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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Jun 08. 2021

현충일의 노들서가

20210606

  작년 현충일도 주말이었다. 토요일과 일요일 모두 열던 때였고, 평일인 어린이날과 석가탄신일, 연차 말고는 쉬지 않고 회사와 책방에 나가던 때였다. 쉬고 싶다. 그 생각으로 주말 공휴일을 챙겼다. 올해도 아무렇지 않게 일요일을 쉬었다. 퇴사를 확정 짓고 나니 마음이 붕 떠서 원래도 일을 열심히 하는 직원이 아니었지만 더 나태한 직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 글도 뻔뻔하게 회사에서 쓰고 있다. 그 와중에 회사는 얼토당토않는 기간을 주고 프로젝트 기획을 끝내라고 하는데... 문득 드는 후회감마저 없어지게 하는 고마운 회사다. 퇴사 후에 짧게 여행을 가려고 한다. 집을 지키는 고양이가 있어 1박 2일로 후딱. 퇴사가 아직 3주 정도 남았다고 생각하니 당장이라도 머리를 식히고 싶다. 당일로 갈만 한 장소를 물색해본다. 서울에 살아서 강원도 쪽이 바다도 있고 거리도 당일로 다녀오기 괜찮은데, 이미 계획한 여행지가 강원도라 끌리지 않는다. 애매한 경기권은 여행 가는 기분이 들지 않고(nn년간 경기도인으로 살아서 그렇다.) 멀리 가기에는 차비가 아깝다. 결국 정한 곳은 노들섬!

  노들서가가 꾸려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보고 싶었던 것을 떠올렸다. 서울 한복판이지만 섬이라고 하니 어쩐지 여행 가는 기분. 동네 책방 사장님을 꼬셔 같이 가기로 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한 시간 남짓이라 꽤 오래 걸린다. 차로 가면 절반으로 시간이 준다. 동행인의 오토바이를 타고 가기로 해서 부담이 줄었다. 즉흥 여행과 오토바이는 참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무면허자는 생각한다. 오토바이로 한강을 달리는 기분은 무섭게 신이 난다. 한강을 바라보면서 분식을 먹는데, 사람들이 수상 스포츠를 즐기고 있다. 다음번에 갈 바다 여행은 혼자이지만 용기 내어 보트라도 타볼까. 코로나로 큰 이벤트가 없는 일상을 1년 넘게 지내다 보니 예전에는 관심 없던 자극적인 것들에 관심이 간다. 놀이동산은 누군가의 손을 잡고 어거지로 가는 곳인데 웬일로 가보고 싶어 졌다던가 그런 마음.

  확실히 노들서가는 놀이동산이랑은 많이 다르다. 언제나 좋아하는 책이 있고 앉을자리가 있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그런 공간이다. 질릴 법도 한데, 또 이런 새로운 장소에 익숙한 것들이 모여 있으니 마음이 편하다. 출판사와 작가, 책방이 큐레이션 한 책들을 구경하고 편하게 앉을자리를 골라 도서관에서 빌려온 시집을 읽었다. 얼마 전부터 여성 시인의 시를 읽는 수업을 듣고 있다. 지난 두 번의 수업은 별 준비 없이 수업을 들어서 시에 대한 감상이라던가, 좋았던 시를 말하는 데 있어 자신이 없었다. 듣고 나면 남는 게 많은 수업인데 이렇게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싶어 각 잡고 읽어보려고 한다. 평소에 시집을 읽는 방식은 제목을 훑어 읽다가 마음에 들면 한 편을 읽어보고 정말 마음에 들면 필사를 하는 식이다. 그리고 내 마음대로 해석한다. 이것도 좋지만 선생님의 피드백이 있는 수업이다 보니 좀 더 많이 말하고 싶고 그에 대한 대답이 듣고 싶어 졌다. 준비가 필요한 일이다. 원래였음 그냥 지나쳤을, 이를 테면 "이 시집에는 유독 부제가 많은데 시에 부제가 달린 경우를 많이 못 보아서요. 혹시 이건 시인의 의도일까요? 또, 산문시도 많은 편인데 이 시인은 시라는 짧은 형식에 담고 싶은 말이 많은 걸까요?" 이런 것들을 묻고 싶다.

  오늘은 시집을 미리 챙겨왔지만, 노들 서가에는 비치용 책들도 많다. 더 보고 싶었지만 내려놓았다. 다음에 와서 여유있게 둘러보겠다고, 이곳에 데려오고 싶은 사람들을 떠올린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곳을 좋아해주었으면 좋겠다. 날이 더워지고 있지만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한강이나 서울숲이나, 그런 곳보다는 사람이 적은 듯해서 좋다. 서가의 벽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서 비가 오는 날이나 눈이 내린 날에 가 보아도 운치 있을 것 같다. 다음에 또 오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섬 밖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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