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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Aug 20. 2021

순대

책방수확물 2

  도무지 저녁을 어떻게 때워야 할지 모르겠는 저녁이다. 어제는 분명 짜장면이 먹고 싶어서 유재석 짜장면 먹방을 찾아보았는데, 땡기지 않는다. 집에 남은 샐러드는 먹고 싶지 않은 상태. 곧 책방 문을 닫을 시간이 다가오지만 아직도 못 정했다.

  평일과 주말 하루 책방을 열고 있다. 어째 주말 하루만 책방을 열 때 보다 손님이 적은 것 같다. 사실대로 말하면 놀랄 텐데, 손님이 오지 않는다! 주말 하루만 열 때도 매출이 0인 날이 허다했다. 그래도 그때는 평일에 열지 않고 일주일에 달랑 하루만 여니까, 라는 위안이 있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원인은 시간과 요일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몸소 깨닫고 있다. 그래도 오늘은 책방을 둘러보고 간 손님이 있는 날이다. 여성 손님과 남성 손님 두 분이 방문했는데, 그중 남성 손님에 반응이 컸다. 책방을 둘러보는 내내 밝은 기운이어서 가만 앉아 있는 나는 신경 안 쓰는 척하면서 엄청 신경이 쏠렸다. 책방에 큰 책상을 두고 싶어서 변화를 주었고 그 바람에 나와 손님의 거리는 더 가까워졌다. 거리가 가까워져서인지 이 좁은 공간에 책처럼 앉아 있기란 쉽지 않다. 나갈 때도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나간 손님 덕분에 다음에 손님이 오지 않을 하루를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그보다 중요한 건 오늘 저녁에 무엇을 먹을 지다. 서점 앞에 차를 세운 여성 분이 세탁소 할머니와 얘기를 나누는데, 너무 서점 앞이라 대충 단어 몇 가지가 들려온다.

  '순대···'

  순대를 좀 사 왔다고, 드시라고, 그런 대화였다. 오, 저분은 할머니 며느리이신가? 아들이 있다고 들어서 며느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순대는 너무 잊고 있던 메뉴라 구미가 당긴다. 언덕길 위에 분식집에 들를까. 갑자기 순대가 엄청 먹고 싶어졌다. 내장을 같이 달라고 해야지, 떡볶이까지 먹음 너무 배부를 것 같다, 순대에 맥주를 먹으면 딱 좋을 텐데, 술은 어제도 먹었으니 오늘은 마시지 말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순대 생각 중에 책방으로 누가 들어왔다. 손님은 아니고 세탁소 할머니다.

  내심 할머니가 순대를 나누어 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께서는 순대를 먹냐고 물어보았다. 이미 밖에서 순대를 받은 모습을 다 보았으면서 모르는 척 먹는다고 대답했다.

  '(없어서···) 못 먹어요.'

  할머니가 순대가 좀 이상하다고 해서 가 보았더니 피순대가 섞여 있었다. 피순대는 취향이 아니지만 당면 순대와 내장도 섞여 있어서 피순대도 먹는 척 더 맛있겠다고 먹고 싶은 마음을 어필했다. 건물주에게 염치없어지는 세입자의 마음이다. 순대는 며느리가 아니라 손님이 사 온 것이라고 했다. 순대를 전하는 분의 얼굴은 전혀 손님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분명 가족 같았는데?

  세탁소 할머니랑 부동산에 가는 길이면 꼭 누군가는 할머니에게 꾸벅 인사를 한다. 아마도 아주 어릴 때부터 이 동네에서 본 어르신일 테다. 세탁소 아주머니가 할머니가 되었을 시간을 생각해본다. 이 동네에 가게를 연지 2년이 되어가고 있는데 그동안에 책방보다 늦게 생기고 먼저 사라진 가게들이 있다. 그 모습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고 의문이 들지 않아 슬프다. 이런 시대에 너무 작아서 손님과의 거리가 없다 싶을 정도여도 괜찮은 이유는 부적 같은 세탁소나 미용실, 이웃 책방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어서다.

  책방을 닫을 시간이 조금 남아 순대를 책방에 두었더니 금세 냄새가 퍼진다. 책방에 나는 은은한 순대 냄새. 옷가게에 가면 나는 찌개 냄새 같은 것. 가게는 사람이 열고 닫고 출근하고 퇴근하는 곳이라는 걸 알게 해주는 음식 냄새는 전혀 불쾌하지 않다. 가족같이 친밀한 얼굴을 하고 찾아주는 손님이 생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게를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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