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며느리여서 죄송합니다. 아버님.
아버님이 돌아가신지 올해로 6년째. 큰아이가 만 6살이니까 아버님 돌아가신지가 꼭 6년이다.
해현이 태어나서 두어번 손주 안아보셨었던가..
시아버지는 그해 추석 지나 돌아가셨다.
췌장암 이셨다. 너무 늦게 발견하기도했거니와 췌장암은 예후가 너무 나쁜 병이어서 병원에서도 힘들다 했었던것 같다.
먼저 친정엄마를 떠나보냈던 나는 신랑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지 모르지 않았을텐데, 난 그때 임신 중이었다는 핑계로 시아버지 병문안도 몇 번 안갔었던것 같다.
며느리가 되서 병수발 한번을 안드냐며 우리 부부내외를 꾸짖는 시누이만 야속하게 생각했었다.
아버님 병원에 계시는동안 시누이는 반찬해다 나르고, 저녁으로는 병상을 지키며 딸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그런데 신랑은 일하는라 바빠서, 난 배불러 있으니 힘들다는 핑계로 자식노릇 변변히 못했었던 기억이난다.
난 우리엄마 아파 누워있었을때 나도 내가 병수발 다했고, 그때 신랑한테 사위노릇 못한다는 맘을 갖지도 않았을뿐더러, 그 누구에게도 자식 노릇 못한다는 지적을 하지 않았었다는 내 논리로 가득차 있었다.
그런데 시누이가 왜 내게 자기부모 병수발을 드는거에 생색을 내면서 나에게 자식노릇 못한다고 꾸짖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시누이를 야속하고, 밉게만 생각했었다.
아버님 돌아가시고 나서도 난 크게 슬퍼하지 않았다.
내 일이 아닌 것만 같았다.
내게 시아버지 존재가 그리 크지 않았었던 것도 있었을테고, 결혼하고 그 해에 엄마잃는 큰일을 치루면서 신랑에게 느낀 상실감들이 계속 남아 있어서 였을것이다.
그래서 난 그때 신랑을 위로해주지 않았었다.
신랑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그러고 첫 제사.. 그땐 첫제사라고 있는 정성 없는 정성 다 해서 음식을 모두 내가 했었다. 해현이 업고서 아침일찍부터 하루종일 음식을 만들었다. 시누도 첫 제사땐 우리집에 오셨었는데, 교회를 믿는 시누이는 제사음식 남은것을 싸주는걸 싫어했었다. 집이 멀어 일찍 일어난다며 저녁도 못드시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셨다.
난 상차리고 난 음식들이 너무 많아 냉장고에 들여놓았다가 결국 버려야만했다.
음식이 아까웠다. 내 정성들이 아까웠었다.
내 마음이 버려지는것 같아서 속상하고 화가났었다.
이럴바엔 다신 제사상 안차릴거라고! 신랑에게 화를 냈었다.
그러고 다음해엔가는 제사음식을 모두 사서 차렸다.
인터넷으로 주문을하고 신랑이 터미널가서 받아다가 접시에만 꺼내놓고 제사상을 차렸다. 그러고 남은 제사음식들은 역시나 냉장고행. 그리고 몇일 뒤 거의 모두 버려졌다. 우리식구끼리만 제사를 지내니 그것도 왠지 쓸쓸하고 허전한게 아버님 제삿날이 초라하게만 여겨졌었다.
그렇게 몇 해를 간단히, 간편히, 서로 싸우느니 서로 타협하며 적당히 제삿날을 보냈던것 같다.
음식하는게 고되긴 하지만 내가 음식을 할줄 모르는것도 아니요, 제사음식 하는걸 어려워 하는사람도 아닌데,
왜 아버님 제사가 이렇게까지 초라해졌었을까..
그리고 오늘...
6년만에 아버님 제사상을 다시 처음처럼 내손으로 하나하나 정성들여 모두 만들어 차려봤다.
아침일찍 둘째 데리고 마트가서 장보고,
낮 2시까지 재료손질해놓고, 산적재워놓고, 나물 무쳐놓고.
큰아이 승마가는 날이어서 거기 데려갔다오니 오후 5시.
그때부터 의자한번 앉지않고 동그랑땡 만들고, 꼬지전 만들고, 동태전, 두부전, 탕국끓이고, 생선 굽고, 산적굽고, 밥 앉히고...
8시가 될 때쯤 제사상에 올라갈 음식이 다 만들어졌다.
난 혼자서 시간안에 다 만들어낸 것에 자축했다.
혼자서 히죽히죽 웃어가며... 맛있게 잘했다고 엄청 신이나 있었다. 몸이 힘든건 그냥 잊혀졌다.
제기 꺼내와 상을 차려놓고 신랑과 두 아이들 데리고 제사를 지냈다.
향을 피우고, 초를켜고 아버님 영정사진을 꺼내와서 절을했다.
사진속 아버님 표정이 어쩐지 살짝 삐져 있으신 것 만 같았다,
좋아하실줄 알았는데, 왜 살짝 삐져보이실까...?
내가 그동안 아버님 제사상에 마음을 안담아서 못내 서운하셨겠구나.... 죄송했다.
진심으로....아버님 제사상에 내 마음을 내보였다.
그동안 못난 며느리여서 죄송하다고..
아버님께 사죄드렸다.
그리고 아버님 제삿날은 시누이 생일이기도 하다.
난 그동안 제삿날 오지 않는 시누이가 야속해서 생일축하 인사 한번을 않했었다.
그 맘도 내가 가진 불편한 마음인것 같아 내가 내려놔야함을 실천해봤다.
누님 생신축하드린다고, 짧은 문자하나로 어색하게나마 인사를 전했다.
누님도 본인 생일날이 아버지 제삿날이라는게 아픈 일일텐데.. 누님의 맘은 헤아려보지 못했다.
다음해엔 선물이라도 하나 보내봐야지..
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을 다 했으니, 오늘 하루 값지게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