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zzy Dec 12. 2021

한 시대의 발레 천재

홀로 날아 외롭지 않았을까

천재들의 찬란과 불우함이 섞인 삶은,

늘 다른 창작자들의 영감이 되곤 한다.

화려한 데뷔와 인기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자기 파멸로 귀결될 때,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결정적 순간.

그런 게 있을까.

음악극 <더 모던 402>는 천재 발레리노 니진스키의

죽기 전 사진 한 장에 얽힌 이야기를 다뤘다.

어느 노인이 슈트를 깔끔하게 차려 입고

날 듯한 표정으로 점프를 한다.

흑백 사진 속 니진스키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 오랜 기억 상실증에서

벗어나 어느 시절의 움직임을 재현한다.

극은 니진스키가 디아길레프를 만나

사랑하고 헤어지는 관계의 환희와 파국을 다루며

끝으로 향한다.

니진스키와 그의 부인, 디아길레프 등장, 

서영주, 임강희, 정성일 연기했다.

디아길레프 시점에서 자신만만하고 어딘가 돌출적인

니진스키를 호텔에서 처음 접견할 때를 진술하고

그와 작품에서 성공해 가는 과정이별 후

니진스키가 자기 분열과 망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던 때를 보여주고

부인의 도움과 의사의 진찰로 마지막 순간

찬란했던 기억을 몸으로 끌어낸다.


예술과 기술 융합 지원작이라,

이들이 대화를 나누고 진술하는 과정의 배경들이,

빔으로 쏘는 백에서 계속 바뀐다.

호텔 402호였다가 갑판였다가

정신병원 의료 병동였다가, 수시로 변해간다.

주인공들의 심리는

세 명의 무용수가 뒤에서 천천히 움직이거나

정지한 상태로 대신 드러내주기도 한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배경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무대 뒷면보다는,

그들의 심리와 대사로 그 배경을

상상해가는 것을 좋아하는 터라,

융복합의 윈윈은 크게 다가오지 않았고,

오히려 세 배우가 끊이지 않는 엄청나게

긴 분량의 대본을 소화하며

극중 인물로 걸어들어간 순간들이 좋았다.


특히 내용 중 탱고에 대한 진술이 나오는데,

탱고의 어원이 슬픔을 만지다라는 뜻이 있다고.

타인의 슬픔을 어루만지는 춤이라는

그 말에 여운이 남아,

이 공연을 본 후, 발레보다 탱고를

배우고 싶단 생각을 조금 했다.


천재의 외로움을 어루만질 사람은

거의 없는 게 아닐까,

춤을 추면 혼자여도 외롭지 않다는 소회와,

니진스키가 죽고 나면 새가 없는 곳에서

춤을 추고 싶다고 한 대사에 공감했다.

새에게조차 방해가 될까 여린 마음처럼

다가와서.


극을 관람한 귀갓길,

친구와 함께 대학로에서 동대문까지 걸었고,

니진스키의 옛 발레 클립을 유튜브로

찾아 보았다.

친구는 니진스키의 아내가

혼자 날면 고독하지 않겠느냐고

함께 날자는 내용에 감동 받았단 얘기를 듣고,

홀로여도 춤을 추면 외롭지 않단 말 때문에

그 말을 놓친 나를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천재도 범상인도

어쩌면 함께를 놓치는 순간,

불운을 어찌할 수 없는 건 아닐까.

늪에서 건져줄, 어떤 손길. 그리고 순간.

그런 걸 떠올려본 음악극. 모던 402.



https://youtu.be/Vxs8MrPZUIg

니진스키, 목신의 오후 발레 클립




작가의 이전글 겨울 나그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