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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Dec 21. 2022

책들의 행방

20221221

  1년 전 영업을 종료한 나의 책방에 있던 책의 행방을 몇 분이 물어왔다. 문을 닫은 책방의 책들은 다 어디로 갔냐면요······.


  책방에 위탁한 독립출판물 작가님들의 책은 그들에게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 규모가 크지 않은 책방이라, 들여놓은 책이 많지 않았다. 책을 받을 때 수집한 이메일 목록을 입력하고 전체 메일을 보냈다. 도매처를 통해 매입한 책은 내 마음대로 하면 되는데, 빌려온 책은 빌려준 사람이 존재한다. 몇 번이고 재입고를 요청한 책방도 아니라서 귀찮은 일만 늘린 것 같아 죄송했다. 보낸 메일은 전체메일이었지만 답신으로 개인적인 메시지를 보내주신 작가님들 덕에 힘이 났다. 그 메일마저 바로 읽지 못하고 미뤄둘 만큼 에너지가 바닥난 상태였다. 결국 택배는 약속한 기한을 넘기고서 부쳤다. 계획한 일의 순서가 꼬여 시간만 보냈다. 책을 포장하고 수량을 체크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해 방문 택배가 되지 않아 책을 들고 언덕길을 올라 우체국에 가는 일까지 마치자 책방이 그나마 비워졌다.

  일반 단행본 중 소장하고 싶은 책은 집으로 가져갔다. 새 책장에 새 책을 채웠다. 처음 본 책들은 아니라 새것 같진 않았지만 작게나마 책방의 흔적을 집에 남겨 둘 수 있어 좋았다. 손이 가지 않을 것 같은 책 중 몇은 중고로 팔고 남은 책은 '신나는 여성주의 도서관 랄라'에 기증했다.

  책은  정도로 하고, 책방에 있던 물건도 정리해야 한다. 쓸만한 물건을 좋은 가격으로 당근에 올리니 연락이 금방 왔다. 아쉽게도 서실리책방에서 물려준 책장은 업체에 맡겨 정리해야 했다. 크기가  마땅히 쓰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큰맘 먹고  책상은 집으로 가져갔고, 쓰던 의자나 직접 만든 책장  가구  개도 집으로 옮겼다. 작은 집이  좁아졌다. 이웃 책방 사장님과 함께 동묘에서 득템한 책상은 친구 집으로 갔다. 가끔  책상이 떠오른다. 책방에 놓은  가구이기도 했고,  책상 앞이  자리였다. 그래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책방을 닫는 기간  나의 이야기를 누구보다 많이 들어준 친구의 집에 머물고 있기에 미련은 없다. 이렇게 책방을 닫을  모르고  책장은 자주 가는 책방 사장님이  가셨다. 그곳에서  책장을 보며 나의  떠올릴  있다.


  친가 쪽 어른들은 모두 자영업을 하셨다. 그중에는 크게 식당을 하던 고모가 계셨는데, 그 식당을 정리하고 다른 식당을 차리고 다시 정리하기를 반복하셨다. 아빠는 주방 집기를 헐값에 넘겼다는 고모를 나무라며 자신의 사업 아이템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어디에서는 육개장을 팔팔 끓여서 대접으로 파는데, 아직 상인들이 많지 않으니 트럭 하나에 장사를 시작하면 잘될 것이라고. 꽤 큰 식당을 운영했던 고모들이라 트럭 하나로 장사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 내심 서운했다. 의외로 고모들은 긍정적이었다. 무엇보다 아빠의 말을 믿었다. 나에게는 엄마를 신용불량자로 만든 실패한 사업가인데 그들에게는 아이디어 많은 남동생이었다. 어쩌면 그런 믿음들이 내게는 무능력하게만 보이는 아버지를 살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모들이 육개장을 팔았는지는 모르겠다. 만약 팔았다면, 아빠 말대로 장사가 잘 되었는지는 더욱 알 수 없다. 그래도 요식업은 출판산업보다 비전있지 않은가. 나도 고모네 식당에서 얻어먹은 뚝배기 불고기 같은, 조미료 냄새 물씬 나지만 반사적으로 침이 나오는 김치찌개 같은 책을 팔고 만들고 싶다. 책방을 정리하고 큰일을 겪었다는 핑계로 1년 잘 놀았다. 2023년에는 식당의 집기, 서점의 책과 가구가 어딘가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듯이 나도 나의 자리를 찾을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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