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법을 몰라서요 #07]
<브레이킹 배드> 어디까지 봤어?
-시즌 1
(다음 날)오늘은?
-시즌 2 거의 다 봐가.
(다다다음 날)다 봤어?
-응? 이제 <그레이아나토미> 시작했는데.'
중고등학생 때부터 주말이면 밀린 미드를 보는 게 저의 쉼이었고, 때로는 건강하지 못한 문제 행동이 되기도 했어요. 누구의 간섭도 없던 유학생 시절, 플레이밍 핫 치토스로 삼시세끼 연명하며 <브레이킹배드>와 <그레이아나토미>, <매드맨>을 이어 보다가 영양실조에 걸린 적도 있었으니까요. 이 얘기, 저희 엄마에겐 비밀로 부쳐주시겠어요? 핫.
드라마로 자해하는 인간인 동시에, 넷.플.릭.스 빨간 글자와 함께 '두-둥!'소리가 들리면 집에 온듯한 안정감을 느끼는 인간인 덕분에 넷플릭스에 아주 복잡한 감정을 갖게 됐어요. 이 야무진 빨간색이 크리스마스 시즌의 예쁜 포장지처럼 사랑스럽기도, 피가 난무하는 장면 속에 갇힌 듯 숨 막히기도 하는거죠.
요즘엔 폐인이 되도록 빈지워칭을 하는 대신 매일 조금씩 봐요. 넷플릭스가 자꾸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는 시간이 있거든요. 10시 반, 11시쯤 일을 마치고 나서죠. 그때는 꼭 넷플릭스를 보지 않으면 오늘 하루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할 것 같곤 해요. 어금니 빠진 것처럼 허전하고 섭섭해요. '이렇게 얌전히 하루를 잘 살고 침대에 기어들어왔는데, 주인이 나에게 간식을 주지 않네?' 강아지(자네)가 산책 다녀와서는 헛헛한 표정으로 저를 빤히 보는 이유를 알 것 같단 말이죠.
처음 저의 가설은 이랬죠.하! 넷플릭스를 보는 건 하루의 마지막에 주어지는 보상으로 기능할걸. 이제는 보상이 사라져도 반복하게 되는 패턴이지! (파워당당!)덧붙이자면 오늘 하루 충족되지 못한 다정한 돌봄이나 효능감(?)을 넷플릭스의 콘텐츠 속에서 느낄 때가 있지 않을까 했고요. 드라마에는 따뜻한 돌봄을 주는 사람도 많고, 말도 안되게 유능한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드라마 안의 세계에 잠시 가서 거기에서 내 욕구를 채우는 거죠.
그런데 굳이 골라 보는 게 아동 학대, 성폭력 등을 다룬 아주 우울하고 흡입력있는 다큐멘터리나 살인자들을 인터뷰하는 드라마더라고요. 그 세계에 가고 싶지 않았고, 거기에서 느껴지는 감각 자체를 사랑하기는 어려웠어요. 전 무언가를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느껴야할 것을 느끼기 않기 위해서 넷플릭스를 사용해왔던 거죠. 밀린 숙제 같은 감정이 쏟아지는 밤이면 넷플릭스를 보거든요.
수업이 끝나고 나서 오늘 수업에 대한 회의가 밀려오고, 동료의 무거운 이야기가 가슴에 남고, 내일 해야할 일들이 오늘이 다 가기도 전에 부담으로 다가올 때, 이 먹먹한 느낌과 같이 있고 싶지 않아서 무의식적으로 더 강한 감각을 찾아나섰어요. 내 시야를 완전히 장악하는 강한 감각과 영상 자체의 즐거움이 '나를 들여다봐줘!' 내 마음이 보내는 중요한 신호를 무시하게 했죠. 솔직히 말하자면 무시하고 싶었고요. 누차 강조하지만, 마음을 마주하는 건 꽤 괴로운 일이고, 그 순간에는 항상 무시하는 편이 더 편하니까요.
넷플릭스를 보다말고 정말 이 순간의 저에게로 돌아왔을 때 마치 아무 생각 없이 담배를 피우다가 담배의 리얼한 맛과 냄새로 갑자기 돌아온 것처럼 구역질이 났어요. 살인자와의 대화가 장악하고 있는 제 마음은 수많은 감정들로 소용돌이치고 있었고요. 무거운 눈꺼풀은 제발 화면 좀 끄라고 외쳤거든요. 이후로 밤에 제 눈꺼풀의 느낌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계속 하고 있어요. 만약 제 눈꺼풀과 저의 관계를 영화로 만든다면 <노예 29년>이 될 것 같은데요. 제가 제 눈꺼풀을 질질 끌고 다니며, 가죽 채찍으로 때리고 있는 장면이 다수 등장합니다. '눈을 떠! 눈을 뜨라고! 지금 자면 안돼!' 앞으로는 눈꺼풀이 제 수면의 질을 결정해주는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될 것 같습니다.
쉼은 몸의 일이구나, 처음 느끼게 해준 건 사실 요가였어요. 멍상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다른 챕터의 쉼을 알게 된 것 같았거든요. 요가는 우리 몸을 활용해서 조금 더 효과적으로 쉼에 접근해간다고 생각해요. 좋은 요가 지도자는 우리 몸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에 달려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우리 몸의 생체 시계, 신경계, 호르몬계 등의 복합적인 작용으로 쉼이 완성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신적인 작용이 소프트웨어라면, 우리 몸이 하드웨어인거죠. 온전한 쉼을 위해선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모두 필요해요.
넷플릭스를 보며 주말 오후를 보내고 계시다면 내 몸으로 한번 돌아와보세요.정말 이완되어 있는지, 내 몸은 편안하다고 말해주고 있는지.그리고 부디 내 하드웨어를 이미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은 접어두세요.
몇 가지 쉼 tip
해가 진 이후에는 눈에 형광등 빛이 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대요. 약간의 빛도 몸에게 혼란을 줘요. 우리 하드웨어는 선사시대 인간의 하드웨어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태양밖에는 모르거든요.
자기 전 2시간 정도 쿨다운 타임이 필요해요. 천천히 이완의 그래프로 들어설 수 있게 업무를 조정해보세요.
쉴 수 있는 체력도 필요해요. 체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근력 운동과 유산소가 각각 필요하고요.
핸드폰은 마루에서 충전하고, 알람을 맞추더라도 방 바깥에 두고 자는 습관을 들여요.
아침에 눈을 뜨면 침대에서 튕겨나오는 습관이 몸에 좋지 않아요. 깼다면 30초에서 1분정도 몸을 꼼지락거리며 나를 깨워요.
저녁 밥은 가볍게!
체온이 내려가면서 스르르 잠이 와요. 따뜻한 샤워를 해서 잠이 오기보다는 샤워 후 체온이 내려가면서 잠이 온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