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신 콘서트를 처음 본 곳은 극단 학전그린 대학로 지하 소극장이었어. 대학로 뒷골목, 김광석 금동 주물이 벽면에 새겨진 건물이야.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그 옆에 수입 과자점이 있고 그 앞으로 맥줏집이 있어. 또 바뀔 테지. (이 글을 업로드하는 시점은 김민기 연출님이 돌아가셨고 극단 학전의 역사가 매체의 기록, 문화적 수혜를 입은 사람들의 기억으로만 남게 된 때야.) 극장 앞을 지날 때면 시간의 흐름이 느껴져 마음 한 편이 허무해지기도 해. 23년 그곳을 지날 때면 폐업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에 마냥 쓸쓸해지곤 했어. 한 시대가 지나가는 느낌. 마지막 문을 닫기 전 여러 가수와 배우들이 거기서 공연을 했는데, 그때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사람이나 공간이 가도 그때의 기억이 남아서 자신은 이곳을 계속 사랑하겠다는 늬앙스로 글을 남겼는데, 그게 마음에 많이 와닿았어.
내가 그 극장에서 처음 본 공연은 학전 제작 공연은 아니고 최애 콘서트였어. 지하철 1호선도 보았지만 그건 학전그린이 아니라 학전블루나 다른 쪽 위치에서 봤고, 그린에서 본 최초 공연은 가수의 콘서트였어. 1999년 윤종신 공연. 생애 처음으로 내가 돈을 내고 티켓을 사서 며칠 내내 기다리다 두근거리며 가서 봤던 콘서트였어. 그 전엔 윤종신 콘서트를 친구가 선물해준 비디오 테이프로만 봤거든. 90년대 초중반을 늘 비디오데크에 비디오를 꽂아서 보던 윤종신 콘서트를 드디어 세기말 라이브로 보게 된 거지. 그때 정말 행복해서 포스터도 안 버리고, 그날 경품 추첨 종이도 안 버리고 그렇게 오래 간직했던 거 같아. 모토로라 휴대폰 증정 이벤트가 있었는데, 모토로라 휴대폰 모양으로 디자인된 종이에 번호가 적혀져 있었어. 지금은 그 종이를 버려서 없지만, 아직 형체는 기억이 나. 그 흔적 하나하나가 내겐 소중했어.
1호선 종각역 영풍문고에서 표를 사서 받았는데, 공연을 채 보기도 전에 너무 감동받은 바람에 그 자리에 내내 서 있었어. 청계천 앞으로 나 있는 그 계단 아래에서 오래 있다 나왔거든. 그때는 청계천 복개 공사 전이니깐, 고가도로가 있던 때구나. 아날로그를 경험한 세대이다보니, 표를 전화로 예약했던 것 같아. 실물 종이 표는 서점에 가서 받았어. 주로 나는 종로 영풍문고를 이용했어. 영풍, 교보, 종로 등 대형서점이 밀집된 그 지역은 90년대 나의 ‘시크릿 플레이스’이기도 했어. 거기에 가면 하루 종일 책을 읽고, 연이어 옆으로 이어져 몇 분만 가면 큰 서점들이 계속 나오니깐, 도서관으로 따지면 남산 도서관과 용산 도서관, 독일 문화원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것과 비슷한 위치 구도랄까.
윤종신 콘서트 티켓을 들고 학전 극장 앞을 찾았을 때 여러 관객들이 함께 공연이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었어. 그때 어떤 관객 한 명이 그 극장 마당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어. 나중에 내가 함께 일하게 된 어떤 이가 그런 모습을 자주 보였는데 어떤 시끄러운 환경에서도 조용히 집중하는 모습, 내가 좋아하는 모습이야.
어릴 적 나는 몹시 정신이 산만해서 반대로 그런 친구들을 보면 너무 친구가 되고 싶더라. 그렇게 어떤 공간에서 말없이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들을 보면 먼저 다가가는 편이야.
초등학교 때는 고무줄에 한때 너무 빠져서, 학교 가서 점심시간에 고무줄 할 생각만 한 적이 있어. 밥을 먹고였는지 점심시간 벨이 울리면 바로 그랬는지, 그저 그 교실 뒤뜰에서 고무줄을 했어. 특히 에이스라고 할 만큼 고무줄을 잘했어. 끝까지 남는 1인이었어. 한 줄일 땐 허리부터 입, 공중 손까지 올리는 줄 단계까지 가고 4~5각 정도로 대열을 만들 때도 허리 단계까지 가곤 했어. 그때 친구 한 명이 고무줄엔 관심이 없고, 그냥 내가 친구라서 좋아서 함께 나오던 친구가 있었어. 그 친구는 내가 다른 애들이랑 고무줄 할 때 그냥 계단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어. 어른이 되어 그 친구는 외국을 오가며 호텔 체인에서 일했는데, 사람들이 놀고 있을 때 옆에 지켜주던(?) 그 모습이 호텔 업무와 비슷하다 느꼈어. 윤종신 공연장 앞에서 책을 읽고 있던 관객 1인, 나는 그 사람을 보면서 어릴 적 고무줄 놀이 할 때 옆에 있던, 책 읽던 친구가 생각났어. 마치 센과 치히로의 ‘가오나시’ 같은 느낌이었던가봐. 지금도 분위기가 좋은 사람을 만나면 이상하게 내 눈에 가오나시처럼 보이기도 해.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사실 보고 있는 사람 마음이 투영될 수 있는 투명한 마스크를 지닌 거 같아. 극장에서 책을 읽으며 콘서트를 기다리는 사람, 그 열기 속 고요가 기억에 남고, 나는 그 사람이 읽고 있던 책 제목을 다음 닉네임으로 쓰기도 했어. 그 닉네임을 꽤 오래 썼는데, 세월이 흘러 어느 날 어떤 출판업계 대표님이 내게 자기 친구가 쓴 소설 제목을 내가 이메일 이름으로 썼다고 하는 거야. 바로 99년의 그 책 이름이 다시 소환돼 신기했어. 소설책이었고 제목은 <바다로 가는 자전거>
지금도 월급에서 가장 많이 쓰는 부분은 책과 공연, 영화, 전시 등이야. 한 달 수입의 일정 퍼센트를 공연에 쓰고, 여윳돈이 좀 나오면 다시 또 공연, 미술관, 영화 관람이지. 돈을 더 벌면 해외를 오가며 전시 공연 영화제를 쏘다닐 거 같아. 아무때나 오가며 더 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정도가 아니라서 좁은 선택 범위 내에서 추려서 보니 더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도 같고. 사실 봐도 봐도 끝이 없을 테니깐.
윤종신의 99년 콘서트를 시작으로, 나는 홀로 또는 함께 수많은 공연을 보았고 그건 ‘습관’이 되었어.
"습관이란 게 참 무서운 거더군."
나는 지금도 개인 일정이 바빠서 공연을 못 보는 날에는, 뭔가 허전하고 그래. 막 극장에 가고 싶고 공연하는 사람들 만나 얘기도 나누고 싶고, 다음에 만날 공연에서 나는 어떤 걸 느끼게 될까 기대하게 되고, 공연 중심의 스케줄표를 따로 짤 정도야. 그때 99년 윤종신 콘서트에선 게스트로 ‘롤러코스터’와 ‘플라워’가 나왔던 거 같아. 플라워는 밴드로 나오진 않고 고유진 혼자 출연했을 거고, 롤러코스터는 밴드 완결체로 등장했던 듯해. 듣자마자 조윤선과 고윤진 음성에 반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