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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중장기 구조 개선

토지 공개념, 다시 꺼내야 할 카드인가

by 블루프린터

지난 수십 년간 우리는 참으로 많은 부동산 정책을 지켜봤다. 공급을 늘리면 된다고 해서 1기, 2기, 3기 신도시를 연달아 지었고, 투기를 잡겠다며 LTV와 DSR 같은 어려운 용어들로 대출의 문턱을 높이고 양도세와 보유세를 끊임없이 손질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켜켜이 쌓인 정책 서류의 두께만큼 국민의 한숨은 깊어졌다. 잠시 주춤하는 듯하다가도 집값은 어김없이 더 높은 곳을 향해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고,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이라는 슬픈 신조어는 이제 우리 세대의 평범한 자화상이 되어버렸다. 8장에서 살펴보았듯,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해열제를 투여하는 식의 땜질식 처방은 더 이상 희망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정책에 대한 불신과 반복되는 좌절감만 안겨줄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부터,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문제의 현상, 즉 치솟는 집값이라는 열병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 병을 만들어내는 구조, 즉 병든 몸 자체를 외면해 온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감히 ‘금기’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아야 할 때다. 지난 수십 년간 이념 논쟁의 묵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우리 사회의 창고 깊숙이 처박혀 있던 낡은 카드, 바로 ‘토지 공개념(Public Concept of Land)’을 다시 꺼내 들어야 한다. 이 단어가 주는 정치적 무게감과 ‘사유재산 침해’라는 오래된 오해의 프레임을 잠시 내려놓아 보자. 그리고 우리가 처한 ‘신대륙 없는 나라’의 절박한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열쇠일지 모른다는 진지함으로 그 본질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것은 사유재산을 부정하자는 낡은 이념의 구호가 아니다. 오히려 토지라는, 인간이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유한한 공공재가 특정 계층의 부를 축적하고 대물림하는 수단이 아니라, 공동체 모두의 안정적인 삶의 기반이 되도록 사회 계약을 새롭게 설계하자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제안이다. 이 장에서는 토지 공개념의 정신을 21세기 대한민국 현실에 맞게 구현할 구체적인 방안으로, 공공이 신규로 조성한 택지를 더 이상 팔지 않고 장기 임대하는 ‘임대형 택지공급’ 모델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것이 어떻게 ‘압력솥 사회’의 증기를 빼낼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있는지, 그 논리와 현실적 가능성을 차근차근 따져볼 것이다.


땅 장사하는 공기업의 역설: 누가 진짜 이익을 보는가


우리나라 주택 공급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한국토지주택공사, LH를 빼놓을 수 없다. LH는 지난 수십 년간 국가의 주거 안정을 책임지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저렴한 공공임대주택을 짓고, 대규모 택지를 개발하여 주택 공급의 숨통을 틔워준 공로는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바로 그 LH가 대한민국 부동산 문제의 심장부에 자리한 거대한 모순의 주체라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마치 불을 꺼야 할 소방관이, 역설적이게도 불이 나야만 운영비를 벌 수 있는 기이한 처지에 놓인 것과 같다.

LH의 사업 구조는 태생적으로 ‘교차보조(cross-subsidy)’라는 기이한 방식에 의존한다. 쉽게 말해,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공공임대주택 건설과 운영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적자를 메우기 위해, 다른 곳에서 이익을 내야만 하는 구조다. 그 이익은 어디서 오는가? 바로 공공의 필요를 위해 개인의 재산권을 제한하는 ‘토지수용권’이라는 강력한 권한을 동원해 저렴하게 사들인 논밭과 임야를 개발한 뒤, 민간 건설사나 개인에게 비싸게 팔아서 남기는 차익, 즉 ‘땅장사’와 ‘집 장사’에서 온다.


여기에 모든 문제의 뿌리가 있다. ‘국민 주거 안정’이라는 공적 사명을 띤 공기업이, 아이러니하게도 부동산 가격이 올라야만 생존하고 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에 갇혀버린 것이다. 실제로 LH의 영업이익 추이와 주택·토지 가격 변동률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는 모습을 보인다. 부동산 시장이 광적으로 과열되어 땅값과 집값이 치솟았던 2021년, LH는 무려 5조 6,486억 원이라는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반대로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기 시작한 2022년 이후로는 영업이익 역시 곤두박질쳤다. 이는 LH의 경영이 부동산 투기와 가격 상승이라는 거품에 편승하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증거다. 국민의 주거 안정을 위해서는 집값이 안정되어야 하는데, 집값이 안정되면 LH는 적자에 허덕이게 되는 이 끔찍한 자기모순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구조적 문제다.

더 심각한 것은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개발이익’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개발이익이란 개발이익 환수제의 대상이 되는 좁은 의미로서 일반적인 부동산개발사업의 이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노력 없이, 국가의 도시계획 변경이나 사회기반시설 투자 같은 공공의 노력으로 인해 땅값이 오른 부분을 말한다. 당연히 이 이익은 사회 전체에 환수되어 공익을 위해 쓰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LH가 택지를 민간에 매각하는 순간, 개발이익의 대부분은 민간 건설사와 ‘로또 분양’에 당첨된 일부 초기 분양자의 몫이 되어버린다. 여러 연구 분석이 이를 뒷받침한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초반에 입주한 부천상동지구의 경우, 아파트 한 채에서 발생한 총 개발이익 약 1억 7,680만 원 중 택지개발자인 LH의 몫은 고작 2.7%(470만 원)에 불과했다. 건설사가 5.8%를, 그리고 최초 분양자가 무려 91.7%(1억 6,180만 원)를 가져갔다. 최근의 광교신도시 사례는 더욱 극적이다. 발생한 개발이익 14조 2,626억 원 중 LH가 환수한 몫은 5.1%(7,248억 원)에 그쳤고, 초기 분양자들은 81.4%에 달하는 11조 6,072억 원의 불로소득을 얻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공적인 권한을 이용해 만든 부(富)를 사유화하는 거대한 파이프라인이나 다름없다. 결국 국가는 땅을 수용당한 원주민의 희생과 국민 전체의 세금을 들여 신도시를 만들고, 그 과실은 소수의 민간 참여자가 독차지하는 불합리한 구조가 수십 년째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 ‘매각형’ 택지공급 방식은 단순히 불공정할 뿐만 아니라, 주택 시장 자체를 왜곡하고 불안정하게 만든다. ‘분양만 받으면 수억 원을 번다’는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주택은 ‘사는 곳(live)’이 아닌 ‘사는 것(buy)’으로 전락했고, 전 국민이 청약 시장에 뛰어드는 투기 광풍을 불러일으켰다. LH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는커녕, 오히려 그 속에서 이익을 창출해야만 하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이제는 이 비극적인 역설의 고리를 끊어낼 용기가 필요하다. LH가 더 이상 땅장사에 내몰리지 않도록, 그 사업 구조의 근본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변화는 시작되어야 한다.


새로운 상상력: 땅은 빌리고 건물만 분양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발상의 전환은 의외로 간단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공공이 조성한 땅을 왜 팔아야만 하는가?" 만약 LH가 땅을 팔지 않고, 소유권은 영원히 공공이 가진 채, 그 땅을 사용할 권리, 즉 ‘토지이용권’만을 장기 임대해 준다면 어떻게 될까? 이것이 바로 이 책에서 제안하는 ‘임대형 택지공급’ 또는 ‘공공토지임대제’의 핵심으로서 신규택지 공급에 대한 토지공개념 도입이다.

이 모델에서 개인이나 민간 건설사는 토지를 임차해 그 위에 아파트나 상가를 짓고, 건물에 대한 소유권만을 분양하거나 소유하게 된다. 수분양자는 건물 가격만 지불하고 아파트를 분양받는 대신, 토지 소유주인 공공에 매달 혹은 매년 일정한 토지임대료를 납부한다. 이는 우리가 흔히 아는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을 일부 특수한 주택 유형이 아닌, 공공택지 전체에 적용하는 포괄적인 시스템으로 전환하자는 제안이다. 이 방식은 앞으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 주택 가격의 거품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 서울 아파트 가격의 절반 이상은 토지 가격, 즉 땅값이다. 임대형 택지공급은 이 땅값을 분양가에서 완전히 분리해 낸다. 가령 현재 12억 원짜리 서울 아파트가 있다면, 그중 토지 가치가 7억 원, 건축비가 5억 원이라고 가정해 보자. 현재 방식으로는 12억 원 전부를 대출과 현금으로 마련해야 하지만, 임대형 모델에서는 초기 구입 비용이 5억 원으로 대폭 줄어든다. 대신 매달 토지 가치에 대한 임대료를 지불하게 된다. 이는 ‘영끌’을 하지 않고도 월급을 모아 집을 살 수 있는 시대를 다시 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둘째, 부동산 투기의 불씨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부동산 투기의 핵심은 ‘시세 차익’, 즉 미래의 땅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다. 그러나 공공토지임대제 하에서는 토지 소유권이 공공에 영구히 귀속되므로, 땅값이 아무리 올라도 그 이익은 개인이 아닌 공공에 귀속된다. 주택 소유자는 오직 건물의 감가상각을 제외한 사용가치만을 누리게 되므로, ‘로또 아파트’ 신화는 사라지고 주택 시장은 자연스럽게 실수요자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다.

셋째, 개발이익을 온전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사회에 환수할 수 있다. 땅을 한번 팔아버리면 그걸로 끝이지만, 임대 모델에서는 신도시가 성숙하고 인프라가 확충됨에 따라 상승하는 토지의 가치가 매년 걷는 임대료에 반영된다. 이 안정적이고 영구적인 임대 수입은 LH가 더 이상 땅장사에 기댈 필요 없이, 공공임대주택 확충, 노후 인프라 개선, 주거 복지 확대 등 본연의 공적 역할을 수행할 튼튼한 재정 기반이 되어줄 것이다.


이것이 단순한 탁상공론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세계 여러 도시가 증명하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싱가포르는 1960년대 초 판자촌의 대화재를 계기로 강력한 토지수용법을 통해 국유지를 적극적으로 확보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60년 44%에 불과했던 국유지 비율이 2005년에는 85%까지 상승했고, 이를 기반으로 장기 임대 방식의 저렴한 공공주택(HDB)을 공급함으로써 높은 주거 안정성을 달성했다.

혹자는 싱가포르의 권위주의적 정치체제 때문에 가능한 모델이라고 폄하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 뉴욕 맨해튼의 사례를 추가로 들어볼 수 있다. 허드슨강 변의 고급 주거 및 상업지구인 ‘배터리파크시티’는 바로 이 공공토지임대 방식으로 개발되었다. 1970년대 뉴욕 주정부가 설립한 공사가 연 6.25%라는 당시로서는 만만치 않은 금리로 2억 달러의 채권을 발행해 허드슨강을 매립하고, 이 땅을 민간 개발자에게 99년간 임대해 주었다. 초기의 어려움을 딛고 1990년대부터 본격적인 수익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2014년까지 모든 국채를 상환했다. 여기서 나오는 막대한 임대료 수입은 이제 뉴욕시의 저소득층 주택 공급을 위한 핵심 재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실제로 2024년부터는 뉴욕시 전역의 저렴한 주택 건설 및 유지를 위해 5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발표하기까지 했다. 이는 공공토지임대제가 이념의 문제를 떠나, 도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매우 실용적이고 효과적인 금융 모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재원과 제도의 설계


물론, 이 거대한 전환이 장밋빛 환상만은 아니다. 가장 먼저 부딪히는 현실적인 질문은 ‘재원’ 문제다. 당장 택지를 팔아 사업비를 회수하던 구조에서, 수십 년에 걸쳐 임대료를 받는 방식으로 바꾸면 LH는 초기에 막대한 자금 압박에 시달릴 것이고, 천문학적인 부채는 감당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솟을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일견 타당한 지적이다.

하지만 이 문제 역시 해결의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재정의 자기 조달(self-financing)’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의 분석에 따르면, 택지조성비를 주택도시기금 등에서 연 1.5% 정도의 저리로 융자받고, 조성된 택지의 시장가치에 연동하여(가령 연 3%) 토지임대료를 책정할 경우, 사업 첫해부터 이자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는 순수입이 발생한다. 시간이 흘러 사회가 발전하고 토지 가치가 상승함에 따라 임대료 수입은 꾸준히 늘어나는 반면, 이자 비용은 고정되어 있으므로 그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진다. 시뮬레이션 결과, 사업 시작 후 16년에서 28년 차가 되면 누적된 임대료 수입만으로도 최초의 사업비(조성원가) 전액을 회수하는 것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마치 빚을 내어 입지 좋은 상가 건물을 사서, 매달 들어오는 월세로 대출 이자를 갚고도 생활비가 남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심지어 시간이 지나면 상가의 가치가 올라 월세도 올릴 수 있으니, 장기적으로는 매우 안정적인 자산이 된다. 공공택지는 그 어떤 상가보다도 우량하고 확실한 자산이다. 따라서 초기 재원 조달은 정부가 정책적 의지를 갖고 주택도시기금을 저리로 융자해 주거나, 시장 이자율보다 낮은 국민주택채권 발행을 확대하고, 약 1,000조 원 규모의 공공자금관리기금을 활용하는 등 다양한 금융 기법을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단기적인 현금 흐름이 아닌, 공공의 토지를 ‘영구적인 공공자산’으로 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영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또한 이 모델은 LH의 고질적인 ‘교차보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새로운 교차보조’의 길을 연다. 기존 모델이 투기적 분양 수익으로 공공임대의 적자를 메우는 불안정한 구조였다면, 새로운 모델에서는 같은 사업지구 내에서 발생하는 안정적인 토지임대료 수입의 일부를 그 지구 내 공공임대주택의 운영 적자를 보전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이는 외부 자금 수혈 없이 사업지구 안에서 지속가능한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앞서 본 배터리파크시티가 그 임대 수입으로 뉴욕의 저소득층 주거를 지원하는 것이 바로 이 ‘새로운 교차보조’의 성공적인 현실 사례다.


물론 제도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서는 몇 가지 보완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첫째, 공기업 경영평가 기준을 전면 개정해야 한다. 현재의 평가는 단기적인 수익성과 부채 비율을 중시하기 때문에, LH가 토지를 자산으로 쌓아두고 장기 임대 사업을 하면 나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임대형 택지공급 방식이 오히려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공공성 기여도나 장기 자산 가치 등을 핵심 지표로 삼는 새로운 평가 체계가 필요하다.

둘째,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앞으로 공공이 개발하는 모든 택지는 예외 없이 임대형으로 공급한다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만약 정부가 바뀔 때마다 일부는 팔고 일부는 임대하는 식의 정책이 반복된다면, 시장 참여자들은 언젠가 다시 ‘매각’을 통해 개발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를 버리지 않을 것이고, 이는 임대형 택지의 시장 외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셋째, 임대형 택지 기반의 신도시 바깥 부동산 시장의 투기를 억제해야 한다. 만약 다른 곳에서는 여전히 부동산 불로소득이 판을 친다면, 굳이 이익 공유가 제한된 임대형 택지 주택을 선호할 이유가 줄어들게 된다. 강력한 보유세 개혁 등을 통해 전반적인 부동산 시장에서 불로소득에 대한 기대를 차단하는 정책이 병행될 때, 임대형 택지공급 방식은 비로소 온전히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토지 공개념이라는 이름의 희망


결국 이 모든 논의는 우리가 ‘토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철학의 문제로 귀결된다. ‘토지 공개념’은 토지의 사적 소유 자체를 부정하는 공산주의적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민법이 보장하는 소유권의 세 가지 권능, 즉 사용권, 수익권, 처분권 중에서 핵심을 사회 공동체의 이익에 맞게 재구성하자는 지극히 현대적인 제안에 가깝다.

공공토지임대제는 토지의 최종적인 처분권과 토지 가치 상승으로 인한 수익권(불로소득)은 공동체(공공)가 갖되, 그 땅을 점유하여 집을 짓고 살아갈 안정적인 사용권은 개인에게 확실하게 보장하는 방식이다. 이는 토지라는 한정된 공유지의 비극을 막고, 토지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이 사회 전체의 활력을 앗아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사회 계약 모델이다. 사실 이러한 생각은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들이 폐정개혁안의 마지막 조항으로 ‘토지는 평균으로 나누어 경작하게 할 것’을 요구했던 것이나, 철학자 존 로크가 토지를 만인이 공유해야 할 신의 선물로 보았던 생각 속에 그 원형이 담겨 있다.


우리는 물리적으로 신대륙을 찾을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외부로 팽창하여 내부의 압력을 해소할 수 있었던 15세기 유럽의 행운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내부에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그것은 물리적인 영토의 확장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제도와 철학을 재구성함으로써 얻어지는 ‘사회적 신대륙’, ‘제도적 신대륙’이어야 한다.

토지를 투기의 대상이 아닌 삶의 터전으로 되돌리는 것, 개발의 이익을 소수가 아닌 공동체 모두가 공유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신대륙 없는 나라’ 대한민국이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열기 위해 반드시 개척해야 할 새로운 대륙이다. 그 여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오랜 관성과 기득권의 저항에 부딪힐 것이고, 수많은 논쟁과 사회적 합의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하지만 압력솥의 증기가 빠져나갈 유일한 출구가 밸브를 여는 일이라면, 우리는 그 길을 걸어갈 용기를 내야만 한다. 토지 공개념이라는 지도가, 어쩌면 우리가 애타게 찾아 헤매던 새로운 대륙으로 가는 가장 정확한 항로를 알려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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