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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Apr 12. 2021

서울이 아닌 곳에 책방

20210411

  책방을 열기 전 나의 조건은 단 한 가지,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책방을 열고 싶었다. 지금은 보란 듯이 서울에서 책방을 열었다. 어제는 일주일에 단 하루 여는 책방 문을 닫고 춘천에 다녀왔다. 아무책방을 운영했던 책방지기님과 프루스트의서재 사장님이 춘천에 있는 실레책방에 가보자고 하셨다. 책방을 여는 날이었지만, 위치상 혼자 가기 어려울 것 같아서 따라기로 했다. 저번 주 서점을 연 일요일에 손님이 아무도 오지 않아서 내 마음대로 문을 닫아버린 건 아니다. 같이 춘천에 가자고 해주신 춘천이 고향인 아무책방 책방지기님을 다시 만나고도 싶었다.

  경춘선 열차를 타고 가는 길에 바깥 풍경이 그림 같다. 주말에는 몇 주 동안 비가 내렸는데 서점을 닫으니 날이 밉도록 맑다. 실레책방은 김유정역에 내려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혼자가기 어려울 거란 생각은 지도로 보았을 때고, 직접 가보니 다음에는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오면 좋을 만한 거리다.


  춘천에는 4번째 방문이다. 맨 처음 간 건 고등학생 때다. 문학기행 같은 걸 신청해서 김유정 문학촌을 방문했었다. 오늘 먹은 닭갈비집에 초중고 할 것 없이 예약이 잡혀 있는 걸 보니 요새도 체험학습지로 학생들이 오는 것 같다. 그다음은 새내기 때 답사 지역으로 방문했고, 최근에는 코로나가 없던 시절 북페어가 참여하려 제작자로 방문했었다. 지금은 책방 주인이 되어 방문한 것이니 변화의 시점이 생길 때마다 들린 것 같아 괜히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진다.

  실레책방은 아무책방 사장님이 소개해주신 곳이라, 미리 찾아보지 않아서 첫인상으로 SNS가 아닌 실제 그 책방 모습 그대로를 보게 되었다. 구석구석 살펴보고 싶게 만드는 책방이다. 동행한 사람들 모두 고개를 끄덕일 만한 좋음이다. 언뜻 아기자기해 보이지만 구옥을 개조한 곳이라 꽤 넓어 공간 활용이 잘 되어 있다. 입구에는 어린이 손님들이 들어오면 바로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그림책이 가득하고 안으로 들어가면 독립출판물과 기성 출판물, 헌책의 공간이 나누어져 있다. 그 안에서는 다시 아기자기로 돌아와 눈길이 가는 섬세함이 숨어 있다. 이런 곳에 오면 데리고 오고 싶은 사람들이 생각난다.

  실레책방에 오는 길에 아무책방 사장님이 가본 서점 중에 나에게 인상 깊었던 서점이 있냐고 물었다. 몇 번 들었던 질문인데 참 답하기가 어렵다. 클래식책방이 있기 전에 서실리 책방은 생각보다 작은 크기의 책방이라 내가 꿈꿨던 책방의 크기여서 인상 깊었고, 책 구경을 하는 나에게 차를 먼저 권해준 프루스트의서재와 브로콜리숲도 좋은 인상 남아 있다. 공간 자체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제주의 유람위드북스인데 그곳은 서점보다 북카페의 성격이 더 강한 것 같아 꼽기가 어렵다. 답하기 애매한 이 질문에 오늘 방문한 실레책방이 답이 되어줄 수 있겠다. 실레마을이라 실레책방인 담백하면서 흔치 않은 이름 또한 마음에 든다. 춘천에 오면 무조건 닭갈비를 먹어야 한다는 옛된 생각에 배불리 먹고 넉넉히 걸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도. 이곳은 내 것이 아님에도 충분한 서울이 아닌 곳에 책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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