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왈이의 마음단련장 Feb 14. 2021

나라는 인간 사용법

[쉬는 법을 몰라서요 #10] 가상의 쉼터뷰

쉼에 대해서 써보니 어떠시던가요?


처음에는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 제가 쉼에 대해서 되게 생각을 많이 하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작년부터 주변 사람들한테 쉼에 대해 자꾸 떠들어서 괴롭히기도 했고, 쉼이 언제나 저한테는 강한 열망의 대상이면서도 두려움의 대상이니까 쓰다보면 정리도 되고 뭔가 전달할 만한 메시지도 있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죠. 그런데 써보니까 그게 아닌 거예요. 제가 별 생각이 없더라고요!


생각이 많으시던데요.. 너무 원하지만, 두렵다, 정말 그렇죠.


그런가요? 일단 일을 하고 있을 때는 노동의 설움 때문에, 몸의 고됨 때문에 '너무 너무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데 또 쉼은 곧 안주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니, 무턱대고 쉴까봐 무섭고. 경계하게 되고요. 그 경계가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너무 삼엄해요. 무언가에 쫓기듯, 더 바라고 더 달리며 살아가는 게 평균이라서, 오히려 내가 가진 것에 소탈하게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반항적인 태도가 된 것 같아요. 잘 쉬려면 반항을 해야 하나 봅니다!


아까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뭐가 어려웠을까요?


일단은 쉼이 뭐라고 생각하냐고 물어봤을 때 저마다 생각하는 쉼이 너무 다른 거예요. '아, 쉬는 거 너무 좋다! 쉬는 거 무조건 최고!' 할 때의 쉼과 '저는 몸은 쉬는데 마음은 쉬지 못하는 것 같아요.'의 쉼이 다르고, '전 요즘 퇴사하고 쉬어요'의 쉼이 또 다르죠.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게임에 몰입할 때의 쉼과 잘 잤을 때의 쉼은 좀 다르잖아요? 저는 제대로 쉬려면 일단 쉼을 좀더 좁게 잡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선은 어떤 상태가 아니라 동사로서의 쉼을 이야기했고요. 노는 것과 쉬는 것을 구분해서 썼어요. 잘 노는 것은 잘 노는 것대로 아주 중요할텐데요. 그 글은 누군가가 좀 써주셨으면 좋겠네요. 어떻게 잘 노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쉼이 몸의 이완과 마음의 이완이 함께 이뤄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에게도 그렇게 쉬는 시간을 만들어주려고 애쓰고 있어요. 몸과 마음이 동시에 쉬는 행위 하나를 찾긴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몸이 이완되는 것과 마음이 이완되는 것을 따로 체크해보세요. 안 그러면 몸은 쉬지 못하는데 마음만 쉬고 있거나, 마음은 쉬고 있는데 몸은 쉬지 못하게 되니까. 두 개를 모두 놓치지 말기.


            바보 같은 질문 같지만, 대체 왜 쉬어야 할까요?  


행복하려고요! 행복하려면 쉬어야죠. 그것도 잘.우리는 죽고, 아프고, 늙는 유한한 존재잖아요. 우울한 이야기 같지만, 사실이에요. 비관적이다, 우울하다, 이것보다는 현실적이라는 표현이 더 낫겠어요. 그렇게 삶에 제시된 조건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쉼의 의미가 확 와닿는 것 같아요. 뭔가를 이루는 데에도 즐거움이 있지만 이루는 순간에 즐거움이 있다기 보다는 그 모든 과정에 있는 거잖아요. 너무 쉽게 잊게 되는 중요한 사실인데, 쉼은 자꾸 지금을, 그 과정을 바라보게 해요.


넉넉하게 잘 쉰 날 저는 '그래! 나는 뭔가를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야!' 소리치게 되더라고요. 삶에 어떤 골인 지점이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지금으로, 과정으로, 나의 유한함으로 자꾸 돌아가게 하는 쉼엔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너무 심오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입니다. 


쉼이라는 건 결국 나라는 인간 사용법에 쓰여져 있는 하나의 항목인 것 같아요. 2조 1항 인간은 몸과 마음이 이완되어야 기능한다. 그냥 그런 조건을 갖고 태어난 게 아닐까요? 우리는 자꾸 이 사용 설명서를 제대로 읽지도 않고 내 감으로 때려잡으며 뼈로 배우는 중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번아웃도 오고, 우울증도 생기고, 뭐 그런 게 아닐까요? 내가 운용하는 것이 인간의 몸땡이라서 쉼이 필요한 거잖아요. 태엽만 감으면 굴러가는 로봇이 아닌데, 핸드폰이나 컴퓨터처럼 기계 사용법에 너무 익숙해진걸까요? 


잘 쉬어야만 제대로 굴러간다는 게 어떨 때는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아요. '굴려야 굴러가지.'가 훨씬 말이 되는 것처럼 들리지만, 인간이라는 변수를 집어넣으면 도리어 말이 안 돼요. 사용서만 제대로 읽어도, '쉬어도 된다!'는 마음에 좀더 힘이 실릴 거라고 생각해요.


쉬어도 돼! 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요?


네, 반은 맞고 반은 아니다? 대부분 쉬어도 된다는 건 잘 알고 있는데, 어떻게 쉬어야할지 몰라서 고민이실테니까요.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떻게 쉬게 허락해주나?'의 문제인거죠. 진심으로 내 몸과 마음이 잘 쉬게 허락해주려면 이런저런 기반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쉬어도 된다!'고 스스로 힘을 실어줄 수 있게 도와주는 이야기들을 쓰고 싶고, 앞으로도 쓰고 싶어요.


이렇게 글을 쓰기 전에는 내가 어떻게 쉬고 있는지 꼼꼼하게 체크해보지 않았거든요. 제가 5분, 10분, 1시간, 하루 이렇게 시간에 따라 다른 쉼의 전법들을 나름 사용하고 있더라고요. 나는 어떻게 쉬고 있는지 쉼의 조각들을 잘 주워보고, 뭘 하면서 쉴 때 나에게 가장 잘 통하는지 톺아보실 수 있기를 바라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