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잇는 줄 이어폰
사적인 가요, 디 오브제
공항을 가면서 분홍색 아이리버 줄 이어폰을 꺼내들며 생각했어.
이대로 나는 어딘가로 가서 한 달도 일 년도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이야.
노트북, 휴대폰, 전자북, 다이어리, 볼펜, 그리고 화장품과 세면도구와 옷가지들. 자주 돌아다녀서 여행 짐은 전날 밤이나 바로 당일 출발 2~3시간 전에 싸는 게 습관이야.
별다르게 챙길 게 없어. 여권과 휴대폰, 카드만 있으면 돼. 돼지코나 충전기도 웬만해선 놓치지 않으려는 것들인데, 그마저도 호텔 카운터에서 빌리기도 했어. 공항에 도착하면 소화제와 두통약, 감기약 등을 좀 더 사고, 탑승구 앞 대기시간에 여행자 보험을 들지.
그러다 탑승 후 비행기가 출발하고 전자 기기를 끄면, 낯선 이방인으로서의 여행이 시작 돼.
공항 가는 길에는 어김없이 그날 떠오르는 어떤 노래든 들어. 물론 지금은 휴대폰이 음악 기기지.
요사이 LP 소리 질감을 편애하는 이들이 많아져서 좋은 음악들이 다시 엘피로 재발매되고 있잖아.
값비싼 음향 기기를 갖추지 않은 나는, 질적으로 크게 떨어지긴 하지만,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게 있어.
줄 이어폰!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넣고 음소거(노이즈캔슬링)를 누르면, 곡의 음질이 뛰어나게 다가오잖아. 그래도 가끔은 줄 이어폰을 꽂으면 음이 새어 번지는데, 귀로 집중되지 않은 그 사운드가 왠지 애틋하게 다가와. 어릴 적 소중히 음악 듣던 때가 떠오르거든. 앨범이 발매되길 기다리고, 처음으로 새 테이프를 플레이어에 끼우는 거지. 마이마이 미니 카세트테이프를 등하굣길에 듣다 보면 길에서 들리는 소음이 모조리 노래 배경으로 함께 들어오는데 그 시간에 온전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어. 그래서 어른이 된 지금도, 아주 가끔은 일부러 칼국수(면발 같이 생긴) 이어폰이라든가, 오래된 줄 이어폰을 다이소나 일렉트로마트에서 사서 여행을 떠나곤 해.
그리고 과거로 음악 여행을 떠나지.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마치 어딘가 함께 떠나듯 줄이 긴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