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탐대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adac Jan 30. 2024

언제나 가기 전보다 행복해지는 곳

쌍리


대흥동 쌍리는 언제 어떤 기분으로 가도 행복해지는 카페다. 대전으로 이사 온 지 몇 개월 지났을 때 맛있는 커피를 파는 곳이라고 서울 친구가 알려줬다. (서울 친구라고 단정지어 말하긴 어려운데, 부산에서 만났고 서울과 부산,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일하는 친구다. 비대전 친구라고 지칭해 보도록 하자.) 아직 쌍리를 안 가봤단 말이야? 비대전 친구는 깜짝 놀랐다. 당연히 알고 있는 줄 알고 대전 친구들이 말 안 해줬나 봐. 술집 많은 거리 초입에 자리한 데다 출입문 위에 조그맣게 붙은 간판과 물고기 두 마리 그려진 입체 간판이 전부여서 성심당 가는 길에 몇 번은 지나쳤을 텐데도 눈에 잘 안 들어왔다. 


맛있는 커피집을 수소문하긴 했는데 적극적으로 탐색한 건 아니어서 집 근처 두어 군데만 다녀보고 적당히 실망한 뒤였다. 한 집 건너 한 집 또 카페가 있는 거리에서 커피가 맛있고 고즈넉한 카페를 찾기는 어려웠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불편하고 세련된 카페, 커피 맛이 이상한 카페, 옆 사람 말소리가 다 들리는 카페, 사장님의 인상이 내 맘에 안 드는 카페…를 거르다 보니 갈 곳이 없어서 그나마 커피 맛이 괜찮은 카페에서 원두를 사다가 집에서 내려 마셨다. 그런데 쌍리는! 내가 원하는 모든 조건을 다 충족시킨다.

커피가 맛있다. 처음으로 같이 갔던 비대전 친구가 쌍리 드립을 추천해 주어서 주로 그걸 마셨다. 핸드드립과 쌍리드립의 차이를 물어볼 생각도 안 하다가 지난주에 혼자 갔을 때 핸드드립을 마셨는데 진하기 정도가 조금 다른 듯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쌍리드립은 구멍 하나짜리 드리퍼로 내리고, 핸드드립은 세 개짜리 드리퍼로 내린다고 한다. 


쌍리는 고요하다. 1층은 약간 어수선해 보이고 2층에 비해서는 소란스럽다. 엘피와 시디도 가득하고, 커피 포대와 각종 도구, 책들이 눈 닿는 곳마다 쌓여 있다. 왠지 사장님이 말을 걸 것 같은 느낌도 들고 테이블 사이 간격도 아주 넓지는 않다. 역시 또 검색을 통해 알아보니 2009년 정도에 개업한 것 같은데, 15년 가까이 되는 세월 동안 차곡히 시간이 쌓인 진짜 빈티지 카페다. 

나는 바로 2층으로 올라간다. 떡 하니 좋은 소리를 낼 것 같은 오디오가 중앙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벽에는 그때그때 전시 중인 작품이 걸려있다. 손님들의 연령대도 다양하다. 나이 지긋한 분들부터 젊은이까지 조용히 다녀간다. 이런 카페라면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방해 없이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결국 한두 시간 앉아만 있다 왔다. 지금 내가 뭘 못 하는 이유는 장소 탓은 아니다. 그래도 가기 전보다 훨씬 행복해져서 돌아왔다. 주말에 사람이 많을 땐 다를지도 모르겠다. 자리가 없어서 그냥 돌아온 적도 있었는데 이렇게 좋은 카페가 여전히 사랑받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누굴 걱정하는지 모르겠지만 평일 낮에 너무 손님이 없는 거 아닌가 싶어서…)


쌍리에 가면 기분이 좋다. 정성껏 내린 커피를 대접받는 느낌, 편안한 음악 외엔 거의 들리지 않는 소음. 주변에 다른 손님들도 모두 나름의 방법으로 조용히 쌍리의 커피와 공간을 즐기는 듯하다. 쌍리에는 일하러 말고 목적 없이 그냥 시간을 보내러 가야겠다. 조금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들어가기 전보다는 행복해질 테니까.



*매주 화요일 뉴스레터로 [소탐대전]을 받아보실 분은 여기에서 구독신청을 부탁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끔 작업실처럼 출근하는 곳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