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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쓴쓴 Sep 20. 2020

꿈을 자주 꾸시나 봐요?

나만 고양이 없어

이 사진은 벌써 2년이나 된 것인데, 간만의 꿈 이야기를 하는 데 마땅한 게 없어서 선택했다(2020.09.12)

다른 것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배경은 카페였던 것 같고, 고양이 집사 분이 뒤에서 쳐다보고 있었던 것 같고. 몽글몽글하게 생긴 고양이가 (아마도) 웃으며 나한테 다가오더니 턱과 목을 내주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하면서 귀엽다, 귀엽다 해주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부러워하던 추임새를 내던 게 기억난다. 집사 분도 처음이었는지 그런 모습을 사진에 담아 가셨었고.

꿈 따위에 무슨 이런 이야기까지인가 싶어도, 글쎄 이런 꿈이 너무 오랜만인 것 같아서다. 별 내용도 없지만 소소한 행복감이 칠해진 꿈. 무슨 이유일까, 무슨 뜻일까, 간밤의 일로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꿈.

늦잠을 자고 일어나 한참을 현실과 구분하지 못하고 그런 일이 정말 있었던 것처럼 추억했다. 참 좋았지, 그래 정말 좋았어, 이러면서.


한결같은 시선 처리. 나에게 조그만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완벽해!





그로부터 하루나 이틀이 지났었나, 너무 피곤한 나머지 선잠에 들었던 어느 화창한 낮에 탐험하는 꿈을 꾸었다. 조금 낯설었던 부분이 있다면, 나의 집이 그 탐험지였다는 것이고 탐험지 안에 좁지 않은 마당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둘의 조합은 현실이 아니라는, 꿈으로 의심할 만한 충분한 조건이었지만 언제나 그럴듯한 조건들은 꿈의 주인을 속인다.


그러나 가장 끔찍했던 꿈의 조건은 마당 한편에 놓여있던 이끼 낀 작은 분수대였는데, 그 위에 앉아있는 이상한 생물체였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것은 마치 이집트 신 같았는데 얼굴은 날짐승과 들짐승, 그 사이 어디쯤이었고 몸은 타잔처럼 열대 밀림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는 인간의 것이었다.


그 생물체 덕분에 여러 번의 진입 시도를 포기하고, 집에 들어가지 못한 채로 꿈에서 깬 나는, 아직 해가 떠 있는 낮임을 감사하며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부르르 떨었더랬다.




그리고 어제는 헤어졌던 이들과 함께 싸우는 꿈을 꿨다. 어렸을 적에는 절교라는 말이 유행했고, 요즘은 절연이니 '팽'이니, 가끔은 손절, 혹은 이별이라는 말을 쓰지만.


이 꿈은 왜 이리 또 그렇게 현실적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들이 묻는 질문은 지금 이 순간을 다루고 있는, 날카롭다기보다 심기를 거슬리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공격이었다. 골목길보다는 더 넓은 길을 따라 걷는데, 그들 한 명 한 명은 탁자 앞에 앉아서는 마치 스핑크스처럼 면접관 행세를 했다.


누군가는 탄식을, 다른 이는 고성을, 또 다른 자는 울었다. 돌아와라. 내 말을 들어. 나와 다시 잘 지내보자, 이러면서.


아쉬웠다. 꿈에서만큼은 조금 나아진 모습이었으면 좋았을... 까? 아니, 사실 장담할 수 없다. 뭐 이리 발전이 없어. 하긴 내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니 그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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