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식당
소탐대전을 시작할 때는 대전일보 문화담당 기자의 마음으로 대전 구석구석 문화와 예술이 반짝이는 곳, 아름다운 자연을 편안하게 만나는 곳, 귀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 알아채기 어렵지만 특별한 매력이 있는 곳을 두루두루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문화인이라면 갈 법한 미술관, 박물관, 지역 예술인들이 올리는 공연을 찾아가려고 했는데… 공부하듯 숙제하듯 애를 쓰지 않으면 어느샌가 맛집 탐방이 되어버린다. 먹는 데 진심이니까, 먹는 일이 문화고 예술이니까. 그 좋아하는 음식에 마음을 쓰지 못하게 지쳐 힘이 없는 날에도 밥은 먹어야 하니까 대충 먹기도 하지만 그래도 먹어야 힘이 나니까. 그래서 오늘의 탐방지는 집에서 멀지 않은 반찬식당이다. (아마 당분간은 집에서 슬슬 걸어갈 수 있는 식당에 대해 쓸 것 같다.)
겨울이 이어지는 동안 신나는 일이 별로 없어서 겨우겨우 힘을 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녹음을 한다. 요리할 마음이 올라올 때까지는 간단하게 먹으려고 물만 부으면 되는 즉석국을 샀다. 밥 하기 조차 귀찮을 때를 대비해 오트밀도 샀다. 성심당이 이렇게 복잡해지기 전에는 올리브샌드위치나 통밀빵을 종종 사 먹었는데 요즘은 평일 오전에도 20~30명 이상 줄을 서 있으니 들어갈 엄두가 안 난다. 주중에는 끼니를 연명하는 심정으로 적당히 먹지만 그래도 주말에는 데이트를 핑계로 맛있는 걸 먹으러 간다. 십대 소녀가 낙옆 굴러가는 것만 봐도 까르르 웃는 것처럼, 지금의 연애는 얼굴만 보고 있어도 흐뭇하고 웃기고 기분이 좋아서 밥 먹으러 갈 시간을 매번 놓치고 만다. 토요일에 만나 일요일 새벽에 헤어졌는데, 아침이 되면 금세 또 보고 싶어져서 80킬로미터쯤은 금방 달려온다.
피곤이 채 풀리지 않은 일요일 점심, 자전거를 타고 반찬식당에 갔다. 7천원에 된장찌개, 콩비지, 열무김치와 4가지 나물까지 나오는 푸짐한 보리밥집이다. 식사는 기본 보리밥 외에 고등어구이나 두부두루치기로 주문할 수 있고 파전과 묵무침을 추가로 판다. 두부두루치기 빼고 다 먹어봤는데 다 맛있다.
주말은 4시-5시, 평일은 3시-4시가 브레이크 타임인데 딱 4시에 도착해서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이미 대기실에 기다리는 손님이 가득. 번호표를 미리 뽑을 수도 없는데 그냥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다. 1층에서 호떡이나 먹으면서 기다릴까 내려가서 인파를 뚫고 호떡을 주문했더니 호떡은 한 시간 기다리란다. 밥이 먼저냐 호떡이 먼저냐 흥미진진한 저녁 식사가 되겠구나.
대전 친구가 반찬식당을 처음 소개해준 이후로 신선한 채소에 각종 나물 반찬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이곳이 좋아서 친구들 여럿을 데리고 왔었다. 1층 호떡집에 사람이 잔뜩 모여있는 모습을 보고 처음엔 3층 식당 입장을 기다리는 손님들에게 서비스로 호떡을 나눠줘서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있나 싶었다. 그런데 웬 걸. 호떡만 먹으려고 한 시간씩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사람 얼굴만한 씨앗호떡이 2천원이고 맛도 있으니 그럴만도 했다. 1층은 반찬 호떡, 2층은 호떡 먹는 테이블, 3층은 반찬식당 번호표 뽑고 기다리는 대기실, 4층이 식당이다. 식당 테이블도 충분히 간격이 떨어져 답답하지 않고, 창쪽 자리는 전망도 좋다. 파전이나 묵무침 같은 곁들임 음식은 서빙로봇이 가져다준다. 귀여워. 고추장과 들기름이 테이블마다 놓여있고, 비빔밥 싸 먹으라고 구운김도 있다. 열무김치는 찾는 손님이 많은지 따로 판매한다. 참기름과 고추장 선물세트도 판매중.
엘리베이터와 대기실에 안내문이 아우성치듯 붙어있다. 만석이니 대기번호 뽑아라, 4인 기준이니 그 이상은 번호표 두 장 뽑아라, 입장하면서 바로 주문해라, 식사 주문 한 사람에 한해 보리밥 무한 제공이다, 소주는 안 판다, 입장 번호 호출했을 때 계단으로 올라오는 거 보고 판단하니 안 보이면 넘어간다 등등. 뭐 이렇게 주의사항이 많냐 싶은데, 찾아오는 사람이 많으면 할 말이 그만큼 많겠지 싶다. 태평소국밥에도 자주 가는데 거기에도 아주 벽마다 잔뜩 빨간 글씨로 이런저런 공지사항이 붙어있다. 그런 걸 보는 게 또 재미다.
주변을 30분 정도 산책하고 돌아왔더니 번호표를 뽑을 수 있게 되었다. 호떡은 처음에 안내한 1시간보다는 조금 덜 걸린 50분 후에 나왔다. 4시 50분에 호떡을 받아 먹고 5시에 반찬식당에 입장. 맛있는 보리밥을 든든히 먹고 자전거 타고 돌아왔다. 혼자 오는 손님은 대기없이 1인석에서 바로 먹을 수 있다는데 밥 해 먹기 싫은 날 슬슬 걸어서 보리밥 먹으러 와야겠다.
며칠 뒤 오후에 간식으로 먹을 호떡을 사러 산책삼아, 운동삼아 반찬호떡에 갔는데 5시가 되기도 전에 반죽이 떨어져서 못 먹었다. 분하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돌아오다가 보문산 오거리에서 귀여운 제과점을 발견해서 들어가봤다. 1987년부터 영업중인 극동제과. 오 여기서 빵을 사면 되겠네. 다음주엔 극동제과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사실 지금 극동제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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