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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dac Jan 23. 2024

가끔 작업실처럼 출근하는 곳

테미살롱

작업실로 매일 출근하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 창밖으로 나무와 하늘이 보이고 천장이 높은 곳, 너무 춥거나 덥지 않을 것, 커다란 책상을 놓을 수 있도록 넉넉할 것, 앉자마자 일할 맛이 나도록 책상 위와 눈 닿는 곳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야 하고, 포근한 소파가 있을 것. 


작업실이 있다면 이런 곳이면 좋겠다고 방금 떠올려봤다. 진짜로 그런 공간을 찾아본 적은 없다. 갖고 싶다고 진심으로 생각한 적도 없다. 월세가 얼마일까? 가구 구성과 인테리어는? 전기세와 수도세를 포함한 유지비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나? 꿈조차 꾸어지지 않는다. 


작업실이 없어도 매일 글 쓰는 사람은 될 수 있었다. 나는 주로 집에서 쓴다. 책상에 좋아하는 천을 깔아 분위기를 냈다. 고인 기분이 들면 책상을 이리 저리 옮겨 본다. 손으로 일기를 쓰고, 휴대전화로 메모를 하고, 책상에 앉아서 컴퓨터로 글을 쓴다. 일주일에 한번은 한밭도서관에 간다. 반납기일 문자를 받고서 2주만에 갈 때도 있다. 도서관에서는 미리 골라둔 책을 찾거나 우연히 발견한 책을 빌려 온다. 완주와 전주의 도서관에서는 책을 읽다 온 적도 종종 있었지만 대전 한밭도서관에는 좋아하는 장소가 아직 없다. 


가끔은 카페에도 간다. 자발적으로 업무 개시가 도저히 되지 않을 때, 일하기 싫을 때, 종일 누워만 있고 싶을 때, 자꾸 기분이 가라앉을 때 일단 집밖으로 나선다. 그런데 아무 카페에나 간다고 기분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실내의 첫인상, 음료의 맛, 사람들 소리, 음악 소리, 기계 소리 등 모든 소리,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을 포함한 모든 것이 거슬리면 안 된다. 커피 한 잔 값을 치르면서 참 많이도 따진다 싶은데, 그래서 혼자 카페에 잘 안 간다. 이어폰과 귀마개로 철저히 준비 하고 스타벅스 같은 대형 카페로 가서 오랫동안 일하다 온 적은 있다. 도서관을 가끔 작업실로 이용한 건 돈이 들지 않았기 때문일 거다. 


대전에서도 집 근처에서 가끔 작업실로 사용할 공간이 필요했다. 근무태도가 좋을 때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책상으로 부지런히 출근을 했는데, 늘 그럴 거라 기대해서는 안된다. 도서관처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수소문했다. 그러면서도 조용히 오래 머물 수 있는 곳. 커먼즈필드, NGO센터, 테미살롱을 번갈아 방문한다. BS과학문화센터, 시립박물관, 청년벙커도 좋지만 조금 멀다. 어차피 멀리 가볼 거라면 다른 공공도서관도 한번 가봐야겠다. 

테미살롱은 옛 충남도지사 관사촌 테미오래의 관사들 중 한 채다. 다른 집들은 전시장이나 작가 레지던시로 쓰이고 테미살롱은 관람객 쉼터로 꾸며 놓았다. 월요일은 쉬고 10시부터 5시까지 문을 연다. 현관문을 열면 왼쪽에 작은 방 두 개, 오른쪽으로 거실과 큰방, 부엌이 있다. 방 창문을 닫아두면 답답하지만 거실은 라디오 소리가 시끄럽고 오가는 사람들이 신경쓰여서 사람이 없는 방으로 자리를 잡는다. 아직 이용객들이 많지 않아 조용한 편이다. 가끔 모임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귀를 막으면 된다. 주로 클래식 라디오가 틀어져 있던데 오늘은 두시의 데이트가 흘러나왔다. 자원봉사자가 틀어놓았거나 누군가 마지막으로 맞춰둔 것일 터다. 재재와 문명특급을 좋아하지만 너무 시끄러워서 신경이 쓰인다. 거실의 이용자가 없는 틈을 타서 냉큼 클래식 라디오로 주파수를 변경하고 볼륨도 확 낮췄다. 


전처럼 다시 작업 책상으로 매일 아침 출근할 부지런함이 생기면 좋겠다. 아니다, 요즘처럼 기운 없는 시절에 매일은 너무 큰 꿈이다. 겨울 동안은 일주일에 두 번으로 하자. 작업실이든 카페든 매일 쓰기 위해 다들 노력하고 있다. 나도 앞으로도 작업실을 갖게 될 확률은 낮은데 어디서든 매일 쓰는 작가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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