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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쓴쓴 Mar 23. 2022

여행, 도넛

첫 번째 글쓰기 모임

회색 구름의 날씨가 계속되자 머리는 낮과 밤을 구분하지 못했다. 고민하다 마신 카페인은 가슴 근처를 불안하게만 만들었고, 내내 부는 것의 강도만큼 배의 날씨는 온전하지 못했다. 벌렁거리는 심장을 달래면서 창문 밖의 세상을 내다보다가 바람이 저렇게 부는데 잎을 달기 시작한 나무에는 큰 흔들림이 없는 것을 보았다.


앉는 자세가 익숙해진 사람에게는 가만히 있어도 아픈 부분이 늘어간다. 몸은 움직이라고 있는 것이지 뇌를 지탱하기 위해 만들어진 부속물이 아니라는 글이 생각났다. 그 주장은 기존의 통념과 반대되는 것인데, 뇌야 말로 몸을 잘 움직이기 위해 만들게 된 부위라고 했다. 둔해진 머리는 결국 부동성의 몸에서 기원한다는 것인데, 나는 얼마나 몸에게 못된 짓을 하는 것일까.


높게 솟은 가로수를 따라 흔들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좀이 쑤시다 못해 흔들거리는 머리를 붙잡느라 애써야 하는 몸을 이끌고 건물들 사이로 여행을 떠났다. 바람은 여전히 세찼기 때문에 어제처럼 야외에서 점심을 해결하기엔 어려움이 많다고 느꼈다. 그래서 조금 더 먼 곳으로 발걸음을 돌리게 된 것이다. 벤치에 앉아 즐기는 일광욕은 불가능한 날이었으므로, 굳이 바람과 함께 또 다른 따뜻한 실내를 찾아 걸음을 옮겼다.


여행과는 어울리지 않는 점심이었다. 최근 출시된 도넛을 떠올렸을 뿐이었고, 짧게 주어진 점심시간에 다녀올 수 있는 최소의 거리였다. 벌렁거리는 것은 조금 줄어들었고, 불안하던 것들도 잠잠해져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주문했다. 창가 자리에 앉아 바라보는 세상은 여전히 바람이 많았고, 나무의 잎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흔들림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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