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아트시네마
한남대 정문에서 가장 가까운 건물(56주년 기념관) 앞에 차를 대고, 길을 건너 소소아트시네마로 갔다. 나에게는 한남대학교 주차권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차권이 없을 땐 극장 옆 건물인 한남대 평생교육원에 주차하고 4시간 주차권을 천 원에 사면 된다. 할리스 커피가 있는 이 건물엔 두 번 와봤다. 한 번은 할리스에 수업하러, 한 번은 밥 먹으러.
한남대에 과외 학생 수업하러 오는 날에 점심시간이 겹치면 학생이 샌드위치를 사 두거나 배달 음식을 시킨다. 가끔 학생 식당에서 같이 먹기도 한다. 정문 앞 킴스 돈까스에도 한 번 갔는데, 소소아트시네마가 그 건물에 있었다. 킴스 돈까스를 지나 3층까지 걸어 올라갔다.
개관한 지 1년도 안 된 극장이라 새 집 느낌이 물씬 난다. 화면과 음향처럼 상영 관련한 시설이 얼마나 좋은지까지 알아챌 순 없어도 객석 의자, 카페 테이블, 출입문이 다 깨끗하다. 계단을 올라갈 때는 오래 되어 허름한 학교 같다고 생각했는데 계단 끝 주황색 문을 발견하니 설렜다.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
한남대 정문과 캠퍼스가 한눈에 들어오는 테라스도 있었다. 야외 상영을 위한 곳 같았다. 커다란 화분이 나란히 놓여있는 홀을 지나 티켓 부스 쪽으로 들어서면 단순하고 깔끔한 대기 공간이 나온다. 제법 까페 같다. 짧은 계단을 올라 상영관으로 입장한다. 상영관에 들어서려면 계단을 올라야 한다고?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작은 공간에 최적의 관람석을 만들기 위한 설계겠거니 생각했다. 장애인석이 따로 마련된 걸 보니 필요하다면 계단을 오를 필요가 없는 반대쪽 출입구도 열릴 것 같다.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당장은 휠체어 이용자가 찾아오기 힘들겠지만.
영화 시작 전에 비상구 안내 영상 성우가 한남대 출신이었다. 얌타이는 소소아트시네마와 한남대의 관계를 궁금해했다. 이 극장은 공적 지원 없이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진 걸로 알고 있는데? 한남대 앞에 있으니 지역성을 살려 한남대 출신을 섭외했거나, 도움을 받지 않았을까. 동네에 생기는 극장이라 성우분이 기꺼이 마음을 내었을 수도 있겠지. 대전의 딸 아이브 유진이 팬들에게 선물로 성심당 빵을 주는 것처럼. 고향이니 모교니 우리 동네니 하는 마음들은 깊게 생각하면 피곤하긴 해도 어쨌든 정겹고 편안하다. 한남대 학생은 관람료가 조금 저렴하던데 정말 학교랑 관련이 있는 걸까 궁금하긴 하다. 계룡문고도 같은 건물을 쓰는 회사 직원에게 10% 할인 해주는 것처럼, 단순한 영업 전략인지도 모르겠다.
오래된 학교 건물 같다던 이 건물의 이름은 한남대캠퍼스타운이다. 진짜 학교 건물이었다. 극장 준비 과정에 관한 블로그 글과 극장 프로그래머님의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니, 학교 재단 소유의 건물이라 유지비가 쌌다고 한다. 극장을 하기에 맞춤한 층고와 야외 행사를 할 수 있는 테라스까지, 다른 단점도 있었겠지만 적당한 타협과 다짐으로 공간을 선택한 모양이다. 극장이 없는 대덕구에 위치한다는 의미도 있고, 대학가라는 점도 새로 생기는 문화공간과 어울린다. 젊음! 청춘! 활기! 예술!
씨네인디유와 소소아트시네마의 상영일정표를 보면서 <추락의 해부>를 보러 갈 시간을 맞췄다. 일요일 저녁이었는데, 독립 영화와 예술 영화를 상영하는 작은 극장이 으레 그렇듯 휴일 저녁에도 관객은 얼마 안 되었다. 정말 쾌적하고 좋은데, 재미있는 영화도 많이 상영하는데, 관람을 방해하는 요소들 그러니까 음식 냄새라던가 부스럭대는 다른 관객들도 없는데, 집중해서 영화를 볼 수 있는데…. 이렇게 귀한 극장이 운영에 너무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객석엔 열 명쯤 앉아있었나, 영화 시작 전에 자리가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서로 알은 체를 하면 영화 내용을 얘기하길래 상영 때 소곤거리시면 어떡하지 조금 걱정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도 모두 조용히 영화의 여운을 즐겼다.
홀에서 테라스로 나가는 쪽 벽에 조합원과 펀딩에 참여한 시민들의 이름이 게시되어 있었는데 친한 친구 이름과 친해지고 싶은 친구 이름을 발견했다. 앞으로 나는 단골 손님으로 힘을 보태야지. 얌타이는 티켓 부스에서 판매하는 비평서를 한 권 샀다.
밤이 되니 한남대가 바라다보이는 테라스는 더 아름다웠다. 극장 내부에도 창을 남겨두어 상영이 없을 때는 영화관에 볕이 든다고 한다. 서울 대학로에 있는 하이퍼텍 나다에도 오른쪽에 큰 창이 있었다. 소소아트시네마가 이 공간을 선택할 때 테라스의 존재가 큰 역할을 했을 것 같다. 여름밤에 맥주를 마시며 여기서 시원한 영화를 봐도 좋겠다. 대전아트시네마를 중심으로 매해 가을에 대전철도영화제가 열리는데, 작년에는 이 테라스에서 야외 상영을 했단다. 뜨거운 오뎅국물을 후루룩 마시면서 영화 보는 상상을 했다. 거기 모여있는 사람들에게서는 좋아하는 마음이 뿜어져 나올 것만 같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힘을 합쳐 만든 극장이 주는 기운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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