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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Jul 18. 2021

책방을 심는 일

20210718

《한편》 X 책 만드는 일  ─ 독자 수기 공모:  일, 고통일까 보람일까?  

  책방 앞에 심은 깻잎이 금세 자랐다. 방울토마토에도 열매가 열렸다. 깻잎의 크기가 커지기를 기다렸을 뿐인데 잎이 많이 말랐다. 비가 올 때마다 비를 맞추었지만 여름 햇빛이 강했는지, 물을 더 줘야 했는지 초보 텃밭 지기는 알 길이 없다. 방울토마토는 한참 익지 않아 빨갛게 물들자마자 따왔다. 깻잎은 성한 것이 없고, 방울토마토는 덜 익었는지 풋내가 난다. 역시 심는 것 보다 수확의 타이밍이 어려운 법이다.

  회사를 그만둔 것도 마찬가지다. 내년까지 다녔으면 했는데 결국 올해 직장을 그만두었다. 퇴사를 보고하고 나서도 지금 나오는 게 시기적절한지 나에게 몇 번을 되물었다. 어쩌면 상품 가치 없는 색깔만 빨간 토마토인 채로 세상에 나오는 것은 아닐까. 주스나 케첩이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려면 몇 개의 토마토를 길러야 하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동네 마트에서 파는 아주 실한 대추 토마토는 한 상자에 3,000원이고, 내가 딴 깻잎에 배는 되어 보이는 깻잎 한 묶음은 그만치에 1,500원밖에 하지 않는다. 나의 노동의 값 또한 이렇게 매겨질 것이다. 내가 키운 말라버린 깻잎이 성과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직을 염두하고 회사를 나온 것은 아니다. 깻잎과 토마토가 자라는 책방은 회사 입사와 동시에 문을 연 나의 가게다. 회사라는 모종과 책방이라는 모종을 한시에 심은 것이다. 1년 조금 넘게 두 가지 일을 함께 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회사의 연봉협상 시즌이 다가오고 곧바로 승진하지는 않아도 1년이 지난 신입에게 더 바라는 게 많아질 때쯤이 되어서야 회사에서의 나의 역할과 책임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고작 사계절을 한 번 겪었을 뿐인데 더 이상의 소작농은 의미가 없어졌다고 판단했다. 내년에는 책방 재계약이 연초에 잡혀 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1년을 더 계약할 것이다. 그다음 계약은? 이 책방은 퇴사를 보고할 상사도 없고 이별을 고할 동료도 없다. 수확의 타이밍은 더 미뤄질 것이다. 나는 미래에 어떤 꽃이 떨어져 열매가 열릴지 고민하기보다 다만 물을 시간에 맞추어 주고 햇빛을 쐬고 주변을 쓸고 닦는 데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다가도 어느 날은 아무렇지 않게 가게를 닫을 것이다. 오늘도 책방에는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코로나에 더위에 댈 수 있는 핑계는 많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책을 사러 이곳까지 발걸음하기에 매력이 없는 공간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오래 버티기를 목표로 잡은 나의 책방이 문을 닫는 날을 종종 떠올려 본다. 그 마음은 식탁에 올릴 수 없는 깻잎을 따면서도 맨 위의 깻잎은 남겨 놓는 것과 비슷하다.

  깻잎을 따는 법은 이러하다. 해충이 생기지 않도록 밑단부터 딴 다음 맨 위에 열 십 자로 열린 네댓 개의 잎은 더 자라도록 남겨 놓는다. 그럼 남은 깻잎들은 손바닥만 하게 다시 자란다. 이전보다 싱싱한 깻잎을 타이밍에 맞추어 잘라낼 것이다. 한데 묶여 값을 정해 누군가에게 팔리지 않더라도, 버려지지 않고 나의 식탁에 올라갈 깻잎들. 책방을 닫아도 책방을 닮은 무언가를 심고 수확할 것이다. 불쑥 자라날 날을 기다리며, 싹을 남겨두고 오래오래 기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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