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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dac Apr 02. 2024

아인슈타인 생카를 열어준

국립중앙과학관

3월 14일은 파이데이였다. 동네 편의점에서 특별 매대를 마련한 걸 보고서야 화이트데이가 다가온 걸 알았다. 연애를 하기 전에는 연인들의 명절이니 거리가 복잡할 뿐 나랑 상관없는 날이었고, 연애를 하고 나선 굳이 그런 날이 아니고서도 기념하고 축하할 일이 넘쳐서 하찔이처럼 자본주의에 끌려다닐 이유가 없었다. (*참고로 ‘하찔’은 품질이 나쁜 것을 이르는 방언이란다.  처음 들었을 때도 ‘질’이 ‘하’란 뜻 같긴 했다.) 과학도시 대전에서는 파이데이를 기념한다. 대전은 곧 성심당이니, 성심당에서도 파이데이를 맞이한 특별 마케팅을 한다. 성심당에서는 파이가 그려진 파이, 아인슈타인으로 장식한 파이, 그냥 파이 등등을 파이데이 세트로 구성했다. 주변에 연구소가 많은 성심당 DCC 점에서는 연구실에서 즐기는 파이데이, 대덕과학연구단지 단체주문 환영’ 현수막을 걸었다. 


기념으로 성심당 파이나 하나 사 먹어볼까 하다가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아인슈타인 생일 카페’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역시 대전은 과학은 도시가 맞구먼. 과학관 탐방도 할 겸 아인슈타인 ‘생카’에 가기로 했다. 이벤트에 참여하면 성심당 파이도 준단다, 얏호! 

대전의 상징은 꿈돌이, 꿈돌이는 93년 엑스포의 마스코트, 93년 엑스포의 주제가 무엇이었는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과거의 나도 대전시민이 된 현재의 나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과학과 관련이 있는 것이겠거니, 그래서 대전을 과학의 도시라고 하는 것이겠거니 생각한다. 기초과학연구원, 한국기계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한국기술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화학연구원 등이 있단다. 카이스트와 각종 민간 기업의 기술연구소도 잔뜩 있다. 


과학의 도시 대전 시민으로서 국립중앙과학관은 한번 가봐야지. 유일한 과학자 친구가 다니는 연구소도 근처에 있어서 파이데이의 일정은 개장 시간에 맞춰 과학관 견학 및 아인슈타인 생카 방문, 오씨네칼국수에서 점심 식사로 정했다. 자전거를 타고 여유롭고 상쾌한 기분으로 9시에 대전과학관에 방문했다. 와, 크다. 뭐가 많고 넓다. 아직 닫힌 정문 앞을 자연스럽게 지나쳤다. 갑천에서 갈라져 나온 탄동천을 따라 자전거를 좀 타다가 과학관으로 들어갈 수 있는 쪽문을 발견하고 휑한 광장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생카 행사 부스인 하얀 몽골 텐트가 서너 개 세워져 있었고 웅성웅성 몇몇 사람이 모여 있었다. 머쓱해서 자전거를 타고 텐트를 지나쳐가다가 정문 관리인분께 저지당했다. “거기, 자전거 나오세요. 자전거 타고 다니면 안 됩니다.” 아, 네. 죄송합니다. 정문 밖으로 나와서 자전거를 주차하고 정식 관람객처럼 매표소를 통과했다. 


과학기술관, 꿈아띠체험관, 창의나래관, 인류관, 자연사관, 미래기술관, 천체관측소, 생물탐구관, 어린이과학관으로 눈앞에 보이는 건물만 해도 10개가 넘었다. 몇몇 전시장은 유료고 나머지는 무료다. 우주과학공원, 어린이과학놀이터, 물과학체험장, 공룡놀이터처럼 야외에 마련된 시설도 있다. 평범한 구성인데 과학에 전혀 관심이 없어선지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관람객 한 명 없이 황량했다. 평일인 데다 개장 시간 전이었으니 당연한 일. 이리저리 걸으며 이용가이드 안내 책자만 뒤적거렸다. 성인을 위한 1시간 이내의 관람 코스로는 과학기술관과 미래기술관이 추천되어 있었다. 과학기술관을 가장 먼저 봐야 할 것 같았는데 공사 중이었다. (집에 돌아와 안내 책자를 다시 읽어보니 2층만 2024년 6월까지 공사로 휴관이라 1층은 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 들어가면 안 될 것처럼 보여서 엄두를 못 냈다.) 아인슈타인 생카는 10시부터 시작이라고 하니 미래기술관 한번 둘러보고 나오기로 했다. 

미래기술관은 산업혁명 연대기가 전시되어 있었다. 증기기관의 발명과 기계문명의 1차 산업혁명, 전기의 발명과 대량 생산의 시대를 연 2차 산업혁명,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정보화 혁명이라 불리는 3차 산업혁명, 초연결과 초지능을 특징으로 하는 대융합의 4차 산업혁명까지. 솔직히… 재미없었다. 미래의 과학기술로 구성된 생활 모습을 전시한 스마트 하우스, 스마트 스트리트, 인텔리전트 빌딩, 바이오 메디컬 센터, 스마트 팩토리 등은 눈 아프게 불빛만 강렬할 뿐 내 관심을 끌진 못했다. 차라리 증기기관차를 재현한 설치물이 아름다워 보였는데 이래도 되나 싶었다. 세상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건 아닐까, 기술이나 문명의 발전에 너무 관심이 없는 건 아닐까, AI니 챗GPT니 그런 것도 안 써봤는데 나도 모르게 현대문명을 부정하고 있는 건 아닐지 조금 걱정된다. 작년 12월에 뉴턴 생카를 열었던 물리학도 분은 어렸을 때 만화로 된 <프린키피아>를 보고 뉴턴에 푹 빠졌다 하고, 나의 과학자 친구도 연구가 너무 재미있단다. 어쩌다 과학자가 되었는지 나중에 물어봐야겠다. 취향이나 관심사가 다른 거겠지. 나는 읽기와 쓰기와 말하기를 좋아하는 어린이였고, 과학관에선 영 재미를 못 느끼지만 아인슈타인 생카에는 가보고 싶은 어른이 되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삭막한 미래기술전시를 둘러보며 자기 반성과 각성을 짧게 한 뒤, 아인슈타인 생카가 열리는 광장으로 나왔더니 아까와는 달리 벌써 북적북적하다. 


원주율 3.14에 맞춰 중량이나 시간을 맞추는 도전, 성심당 아인슈타인 파이에 꽂을 픽을 장식해서 파이를 완성하는 체험, 카이스트 학생들과 문제 풀기 대결을 하고 나서 퍼즐 맞추기를 해야 생카 굿즈를 얻을 수 있었다. 아, 저는 카이스트 학생들과 대결은 하기 싫은데 굿즈만 받아가면 안 되나요? 안 됩니다. 성인 보호자를 동반한 어린이 체험객, 과학관의 직원으로 보이는 짝지은 성인들이 대부분이었고 간혹 나처럼 혼자 퍼즐을 맞추는 성인도 있었다. 콩의 무게를 314그램에 맞추는 도전에는 줄이 길었지만, 3분 14초에 맞춰 타이머를 멈추는 도전에는 줄이 짧았다. 짧은 줄에서 후딱 첫 번째 도장을 받고, 생일 축하 메시지를 작성하고 아인슈타인 파이와 두 번째 도장을 받았다. 문제 대결과 퍼즐 코너는 줄이 길었는데, 퍼즐 맞추는 데 다들 시간이 오래 걸려서인 것 같았다. 25개의 문제를 풀고 그 답을 힌트로 퍼즐을 맞추는 모양인데, 나를 비롯한 대다수의 참가자들이 그냥 그림을 보고 아인슈타인 퍼즐을 맞추고 있었다. 묵묵히 뻘쭘하게 퍼즐을 맞추고 세 번째 도장을 받았다. 그리고 드디어 생카 필수 굿주인 컵 홀더와 컵 받침, 아인슈타인 엽서를 받았다. 포스터도 얻어왔다. 그때는 저 굿즈가 있어야 소탐대전 원고를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꼭 그럴 필요는 없었을 것도 같다. 

뉴턴 생카는 뉴턴을 좋아해서 혼자서라도 매년 뉴턴의 생일을 명절처럼 챙기던 과학도가 어쩌다 큰 규모의 행사를 주최하게 되었다고 한다. 뉴턴을 좋아하거나 과학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늘어나길 바라는 과학인들이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 아이돌이나 연예인 생일 카페가 아닌 과학자의 ‘생카’라는 점이 흥미로워 대성공을 이뤘던 모양이다. 아인슈타인 생일카페를 진행하는 사람들은 카이스트의 학생들인 것 같던데, 이런 기획이 통과되는 걸 보니 중앙과학관의 분위기가 괜찮은 모양이다. 오랜만에 나도 멀리 자전거 여행을 떠났고, 수학의 날을 함께 축하하며 아인슈타인 파이를 얻었고, 친구를 만나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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