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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dac Apr 09. 2024

꼬깔콘 돌탑이 정다운

상소동 산림욕장

쓰고 싶은 마음은 바나나 껍질 위를 날고 있는 초파리처럼 어디서 왔는지 모르게 생겨났다. 바나나는 제대로 된 끼니를 챙겨 먹기 귀찮을 때 손으로 껍질만 까서 입에 넣으면 되는 간편한 음식이다. 힘 주어 씹지 않아도 적당히 턱을 움직이면 넘길 수 있고, 쉽게 먹을 수 있으면서도 달고 맛있다. 그런 바나나 껍질이 쌓여 음식물쓰레기통에서 불쾌한 냄새를 내기 시작하면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온다. (제가 사는 대전시 중구 기준으로 바나나 껍질은 음식물 쓰레기가 맞습니다. 단단한 꼭지부분은 파쇄시설의 적정운영을 위해 일반쓰레기로 배출하기를 권고합니다.) 초파리 비유가 적절치 못했나 싶지만 쓰고 싶은 마음은 자연발생설을 따른다. 초파리와 다른 건 반가운 손님이란 점.


웅크린 마음을 붙들고 겨우겨우 입 속에서 바나나를 으깨는 심정으로 겨울을 났다. 추워서 그랬을까 쌓인 바나나 껍질에서는 초파리도, 쓰고 싶은 마음도 찾아오지 않았다. 바나나라도 먹어서 배를 채워야 하는 인간 이보현은 울고 있는 작가 이보현을 데리고 오지 않는 손님을 찾아 밖으로 나섰다. 우울해도 배는 고픈 사람, 쓰고 싶은 마음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울면서 어떻게든 써야한다고 믿는 사람, 결국 뭐라도 쓰긴 쓰는 사람.


<소탐대전>을 시작할 때는 걱정이 별로 없었다. 대전에 대해 아직 잘 모르니 갈 데가 널렸다, 쓸 게 천지라고 장담했다. 나는 <귀촌하는 법>이나 <이왕이면 집을 사기로 했습니다>처럼 내 경험을 재료로 글을 쓰는 사람이었으니,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보면 쓰고 싶은 마음이 찾아올 것이라 확신했다. <오늘 또 미가옥>을 쓸 때처럼, 이사를 준비하면서 매일 매일 글을 쓸 때처럼, 사랑하고 좋아하는 마음이나 두렵고 불안한 마음이 가득할 때 언제나 손님이 찾아오리라. 늘 웃는 표정은 아니었어도 그는 반드시 찾아왔다. 기운이 없어서 대접을 제대로 못한 날도 있었지만 손님이 반갑지 않은 날은 없었다. 우울한 손님이 찾아오면 우울에 대해 썼다. 힘이 부족해 한 편의 글이 되지 못할 때는 일기라도 썼다.


대전에 산 지 벌써 2년이 되어가니 그동안 발견한 장소가 그래도 어느 정도 되겠지. 이제는 갈 수 없는 미가옥 콩나물국밥에 대한 사랑을 쏟아부을 대상을 찾기 위해 동네의 식당을 기웃거렸고,  일 하기 좋은 곳을 찾아 도서관과 카페를 찾아다녔다. 그런 곳이 한둘이겠어? 그렇다. 한둘이었다. 많아야 서넛. 미가옥처럼 한눈에 사랑에 빠지는 식당은 단숨에 찾아지지 않았다. 하긴 완주에 산지 8년이 되던 해, 이제 곧 떠나기로 할 때쯤 미가옥을 만났지. 대전에서 마음 둘 곳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날 리가 없는데 너무 섣불리 기대를 했구나. 그래도 하기로 했으니 어떻게든, 뭐든 써야지. 모래사장에 떨어진 귀걸이를 찾는 심정으로 가만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조금이나마 사랑이 머물렀던 곳, 사랑스러운 점들을 찾았다. 화산처럼 폭발하고 타오르는 사랑이 아니었기에 미세한 불꽃의 기운을 알아차려야 했다. 운명처럼 내 앞에 나타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찾아나섰다. 미가옥의 감동을 대전에서 똑같이 느낄 수 없음을 깨닫고 콩나물국밥을 넘어 콩나물밥, 콩나물탕까지 더 넓은 콩나물의 세계로 들어섰다. 내 사랑을 찾아서.


반찬식당과 반찬호떡에 대한 사랑이 만인산 봉이호떡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지난 가을 장태산에 단풍 구경 갔을 때도 그렇게 줄을 서서 호떡을 먹더니만 대전 사람들은 호떡을 좋아하나? 중앙시장 호떡가게에도 주말엔 줄이 길었다. 호떡에 대한 호기심을 품고, 아직 쌀쌀한 겨울 뒤끝에 만인산으로 갔다. 평일 오전이라 호떡 가게는 한가했다. 반찬호떡이 기름에 튀긴듯 바삭하고 고소한 맛이라면, 봉이호떡은 적은 기름으로 구워내 담백했다. 호떡 속도 푸짐하지 않던데… 굳이 여기까지 호떡을 먹으러 올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만인산에 왔다가 출출할 때 먹기에 무난한 정도였다. 오늘의 목적은 호떡 80%, 산책 20% 였는데, 바람이 너무 불고 추워서 산 쪽으로는 30미터도 가지 않았다. 호떡 가게 앞 호수를 둘러싼 나무 데크길을 조금 구경하다가 돌아왔다. 그날의 가이드는 친구 다람쥐였는데, 다람쥐는 만인산보다 상소동 산림욕장을 추천한다고 했다. 오, 대전의 앙코르와트! 인스타그램에 대전여행을 검색하면 젊은이들이 이색적인 돌탑 앞에서 한껏 멋진 포즈를 잡고 찍은 사진이 우르르 나온다. 핫플! 젊은이 여행지! 엠지스팟! 우리도 가보자!

상소동 산림욕장 초입엔 오토캠핑장이 마련되어 있다. 길을 따라 물을 건너면 본격적으로 숲이 시작되는데, 줄타기를 할 수 있는 어린이놀이터, 숲체험 공간, 넉넉하게 마련된 정자, 벤치들. 옆에는 물도 계속 흐른다. 만인산과 식장산의 중간지점에 마련된 휴양시설이란다. 등산이나 가벼운 산책을 하기에 좋아 보인다. 중간중간 돌탑이 보이는데 아직 ‘그 돌탑’은 아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그냥 차곡차곡 쌓기도 어려운 돌탑을 둥글게 또 뾰족하게, 문을 내서 웅장하게, 특별한 모양새로 높게 돌탑 17기가 모여 있다. 슬쩍 보면 멋있고 보면 볼 수록 놀랍다. 어떻게 이렇게 쌓았지? 무늬를 냈지? 멋있고 아름답고 신비롭다. 이덕상 님이 직접 쌓으셨다는데, 비석에 따르면 60년대 7년간 500평의 성을 쌓아 홍수 때 마을의 산사태를 막은 과거가 있으시고,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이 돌탑을 쌓으셨으며 요즘은 국악 공연을 하신다고 한다. 돌탑공원 외에도 400여 기의 돌탑이 있다더니 여기저기 많기도 하다. 돌아오는 길에 나란히 귀여운 5개의 돌탑이 꼬깔콘처럼 보여 기억에 오래 남았다. 그래서 집에 와서 꼬깔콘을 나란히 줄 세워 사진을 찍어보았다. 바닥이 평평한 꼬깔콘이 몇 개 안되어서 세우기가 쉽지는 않았다. 꼬깔콘 세우기도 이렇게 어려운데, 돌탑이라니.


춥고 기력이 없어서 오래 숲을 둘러보진 못했지만, 언젠가 다시 찾아와 종일 걷고 누워서 숲의 바람을 맞으며 시간을 보내고 싶은 곳이었다. 겨울에는 물을 얼려 얼음기둥, 얼음벽, 얼음탑을 세우고 얼음공원을 조성한다고 한다. 돌탑도 그렇고, 얼음탑도 그렇고, 확실히 매력적인 볼거리라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모양이다. 숲만으로도 충분히 좋던데, 그래도 영리하게 사람을 불러 모을 줄도 아는 곳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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