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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Sep 11. 2021

주문 도서

책방수확물5

  편의점에서 알바를 시작했다. 올해까지는 서점만 열기로 다짐했지만, 마침 들린 편의점의 인상이 좋았고 마침 그 편의점에서 적당한 시간에 파트 타임을 구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안 오길래 떨어졌나 싶었는데 뒤늦게 연락이 와 알바를 시작했다. 서점 문 여는 시간과 조금 겹쳐서 조용하게 운영시간을 수정했다. 그래도 회사를 다닐 때 보다야 시간이며 힘을 덜 들이는 곳이다. 사실 이 서점을 열기로 정할 때만 해도 시간이 맞는 알바를 겸하면서 책방을 열려고 했다. 알바가 아니라 회사를 다니게 되었지만, 이제야 초기 계획을 실행하게 되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4곳의 편의점에서 알바를 해보았다. 가장 처음 해 본 알바가 편의점인데, 고3 수능 보기 한 달 전에 일을 시작했다. 수능보다는 수시를 준비하고 있어서 그런 객기가 가능했다. 그때는 아르바이트에 대한 로망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100프로 생계형이다. 편의점에서 버는 월급으로는 딱 집세 정도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다.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미리 말해야 하나 고민하다 말하기로 정했다. 서점을 하고 있다고 하니 사장님과 가게를 잠시 봐주시는 사장님의 언니 분 모두 자신에게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단순히 책 추천인가 싶었는데, 현금을 내어주시며 3권의 책을 가져와달라고 하셨다!

  두 분 모두 '위로가 되는 책'을 원했다. 한 분은 고3과 중2 자녀가 있고, 한 분은 업을 변경한 게 특징이다. 평소에 독서는 즐겨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책을 권해야 할지 딱 떠오르는 책이 없어서 책방에 가서 고르기로 했다. 이곳은 참 내 취향과 입맛대로 고른 책들 뿐이다. 위로가 될 만한 책은 타깃이 2030인 책이 많다. 그 외에는 위로보다는 문제의식만 가득 얹어주는 책이다. 시집이나 잡지류도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처음 서점을 준비할 때만 해도 책방 이름 후보 중에 '위로'가 들어간 이름이 있었는데, 이렇게 위로되는 책이 없다니. 책이 나에게 위로가 돼주는 물건이라 그런 이름을 짓고 싶었다. 조금 반성하며, 어렵게 고른 세 권의 책을 골랐다.


'나의 10년 후 밥벌이(이보람)'

'술과 바닐라(정한아)'

'그러라 그래(양희은)'


  N년 동안 중국어 선생님을 하다 새롭게 편의점을 차린 사장님을 위해서 '나의 10년 후 밥벌이'를 골랐고, 아이를 키우며 일도 하는 사장님의 언니 분을 위해 기혼 여성과 비혼 여성 등 다양한 여성의 이야기가 담긴 소설 '술과 바닐라', 누구에게나 인생 선배일 양희은의 '그러라 그래'를 골랐다. 휴.


  다행히 사장님은 자신에게도 언니에게도 딱 맞는 책이라며 좋아하셨다. 며칠 일해보지 않았지만 아닌 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할 것 같은 사장님의 태도로 보아 만족시켜드린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미리 받은 돈이 있어 약간 심사받는 기분이기도 했다. 저 책들을 완독 하지 않고 책장에 꽂아만 둘 수 있다. 책은 아무데도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에 있다. 언제든 책을 꺼내 위로받을 수 있다는 가정만으로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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