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라는 공동체와 '내 집'이라는 욕망
한국인에게 '집'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우리 집"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가족과 함께 사는 공간이라 '우리'라는 단어를 붙이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언젠가 꼭 '내 집'을 가져야겠다는 열망이 숨겨져 있다. 집은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안정과 성공의 상징이 된 지 오래되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렇게 집을 소유하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 낯설지가 않다. 이 현상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문화적 배경과 역사, 그리고 다른 사회와의 비교, 요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집을 대하는 심리를 두루 살펴봐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유교적 가치관과 가족주의가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 조선시대부터 가족의 안위와 번영은 중요한 덕목이었고, 집은 곧 가문의 기틀로 여겨졌다. 현대에 들어 이러한 사고방식은 “가정을 꾸리려면 우선 집이 있어야 한다”는 통념으로 이어졌다. 특히 남성이 결혼 전에 내 집을 마련해야 가장 노릇을 제대로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존재한다. 부모 세대는 자녀에게 공부를 시키며 “나중에 좋은 직장 들어가서 서울에 아파트 한 채 장만해야지”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사람도 있었다.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한국전쟁 직후에는 집을 잃고 가족과 흩어지는 비극을 숱하게 겪었고, 이후 안정된 내 집에 대한 갈망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가족주의적 사고는 주거 안정에 대한 인식과 맞물렸다. 집은 단순한 재산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삶을 꾸리는 안식처다. 1960~70년대 산업화 시기에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모여든 사람들에게 가장 절실했던 것도 “우리 식구가 발 붙일 곳”이었다.
당시 서울 등 도시의 주택난은 심각했다. 1966년 서울에서는 판자촌 화재로 수십 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벌어졌다. 그 시절 많은 서민 가정은 열악한 단칸방 신세를 면치 못했고, '집 없는 설움'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집을 소유하지 못한 서민들이 겪은 고통은 다음 세대에 각인되었고, "우리 가족이 쫓겨나지 않고 살 곳이 필요하다"는 의식이 강렬해진 것이다.
경제가 급성장한 20세기 후반, '부동산=성공'이라는 새로운 서사가 한국 사회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고도성장 속에서 부동산 가격도 덩달아 뛰었고, 운 좋게 집을 산 사람들은 저축 이자보다 훨씬 큰 재산 증식을 맛보았다. 이를 지켜본 사람들 사이에선 “땅이나 집만 사두면 큰돈을 번다”는 믿음이 퍼졌다. 실제로 마포아파트 같은 서울의 초기 아파트들은 1966년 시세 90만 원에서 30년 뒤 재건축 후 1억 9천만 원으로 200 배가 상승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베이비붐 세대는 어린 시절 겪은 가난과 주거 빈곤을 떨쳐내기 위해 집에 집착했고, 부동산 가격 폭등기의 짜릿한 기억은 “인기 지역 아파트 값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신화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집을 가진 이와 못 가진 이의 격차가 커지면서, 집은 곧 사회적 성공과 계층 상승의 티켓처럼 여겨졌다. 실제로 한국전쟁 후 수십 년간 "명문대 학위 + 서울 아파트 한 채"가 중산층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인식이 팽배했고, 그 결과 한국 가계자산의 약 3/4이 부동산에 몰릴 정도였다. 요컨대 한국의 문화적 토양에서는 가족을 위한 안정, 그리고 압축성장기의 성공 신화가 겹쳐지며 '내 집 마련'은 누구나 꿈꾸는 인생 목표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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