을 세우다가 포기한 적이 있었기에 그게 쉽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24평이라곤 해도 방세칸과 거실을 채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으며 단기임대로 전환하면 애초에 전세금으로 책정했던 금액을 또 대출받아야 했다. 어느 하나 만족스러운 구석이 없었다. 그러나 남편의 뜻은 강경했다. 그는 분명히 수요층이 있을 거라고 확신했고, 단기임대로 이자는 물론이며 이윤까지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혹시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의 월급으로 이자를 충당할 수 있다고 자신했으며 셰어하우스 때와 다르게 시몬스 침대와 최신식 가전을 포기하고 보수적으로 예산을 책정했다.



"예산은 300이야!"



다행히 에어컨 네대와 냉장고로 활용할 수 있는 김치냉장고, 옷장이 옵션으로 들어가 있었다. 침대는 하나만 넣으면 되고 소파와 식탁, 세탁기와 작은 티브이 하나면 충분하다며 남편은 예산을 겨우 300으로 세웠다. 그러더니 스스로를 기특하게 여기며 어떻게 하면 전세가가 오를 때까지 기다릴 수 있을지 메타인지를 하다가 생각해 낸 방법이라고 어깨를 으쓱했다. 



즌쯔....





그날로 메타인지에 이르기까지 혼자 고민해 왔을 남편의 시름은 내 것이 되었다. 그는 계획만 있지 감각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기 때문에 하루라도 머물고 싶은 집의 내부를 가꾸는 일은 모두 나의 차지가 되었다. 남편은 수요층이 있을 거라고 확신했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그 집을 누구나 오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앉아 시각화를 시작했다. 내 인생을 시각화해도 모자랄 시간에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를 집 내부를 상상하며, 그 집을 누구나 하루쯤 머물고 싶어지는 공간으로 만들 준비를 했다. 


하! 정말이지 하루도 바람 잘날 없는 인생이다. 세상에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나는 수없이 많은 실내인테리어 이미지들을 참고하며 남편의 손을 잡고 억지로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여 넣었다. 남편과 함께가 아니었다면 굳이 가보지 않을 세상으로. 그렇게 스트레스를 껴안았지만, 그로 인해 나의 세상이 넓어진다는 사실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예쁜 숟가락', '원형식탁', '코지인테리어', '이케아스탠드', '렌선집들이' 등 끝도 없는 검색어를 써넣으며 새로운 세계로 가는 벽돌을 하나씩 쌓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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