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봉책은 어떻게 우리를 절망으로 빠지게 하는가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어김없이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바로 '부동산 대책' 발표이다. TV 뉴스를 켜면 정장 차림의 관료들이 나서서 LTV 규제 강화, 세제 개편, 공급 확대 같은 구호를 쏟아낸다. 한때는 이런 발표에 귀를 기울이던 시민들도, 이제는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들기 일쑤이다. "이번엔 또 뭘 바꾼다는 거야?" 말투엔 기대보다는 피로와 냉소가 배어 있다. 솔직히, 너무 자주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정책 발표 때마다 잠깐 시장이 술렁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집값이 다시 오르고 말았던 기억이 수도 없이 쌓였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이렇게 많은 대책이 나왔는데도 내 집 마련은 더 어려워진 걸까? 왜 대책 발표 때마다 희망 대신 한숨이 늘어만 가는 걸까?
이 물음에 답하려면,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단기 처방에 의존해 왔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들은 문제의 근원을 건드리기보다는, 당장 눈앞의 불을 끄는 데 급급한 대책들을 남발해 왔다. 그러다 보니 비슷한 정책 레퍼토리가 정권만 바뀌면 또 재등장하는 것이다. 국민 입장에서는 마치 고장 난 녹음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정권 A에서 강화했던 규제를 정권 B에서 풀고, 다시 정권 C에서 조이는 식의 정책 롤러코스터는 시장에 혼란만 키웠다. "정책을 위한 정책"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닌 것이다. 대책 발표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린 듯한 이 악순환 속에서, 사람들은 이제 서서히 지쳐 가고 있다.
이번 장에서는 이러한 단기 부동산 정책들의 구조적 한계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대출 규제(LTV/DTI 조정), 세금 정책 변경, 공급 확대 발표, 청약 제도 개편 등 역대 정부가 즐겨 써 온 정책 메뉴들의 반복과 그 한계를 짚어볼 것이다. 또한 참여정부부터 최근 직전의 정부까지 각 시기별 대표적인 부동산 대책과 그 결과를 비교 분석해, 왜 매번 비슷한 처방이 등장했는지 살펴보겠다. 결국 문제는 구조적인 것이 원인인데, 우리는 왜 매번 땜질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는가? 정권과 상관없이 반복되는 부동산 정책의 허구성과, 그런 땜질 처방이 누적되며 만들어낸 사회적 피로감까지 함께 고민을 해보겠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어떤 정부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 한 이유를 문명사적 시야에서 통찰해 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부동산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정부가 꺼내 드는 단기 처방들은 대개 비슷한 패턴을 보이다. 첫째, 대출 규제이다. 집값이 오르기 시작하면 곧바로 LTV(담보인정비율)와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를 강화해 대출 '돈줄'을 죄는 조치가 나온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초 주택담보대출 급증에 대응해 2002년 우리나라에 처음 LTV 규제가 도입되었고, 2005년 이후 정부는 정기적으로 LTV·DTI 규제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런 금융 규제는 투기 수요를 억제하려는 의도지만, 항상 지속적으로 실행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반대로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 또 규제를 풀어야 했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대출을 막아 집값을 잡으려 하고, 다른 쪽에서는 경기가 안 좋으면 대출을 풀어 거래를 살리려 하니, 이래저래 LTV와 DTI는 널뛰듯 왔다 갔다 했다. 시장 입장에서는 정책이 일관성이 없으니 혼란스럽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간다"는 말처럼, 차라리 손을 안 대는 편이 나았을 거라는 푸념까지 나올 정도였다.
둘째, 세금 정책의 손질이다. 집값이 뛴다 싶으면 양도소득세나 보유세를 강화하고, 너무 꽁꽁 얼어붙는다 싶으면 세제를 완화해 거래를 유도하는 식이 반복되었다.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에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종합부동산세 신설 등 세금으로 투기를 잡으려 했고, 일시적으로 효과를 보는 듯했다. 그러나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이런 세제는 다시 손바뀜을 겪었다. 다음 정부인 이명박 정부는 경기를 부양한다며 종부세를 완화하고 각종 세 부담을 낮췄다. 이렇게 정권 교체마다 세법이 자주 바뀌다 보니, 시장에서는 "어차피 오래 못 갈 거야"라는 학습 효과가 생기게 되었다. 실제로 부동산 세제가 정권마다 잦은 변화를 반복한 탓에 “어차피 또 바뀔 테니 지금 버티자”는 인식이 강해졌다. 다주택자는 세금이 높을 때 서둘러 파는 대신, 다음 정부에서 세금이 완화될 것을 기대하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그러니 매물은 안 나오고, 시장에 잠재된 가격 상승 압력은 오히려 커지는 역효과가 나타났다. 세금이라는 도구도 이처럼 정치적 시간표에 따라 강화와 완화를 반복하며 신뢰를 잃어갔다.
셋째, 공급 확대 발표이다. 집값 급등으로 민심이 흉흉해지면 정부는 어김없이 “주택 공급 물량을 늘리겠다”는 발표를 했다. 신도시를 조성하고 재개발 규제를 풀고, 수도권 외곽에 택지를 개발해 몇십만 호를 공급하겠다는 식의 청사진이 쏟아졌다. 이런 공급 대책은 듣기에는 근본 대책처럼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시차와 현실성이다. 오늘 발표한다고 내일 아파트가 지어지는 게 아니니, 당장의 가격 급등에는 효과가 없다. 오히려 발표 직후엔 기대 심리로 시장이 잠깐 안정되는 듯해도, 곧 “그 많다던 공급은 대체 언제 나오나” 하는 불신으로 바뀌곤 했다. 더구나 역대 정부의 신도시 정책을 돌이켜보면, 물리적인 주택 공급은 늘렸어도 핵심은 해결 못 한 경우가 많았다. 1980~90년대 1기 신도시(분당, 일산 등)부터 최근 3기 신도시까지 꾸준히 서울 외곽에 '미니 신대륙'을 건설했지만, 정작 서울로의 인구 집중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주택만 옮겨 놓았지 일자리와 교육, 문화 등 핵심 기능은 여전히 서울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신도시들은 서울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의 베드타운이 되기 십상이고, 사람들은 여전히 하루 두세 시간씩 탈진 상태로 출퇴근해야 했다. 그런 생활의 어려움은 다시 서울 중심으로 돌아오고 싶은 수요로 이어져, 서울 집값을 근본적으로 잡는 데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요컨대 공급을 늘린다는 약속 역시, 그 공급이 삶의 질을 담보하는 제대로 된 공간이 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는 교훈만 남겼다.
넷째, 청약 제도와 기타 규제의 손질이다. 부동산 대책 때마다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가 바로 청약 가점제, 분양권 전매 제한, 실거주 요건 강화 같은 거래 제도 변경이다. 예를 들어 청약 가점제를 손봐서 무주택 실수요자의 당첨 확률을 높이겠다거나, 분양권을 전매할 수 없게 묶어서 투기 수요를 차단하겠다는 식이다. 이런 조치들은 각각 나름의 논리는 있지만, 시행과 철회를 거듭하며 엇박자를 낳았다. 어떤 시기에는 청약 가점을 높여 실수요자를 보호한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가점제가 젊은 층에게 불리하다고 다시 완화하거나 특별공급 비율을 조정하는 식이었다. 분양권 전매 제한도 마찬가지이다. 묶었다 풀었다를 반복하니 투기 수요자는 결국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실수요자는 갈팡질팡하게 된다. 정작 중요한 건 지속 일관성인데, 정책이 몇 년 주기로 방향을 바꾸면 사람들이 정책 자체를 믿지 않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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