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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아프레스 Oct 21. 2024

'우리는 어쩌면 만약에' 라디오로 연결된 리스너

사적인 가요 

https://youtu.be/XLHgsIifrhA?si=LbMh9Jk82DO2HUU7


자주 꿈을 꿔. 상처받았을 땐 잠을 많이 자려고 하지. 그러면 깊이 잠들진 않아도 갖가지 꿈을 꾸는데, 그 꿈들이 결국 나를 다독이거든. 직장 내 워크숍을 제주도로 다녀온 어느 날, 너무 괴로웠던 적이 있어. 조직 생활이 나와 너무 맞지 않는다는 판단을 그곳에서 했거든. 과도한 의전과 형식주의, 평범한 대화들. 그런 게 참기 몹시 힘들었어. 사람도 음식도 모두 맞지 않는다 생각했어. 한밤의 술자리를 안 가고 혼자 제주 시내를 걸었어. 걷다 문득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을 틀어주는 극장에 들어가 심야 영화를 보고, 숙소에 돌아가 잠을 청했어. 겨우 버텼고, 심리적으로 바닥을 치고 있었어. 

서울로 돌아온 바로 다음 날, 왜인지 예전에 친했던 사람들이 연달아 꿈에 나타났어. 인파 속에서 나는 그들을 찾았고 만났고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눴어. 그리고 시간이 좀 흐르자 괴로웠던 마음도 누그러들고 잠잠해졌어. 다시 현실을 그럭저럭 인정하는 단계에 이르렀달까. 과거 인연을 끌어와 스스로 고갈된 마음을 채웠던가 봐.

그럼 잠들지 않았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홀로 고심하다, 무심코 자주 하던 행동을 찾아냈어. 옛날 라디오 듣기. 요샌 유튜브로 지난 라디오 녹음 파일을 올려놓으니, 그걸 찾아 듣곤 해. 좋아했던 디제이나 초대 손님을 검색해 과거 어떤 날의 오프닝 멘트나 대화 등을 듣곤 하지. 비단 예전 라디오 프로그램만이 아니라 요사이 프로그램을 다시 듣기도 하고, 라디오 매체를 찾는 거야. 

거기에선 시간이 직선이 아니라 곡선인 채 회전하는 것만 같아. 사람들은 집 앞 등굣길 나를 기다려주는 친구나 옛 연인처럼 온정적으로 한없이 다정해. 각자 조건 없이 타인의 사연을 함께 들어주고, 모르는 사람에게 힘을 내라며 응원을 거두질 않아. 

물론 지금도 그런 친절이 도처에 존재할 때도 있지만, 어쩐지 돈과 교환된 인위적이고 형식적 친절이 더 많은 것 같아. 돈을 더 높여 지불 하면 서비스가 좋은 식당이나 미장원을 갈 수 있듯이 말이야. 그리고 지금 당장 길에서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면 좀 이상한 종교인 취급을 받을 수도 있어. 이웃 사이도 마찬가지지. 나도 지극히 개인주의자라 집 부근에 아는 사람을 만들기는 싫어. 익명성을 보장받고 싶거든. 

그런데 왜인지 타인에 대한 애정이 줄거나 인류애가 바닥으로 내려앉을 땐, 일부러 라디오 음악방송을 듣게 돼. 그 안에는 사연으로 위로받는 사람들과 그에 맞는 멜로디가 흐르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플랫폼이 많아진 시기에, 다른 이가 선곡해 준 음악을 들으면서 자기 삶을 어루만지는 경로가 낯설기도 하지. 요샌 음악 선물이나 서로에게 음악 추천마저 많이 하지 않는 시대 같거든. 나의 사적 환경이 그런 걸까. 

자신의 에너지가 고갈되고 주변을 보듬는 게 지칠 때면 라디오를 들어보는 건 어떨까? 거기엔 내 얘기 같지만 남의 얘기이고, 그게 언젠가 내 얘기가 될 수도 있고, 우리 얘기가 되는 다양한 사연들이 있어. 그리고 그 끝엔 꼭 노래를 듣지. 마무리는 노래야. 

지금 가장 인기 있는 노래를 스스로 정의할 수 있을까? 유행가라는 정의는 새롭게 써야 하는 게 아닐까? 발매 시점 기준으로 음악을 듣는 시대가 아니라 이젠 굉장히 개인적인 청취 시대가 되었잖아. 휴대폰으로 어느 때든 사적으로 음악에 접근할 수 있으니깐. 유튜브 콘텐츠를 듣는 청취자나, 자기가 직접 선곡 해서 듣는 사람에게 유행가라는 건 무색할 수도 있어. 옛 노래가 자신에겐 지금 노래일 수도 있고, 아직 발매되지 않은 어떤 스타일의 곡을 기다릴 수도 있지.  

바로 여기서 적극적으로 나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곡, 그게 나를 설명하는 곡이 아닐까. 누군가에는 유년기 시절 노래일 수도 있고 바로 지난해 곡일 수도 있을 거야. 지금 곡은 영원히 없을 수도 있어. 시간은 정지하지 않고 흐르니깐, 지금은 늘 과거가 돼 버리잖아. 행복했던 한때를 영원히 박제해 주는 음악, 그게 네겐 어떤 곡일까? 그 곡이 기억의 촉매제이자 심장충격기로 미래에 당신이 쓰러졌을 때, 다시 일으켜 세워줄 수 있을까?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면 우연의 힘을 빌려, 지금 라디오를 틀어 처음 듣는 곡, 그 곡일 수도 있어. 서로 모르는 낯선 누군가들과 같은 주파수로 듣고 있는 그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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