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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zzy Dec 05. 2021

겨울 나그네

Winterreise

보고 나오면 정지된 것만 같은

이미지의 나열로  공연이 있다.

국립현대무용단의 '겨울나그네'가 그랬다.

세 편의 무용이 시청각적 다른 이미지 각인됐다.

겨울 어딘가 받딛을 길에서

아슬아슬 균형에 맞춰 나 이,

탈주 이. 즐겨 걸어 수용한 이...  팀이 보였다.

목적어나 대상은 언젠가의 현실이랄까.

공간과 시간 대하는 스타일이 느껴졌다.


#1. 차진엽 <수평의 균형>

기다란 쇠막대가 45도 정도 기울어진 채

무대 왼 편에 비스듬히 서 있고

또 같은 막대가 위에서 검은 줄에 달려

밑으로 내려와 퍼포머(차진엽, 김지욱) 머리 위 

공중에서

역시 45도 정도 기울어진 채로

느리게 흔들거렸다.

스스로 균형을 찾아...

줄이 걸린 위치나 흔들리는 지점들을

왠지 유심히 바라보게 됐다.

얼마나 튼튼한 줄인지도 괜히 생각해보고,

두 직선이 무대에 가로, 세로로 떠 있는 가운데

이뤄지는 퍼포먼스를 관람했다.

특히 두 남녀 춤에서 각각이 날개 긴 새와

목이 긴 타조와 같은 포즈를 만들어낼 때가  있었다.

역시 수직과 수평의 이미지가 겹쳤다.

남성은 점퍼를 머리 위로 덮어

얼굴을 가리고 옷 끝으로

손만 내민 채 그 손의 파동을 보이며

동물 머리와 부리 같은 느낌을 냈고

그 손을 상대가 맞잡 때는

ET 외계인 같은 그림으로 보이기도 했다.

바닥에서 수많은 빛의 파장이 점점이 번질

우주 같은 분위기로 변했다.

휴식에 관한 문구가 흐르고

쉼을 맞이한 순간 벌레가 요란스럽게 소리를 낸다는

내용의 (정확한 문장이 아닌, 기억에 남는 내용)

(브로셔를 펼쳐보니 겨울나그네 제10곡 휴식의

마지막 구절이다.

"내 가슴아, 싸움과 폭풍에

거칠고 대담하게 맞섰던 너도

처음으로 고요함을 느끼는데

벌레가 갑자기 격렬하게 요동치는구나.")

활자들이 바닥 왼편으로 흘러 사라지고

그 글자 폰트들이 깨지고 흔들리며

여성 무용수가 몸을 낮게 만들어 춤을 출 때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심한 편두통과

예민한 구토의 몸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했고,

바닥에서 올라오는 빛의 일렁거림들이

일견 환희보단 고통으로 느껴져 기억에 닿았다.

벌레나 온갖 날 것들이 움틀거리는 느낌였다.

남성 무용수가 점퍼에 마이크를 달아

 부스럭거려 차가운 소리를 연신

반복하던 순간 청각 효과는 이명스러웠다.

차가운 쇠의 재질과 한데 묶을 만한 효과음이었다.

슈베르트 음악 <휴식>, <까마귀>, <거리의 악사>를 편곡해

배경이 되었고 피아노, 베이스 음악인(문종인, 한예열)

몸소 무대 한 공간을 차지,

라이브 피아노 연주와 노래가 무대를 채워

청각과 시각이 번갈아 이미지를 토스했다.

#2. 안영준, <불편한 마중>


예전 17년 고양시 어느 연수원 건물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무용지원프로그램인 창작산실

쇼케이스를 평일 내 연달아 본 적이 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무용을 보고 관객점수를

매기고 귀가했는데, 그때 장시간

무용을 보다 보니 각각의 작가들이

스스로를 조이는, 알듯말듯한 제약 요소,

문제의식들을 내비쳤다.

그걸 해결해가고자 춤추는 이들로 다가왔다.

어떤 작품에선

무용수들이 매우 좁은 공간에

몸을 비집고 넣어서 다시 그 비좁은 공간에서

빠져 나오고 또 작은 공간 소품을

이용해 빠져나오는,

하우스푸어 느낌의 춤을 추는 걸 본 적이 있는데,

문득 이 안무가가 그때의 안무가일까

공연 도중 약 때문에 각이 났다가 현재 작품으로 돌아다.


철제 쇠망으로 얽혀 만들어진, 다람쥐통 같은

원형 구조물이 무대에 등장했다.

퍼포머는 그 안 구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그걸 수직으로 세우기도 하고

그 위 난간에 올라서기도 하며 몸을 움직였는데,

철의 질감이 날카로워서인지,

황량하고 으슥한 데에서 추는 춤처럼 보였다.

제목도 <불편한 마중>이었다.

개 짖는 소리가 공연 후 강한 이미지로 남았고,

무용수들(안영준, 박시한)도 거친 야생 같아,

갇힌 데서 탈출하고 싶어하는 어떤 몸부림을

보고 나온 기분이었다.

어제 만난 친구와 녹사평역의 카페를 찾다가

친구가 문을 열려던 카페 인테리어 재질이

모두 쇠의 느낌이라 목재로 가자했던

한낮이 떠올랐다. 기온이 낮은 겨울날 이태원 공기가,

공연을 보곤 떠올랐다. 망을 탈출해 숲으로 간 느낌.


# 김원, <걷는 사람>


공연이 흘러가는 동안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일부 가사가 프로젝터로 바닥에 비쳤는데

<밤인사> 가사( 글 뮐러)가 좋은 줄

오늘에야 알았다.

글자를 놓칠세라 바닥 폰트에 집중,

귀갓길 2호선 전철 , 브로셔 실린 가사를 옮겨본다.


전문


"이방인으로 왔다가

이방인으로 떠나네.

5월은 꽃들이 피어 만발한

내게 좋은 계절이었으

그녀는 사랑을 속삭였고,

어머니는 결혼까지 언급했건만

이제 세상은 캄캄하고

길은 눈으로 덮였도다.


나는 여행을 시작할 때를

선택할 수 없네.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하네.

이 어둠 속에서.

달빛이 나의

내가 가는 길을 따르네.

나는 하얀 벌판에서

짐승의 발자국을 찾으리.


네가 여기 계속 머물러야 할 이유가 있을까?

누군가 나를 쫓아낼 때까지.

길 잃은 개는 주인 집 앞에서

짖도록 내버려두자!

사랑은 방황하기 좋아하지-

신이 그렇게 만들었어-

이곳저곳 떠아다니도록-

내 사랑, 이제 안녕!


당신의 꿈을 방해하지 않으리.

당신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으리.

내 발걸음 소리를 듣지 않도록

살며시 살며시 문을 닫고!

떠날 때 문에다 적으리.

안녕, 잘 자, 라고

그러면 당신은 보겠지,

내가 당신을 생각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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