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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dac Apr 23. 2024

대학 안에 동네 공원이

오정동 선교사촌

대학 캠퍼스는 공원이 아쉬운 도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카이스트, 목원대, 보건대, 충남대는 벚꽃 명소라고 한다. 충남대에는 2킬로미터 정도 숲길이 조성되어 있어서 가볍게 걷기에 좋다. 한남대 역시 나무와 잔디밭 덕분에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데, 특히 선교사촌은 대전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다. 1950년대에 지어진 선교사 주택 3채, 인돈하우스, 서의필하우스, 크림하우스가 그것인데 기와를 얹은 서양 주택이다. 내부에 들어가볼 순 없지만 ㄷ자 모양의 건물 곳곳에 달린 창에 붙어 안을 들여다보면 입식 생활을 위한 거실과 주방을 확인할 수 있다. 

 한남대는 해방 이후 미국 남장로교에서 세운 대학이다. 학교 곳곳에 서양인 이름을 딴 건물들이 많은데, ‘인돈, 서의필, 김기수’는 ‘린턴, 서머빌, 키스’를 한자로 음차한 것이다. 프랑스를 불란서, 이탈리아가 이태리로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알고 나니 별것 아닌 이름이 귀엽게 느껴진다.

 대전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동네에 좋아하는 가게도 없고, 성심당과 두부 두루치기밖에 모를 때 다른 지역에서 친구가 놀러 오면 난감했다. 광천식당과 진로집 두부 두루치기가 유명하다지만 그렇게 초급 여행자처럼 관광객들만 가는 식당에는 가기 싫어서 대전 로컬 친구들의 추천을 받아 청양칼국수에 갔다. 그래도 성심당에는 들렀다. 지금처럼 평일에도 100여 명씩 입장 대기줄을 서기 전이다. 그리고 어딘가 대전의 관광지를 데려가야 할 때 오정동 선교사촌에 갔다. 대학 캠퍼스는 산책하기에도 좋고, 선교사촌은 나름 자연경관과 문화재가 어우러진 곳이니까. 

하늘이 맑고 나뭇잎이 풍성한 가을이었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찾아갔지만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우릴 데려다줬다. 학교를 통해 안으로 들어갔으면 편했을 텐데 학교 밖 길가에 차를 세우고 쪽문을 통해 들어가서 한참 길을 헤맸다. 휴일이라 학생은 거의 없었고 겨우 만난 사람에게 선교사촌이 어디냐 물었더니 전혀 모르는 눈치. 맞지, 학교에 문화재가 있다고 해서 모든 학생들이 다 잘 알고 애정을 가지고 자부심을 가질 리는 없으니까. 한남대 학생이었을 것 같기는 한데, 지금 와 생각해보면 학생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학생이라해도 아무리 영화촬영지라고 학교에서 홍보를 해도 정작 학생은 모를 수 있다. 학교가 넓다지만 이렇게까지 어렵게 찾을 위치는 아닌데 이상했다. 작은 뒷동산에 올랐다가 내려왔다가, 학교와 동네에 걸친 작은 동산을 산책하는 마을 주민을 만났다가, 각종 단과대 건물 사이를 걸어 다니다가 겨우겨우 선교사촌에 닿았다. 두루두루 캠퍼스를 둘러보라는 뜻이었을까 기분 좋게 길을 헤맸다. 고생 끝에 찾아낸 만큼 아름다움에 크게 감동했다. 서양식 주택도, 기와지붕도 익숙한데 각기 다른 두 개가 연결되어 있으니 새로웠다. 

대전 시민으로 여러 계절을 살고 두 번째 봄을 맞이했다. 지난 3월 어느 일요일에 얌타이와 함께 취재 겸 사진을 찍으러 들렀을 때, 선교사촌에서 봄맞이하는 무리를 만났다. 너른 빈터에서는 꼬마와 아빠가 야구 놀이를 하고 있었다. 우리도 잔디밭 한쪽에 자리를 깔고 과자와 음료수를 먹고 한참 누워있다가 왔다. 아무도 자리를 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공간이었지만 그게 무슨 대수냐, 피크닉은 기세다.


한남대는 친근하다. 한국어로 박사 논문을 쓰는 외국인 학생분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러 한남대에 가끔 간다. 대전에 사는 외국인들의 페이스북 그룹에 ‘한국어 과외’ 광고를 올렸고 운 좋게 이 분과 연결이 되었다. 쪽지만 주고받고 실제 약속으로 이어지지 않은 학생, 온라인으로 한 번 했지만 매번 한국어 문장과 영어 문장을 녹음해서 달라고 해서 내가 그만하자고 한 학생도 있었는데 이 분과는 2년 가까이 가끔 만난다. 친구를 많이 소개해 주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래 거래하는 고객님이니 그걸로 다행이라 여겨야겠다. 

수업에 갈 때마다 4시간짜리 주차권을 받는데 입학설명회 같은 걸 하는 날에는 정산을 하지 않아 무료 주차권이 몇 장 생겼다. 다음 주에 한남대 앞 소소아트시네마에 갈 때 써야겠다. 선교사촌을 찾아 헤매던 2022년 겨울에는 앞으로 한남대에 이렇게 자주 오게 될 줄 몰랐지. 장소와의 인연도 알 수 없는 일, <소탐대전>을 계기로 돌아다니다가 좋아하는 장소를 더 많이 찾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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