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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dac Apr 16. 2024

나의 두번째 작업실이자 회의실  

커먼즈필드 안녕라운지

커먼즈 필드는 옛 충남도청 건물 중의 일부에 조성된 대전시의 공공시설이다. 4개의 건물에 모두의 서재, 모두의 작업실, 모두의 공터, 모두 모임방 등 다양한 공간이 있는데, 자주 이용하는 곳은 본관 1층에 있는 안녕 라운지다. 예약이나 사전신청 없이 그냥 와도 되고, 평일에는 저녁 9시까지 열려 있다. 주차장도 넓다. 작년까지는 주말에도 9시까지 운영했는데 올해부터는 일요일에는 문을 닫는다. 첫번째 작업실인 테미살롱은 5시까지라서 야근이 예상될 때 커먼즈필드로 온다. 한가운데 6인석 테이블이 나란히 붙은 넓은 자리가 하나, 건물 벽쪽으로 4인석 테이블이 나란히 3개, 반대쪽 벽으로 2인용 테이블이 띄엄띄엄 세 개 놓여있다. 책상은 높고 의자는 낮아서 오래 일하기는 불편하지만 가정집을 개조한 테미살롱보다 층고가 높아 사무실 느낌이 나서 직장인의 마음으로 집중하고 싶을 때도 여기로 온다. 관리자는 상주하지 않고 잔잔한 연주음악이 흐른다.



전자레인지와 정수기가 있으니, 도시락을 싸와서 먹고 종일 일해도 되지만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진 장소와 이름이 너무 비슷해서 처음엔 오기 싫었는데, 이렇게 좋은 공간을 굳이 또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소통협력공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작년에는 함께 예술인파견지원사업 예술로 프로젝트를 하는 분들과의 모임을 주로 여기서 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쌓으니 안 좋은 기억들도 조금씩 희미해져 갔다. 이제는 혼자서도 씩씩하게 와서 일 하고, 도시락도 먹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다.  

새 것 같은 가구들, 깔끔하게 정돈된 실내, 은은한 향기와 단정한 분위기, 좋다. 그렇지만…그렇지만… 다정한 기운이 없어서일까. 실패 없는 적당한 맛을 내는 프랜차이즈 식당의 안정감을 넘어서는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다.

문 닫는 시간을 10분 남기고 주섬주섬 짐을 챙겨 퇴근하는 길, 정문 벽에 붙은 현수막을 보고 한참 멈춰섰다. ‘백로가 잠시 머물다가는 공간입니다. 통행 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현수막 위로는 백로의 배설물로 추정되는 흔적이 가득했다. 앗, 이 나무에 백로가 사는구나! 고개를 들어 나무를 보니 나무보다 다른 현수막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통행 시 백로 배설물 주의’ 밋밋했던 커먼즈필드가 백로가 사는 영험한 곳으로 변했다.


도심의 백로는 환영받지 못한다고 한다. 시끄러운 울음 소리와 지독한 냄새 때문에, 처음에 신기하고 반가워하다가도 ‘혐오 동물’이 되기 쉽상이란다. 참다못한 인간이 백로가 사는 나무를 베어버려 갈 곳 잃은 백로들이 이리 저리 쫓겨다닌다는 기사를 보기도 했다.

카이스트 내 어은동산에 살던 백로는 2012년 서식지를 잃고, 인근 궁동 근린공원 야산으로 옮겼다가, 주민 민원으로 또 나무가 잘려 2013년에 탄방동 남선공원으로, 내동중학교 부근 야산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카이스트, 대전시, 대전환경운동연합 등이 백로의 이동 경로와 생애를 연구하면서 백로와의 공존을 모색하며 2016년에는 주거지와 멀리 떨어진 갑천공원으로 백로를 유인하려 노력도 해보았지만 실패였다고 한다. 이후 카이스트 구수고개에서 비교적 평온한 삶을 살고 있지만 여전히 골칫거리인 모양이다.

나는 백로가 사는 나무 옆에 사는 당사자가 아니니 백로가 밤에 내는 소리나 배설물의 악취 정도는 인간이 참아야 한다고 쉽게 말하지는 못하겠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인간만 사는 곳이 아니니까 비인간 존재와 공존하는 법을 연습해야 한다는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소 연구원님의 말씀에는 백 번 천 번 동의한다. 대전 갑천을 출발한 백로는 806km를 날아 다음날 중국 상하이에 도착한다고 한다. 휴식과 비행을 반복하며 한달 후 베트남으로 날아가 겨울을 보낸 뒤, 이듬해 봄 다시 돌아온단다. 수천 킬로미터를 오가며 지구 곳곳을 삶터로 삼은 생명이다. 긴 비행을 마치고 찾아온 집에서 편히 여름을 날 수 있기를.


다음에 커먼즈필드에 갔을 때는 백로를 마주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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