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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왈이의 마음단련장 Feb 14. 2021

내 돈 주고 내 가치를 사도 될까요?

[쉬는 법을 몰라서요 #09]

멤버십이며, 외부 제휴며, 책이며, 새로운 일들이 몰린 한 주이기도 했어요. 약간 긴장되어있거나 흥분되어있는 상태로 보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내던져졌을 때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제 성향상 불편함에 몸을 비비 꼬며 한 주는 보낸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겠더라고요. 불안, 긴장과 나란히 있어보겠다고 다짐했는데, 소비로 터져나왔나봐요. 한달 동안 책정해둔 여윳돈을 일주일만에 다 써버린거죠! 라고 쓰고 미친거죠! 라고 읽습니다.


영수증을 살펴보니 이번 주에는 저 자신을 괜찮은 인간이라고 다독이고 싶었나봐요. 충동적으로 선물을 많이 했더군요. 힘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저의 지지와 돌봄을 표현하고, 그들로부터 사랑받고 싶었어요. 그리고 회계, 경영 등에 도움이 될만한 몇 가지 구독 서비스를 결제했습니다. 결제만으로 제가 좀더 유능해진 듯한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조크든요. 저를 꾸미는 데에도 돈을 썼고요. (탙색 머리는 뿌리 염색도 비쌉니다. 차-칭!)


억울한 마음에 산 물건들의 가치를 곱씹다보니 저라는 인간의 가치에 대한 생각이 들더군요. 이번 주에는 저의 가치를 제 돈을 주고 산 것 같단 말이죠. 이 정도의 소비를 해야만 되찾을 수 있는 가치였다면 꽤 내려가 있었던 모양이에요. 음, 저의 가치는 대체 무엇이 결정짓는 걸까요? 제 가치를 돈으로 사도 좋은 걸까요? 이런 저런 생각들이 쏟아집니다. 이내 멈춰서게 한 질문은 이겁니다. '뭘 가지지 못한다면, 해내지 못했다면 있는 그대로의 나는 가치가 없는 걸까?' 금요일 멍상가들에게도 이 질문을 나눴습니다. 한 멍상가가 멍상 매듭에 이렇게 써두었더라고요. '가치? 의미? 모르겠다. 아직은..'


저는 저 질문의 힌트를 제가 좋아하는 들꽃에서 찾은 것 같아요. '너 자세히 보니까 작은 별처럼 참 귀엽게 생겼다!'라고 말한 적이 있고, 그때부터 이 꽃이 피어있는 구간을 지날 때면 아는 척을 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작은 별을 닮은 꽃'만큼 의미 있는 것이 된거죠. '큰개불알꽃'이라는 정식 명칭을 발견하고서는 그 의미가 약간 퇴색되었습니다만. 어쨌든 가치라는 것은 관계 속에서만 발견되는 것 같습니다. 나에게는 너가 가치있고, 일을 하니까 내 일로 하여금 세상에 이런 가치가 있고, 매일 밥주는 고양이가 있다면 고양이에게는 제가 밥주는 사람만큼의 가치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너무 자주 잊어버리는 관계가 있죠. 바로 나와 나 사이입니다. 들꽃의 가치처럼, 나의 가치도 내가 직접 발견해야만 하는 게 아닐까요?


깨끗이 몸을 정돈하고, 립밤을 바르는 것. 좀더 나은 음식을 먹는 것. 누군가를 돌보는 것. 일을 하는 것.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 무엇을 멋지게 여기느냐에 따라서 살아가는 모습이 다를 뿐,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인식하고 싶은 토대는 달라지지 않는 것 같아요. 대체로 나를 더 가치있는 존재로 느끼기 위해 노력하는 하루하루들이 이어집니다.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정말로 중요하다면, 왜 내가 직접 정의하지 않나요? 왜 타인을 통해서, 세상을 통해서 증명 받아야만 하나요? 나의 커리어나 내가 다닌 학교, 나의 외모, 관계의 질 등이 모두 나의 가치에 영향을 주겠지만요. 내가 이중 무엇을 나의 가치로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은 어느 정도 내 힘 아래 있는 것 같아요.


짝꿍은 멋진 사람 말고, 있는 그대로의 너를 가장 멋진 사람이라 느끼게 해주는 사람으로 고르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 말에 가장 힘이 실릴 때가 나와의 관계에서라고 생각해요.


p.s.

오늘의 결론: 돈 때려부어도, 내 가치에 대해서 고민하고 쓴 글 한 편 못하다

글 쓰고 난 후 영은과의 짧은 대화

지언: 너의 가치가 뭐라고 생각해?

영은: 나? 밥 잘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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