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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zzy Dec 12. 2021

그곳에 서서

니가 빛이었으니

지난 해 겨울 먼 동네 공연을 보러 다녀오며

문득 나와 같은 친구가 내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멀리 발화되는 사건이라도,

그 사람의 고민이나 관점을 좇아가 주는,

옆에서 감상을 얘기해주는 벗이 있었으면.


그 생각의 바람 끝에 나는,

몇 계절이 지난 후에야

나와 비슷해 친해졌던,

22년 간의 옛 친구에게 연락했다.

대화를 하면 자주 밤을 새고야 말던,

네가 얘기하는 건지 내가 얘기하는 건지

뒤섞이어 서로 너무 비슷해 오래 함께였던 이.

어떠한 오해로 우린 잠시 보지 못했고,

다시 만나 긴긴 대화 끝에 그 오해를 풀었다.

나는 조금 울었고 친구는 피치 못할 사정들로

나를 위로하고, 왈칵 쏟아버린 눈물을 놀려대어

나는 울다 웃다 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간 힘들었던 어떤 사연들을 얘기해주었고,

나는 또 그와 헤어져 내내 울었다.

그와 오해를 풀었을 땐 속이 좁았던 내가

미안해 울었고

헤어져 운 건 그의 사적 아픔에 너무 이해가 가서,

지극히 이입된 바람에 눈물이 계속 났다.

까닭을 아는 울음이 멈추지 않아,

흔들리는 나무만 봐도,

길에서 흩어진 마른 잎만 봐도 울었고

내가 위로할 방법이 있을까 고민했다.


같아서 친해진 이는 같아서 힘들고 아프다.


서로 너무 알기에, 어떤 지점에서 일상에

균열이 일어날지 알고 있고

어떤 부분에서 상처가 날지 알고 있다.

알아서 위로가 더뎌지기도 하고

웃음으로 무마하려 노력하게 된다.

아픈 걸 알아서 아픈 걸 더 드러내게 되면

끝이 없을 걸 알아서,

그걸 서로 멈춰주고자 웃고 떠들며

아픔의 영역을 망각으로 보내고자 머뭇거린다.


주말의 한 낮 그리고 해가 저물어

밤이 될 때까지

우리는 끝없이 얘기를 나누었고

상처를 덧내지 않기 위해

웃고 또 웃었다.

웃음 끝에 더 가라앉을 걸 알면서도

계속 웃었다.


그러던 와중, 우리는

새삼 우정의 시작과 서로 마음을 열었던

결정적 순간을 기억해 내려 애썼고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아,

기억나지 않은 채 헤어졌고

친구는 하루가 지나서야

매개가 되었던 사건을 찾아 내었다.

어느 한 작가.

나는 그의 부고 기사를 썼고

그는 그에 대한 논문을 쓰던 시기,

우리는 더 많이 얘기하고 마음을 주었다.

옛 기억을 더듬다보니 최근의 슬픔들도

덮어낼 수 있었다.

웃음 속에 고인 친구의 상처가

보이는 나이가 되어 버린 지금,

그 안에 나의 슬픔도 함께 덜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택한 방법은

언젠가의 과거, '그곳에 서서'

이전을 반추하고 다시 나아갈 힘을

얻는 일인 것도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가, 매번 내가 참여한 공연에,

어느 자리에 앉아 그 공연을 진심으로

보아주고, 그 느낌을 충실히

기술하고 들려주던 날들이 기억이 났고,

내가 지난해 아쉬워하던 내 안의 친구가,

이미 있었던 것을 ... 그저 익숙해서

잊어버리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낭독회 어두컴컴한 곳에서 라인 정리를 못할까봐

손이 꼼꼼한 그를 객석 맨 앞자리 앉혀두고

암전 상태에서 그에게 맡겨 버렸던

사소한 날들이, 떠올랐다.

조명 감독님이 객석에서 라인 정리를

해서 놀랐다고 얘기하던 어느 밤이 떠올랐다.

공연에서 문학콘서트에서 실수가 나면 어쩌나

불안했던 여러 날들에도 그가 객석이나 백스테이지

어딘가에 함께 있었다.

내게도 오래된 공연 친구가 있었다는

뒤늦은 고마움을 생각했다.

카페에서 나와 쌀쌀한 밤길을 함께 걸어

주차장으로 가던 길,

간판 하나가 눈에 띄었다.

내가 사진을 찍자 그는 또 웃었다.

이상한 나라 폴처럼... 

늘 나를 구원해주던 이가...웃고 있었다.

"니가 있던 자리 니가 그대로 서있"었 뿐였는데,

나의 오해들이 그를 억지로 밀냈던 날들이

부끄러워졌다.


https://youtu.be/oUHqfBAEb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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