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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Sep 02. 2021

화분

책방수확물 4

  그만둔 회사의 동료이자 대학 동기인 Y로부터 메신저가 왔다.

  

  - 상무님이 너네 책방에 화분 보내고 싶다고 주소 알려달래.

  - 네??????????????????


  그리고 도착한 화분, 책방에 없을 때 온 바람에 택배 기사님이 보내주신 사진을 보고 빵 터졌다.

  저 우뚝 서 있는 화분의 모습을 보고, 웃음이 나왔지 말입니다.

  얼른 책방으로 가서 포장지를 벗기고 옮기려는데 무거워서 땀 좀 뺐다. 화분은 책방을 열고 가장 많이 받은 선물이다. 맨 처음 받은 선물도 화분인데, 가까운 동네책방 프루스트의서재 사장님이 유칼립투스 화분을 선물해주셨다. 그 화분은 우리 책방에서 가장 빨리 마른 식물이다. 책방에 일조량이나 건조함 등 화분을 키우는데 필요한 공간 지식이 없던 때다. 주말만 책방에 출근하다 보니 주마다 화분이 말라갔고 그런 주말이 반복되면서 손 쓸 수 없는 상태까지 가버렸다. 대학 선배 언니가 준 선인장은 꽤 오래 버텨 주었는데, 어느샌가 시들시들한 상태다. 과습인지 햇빛을 못 받아서인지 바람을 못 쐐서 인지 알 수 없는 채로 상태가 비리비리하다. 화초를 잘 키우는 지인에 집에 놀러 간 날, 해를 많이 받아야 하는 식물은 햇빛 드는 자리가 바뀔 때마다 위치를 옮겨주는 정성을 보면서 나 몰라라 한 날들을 반성했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이니 방치할 게 아니라, 내가 직접 자리도 옮겨주고 더 들여다봐야 얘가 사는구나···

  상무님이 보낸 화분은 회사에서 으레 축하할 일이 있으면 보내는 화분인 것 같다. 회사 이름과 사장님 이름이 나란히 쓰여 있는 화분. 금전수라는데, 생각해보니 이 화분을 놓은 뒤로 손님이 그래도 하루에 한 명 이상은 온 것 같다. 공치지 않은 하루가 얼마나 감사한지, 좋게좋게 생각하기로 한다. 화분을 받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려 상무님께 메신저를 보냈다. 상무님이 한 번 찾아오겠다는 말을 하셔서 준비를 좀 더 하고 백신도 다 맞고 만나자고 약속을 기약 없이 미뤄버렸다. 답장이 없는 건 말도 안 되는 핑계라는 걸 뻔히 읽으신 걸 테다. 대부분 사서 출신의 직원 분들이라 책을 다루는 서점을 짠 하고 보여드리기가 괜히 부담스럽다. 상대방도 빈말이겠지만, 힘껏 손사래를 치며 빈말 같은 건 못하는 나···

  선뜻 책방에 놀러 오라는 말은 못 건네도, 퇴사한 지 두 달이 넘어가는 직원에게 화분을 보내준 마음만큼은 진심으로 감사하다. 게다가 개업한 지는 이제 2년이 가까이 되어 가는데, 지금에서야 개업 축하 화분을 받은 건 초심과 같은 마음으로 문을 열라는 계시로 받아들여야겠다. 앞선 화분 선물들은 신경 쓰지 못하고 보내버렸지만, 이 화분만큼은 오래오래 잘 키우는 것으로 마음에 보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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