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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어떤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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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사람A Aug 19. 2020

어떤 순간 2.

크리스탈 유리볼 (aka. 망할 코로나 덕분에)


딱히 일하기 싫은 건 아닌데

일이 너무 좋아서 피곤도 모르는

워크홀릭 알파걸은 또 아니라서..


저녁 6시, 퇴근하고 집에 오면

왜 그렇게 아무것도 하기가 싫은지,

엄마 대신 배민에게 저녁밥을 부탁하고,

까칠한 입맛을 달래려 반주도 한잔 하다보면,

저녁마다 다리 밟아 달라시던 아부지 생각도 나고,

뭐 얼마나 대단한 일 하신다고 이러고 사나,

양치하는 거울 속 내가 짠, 찡..


그러다 오늘은,

망할 놈의 코로나19 때문에

조기 퇴근하라는 회사 지침으로

오후 2시 반, 집에 들어와 쓰러지듯 잠들었는데..


낮잠 30분을 어찌나 꿀잠으로 채웠는지,

눈 뜨면서 아침인가? 하는 맘에

악! 지각이다!!! 식은 땀 쪼록 흘리면서 기상!

고3 수험생때나 하던 짓을 하고 나니


아, 배고파...


낮잠으로 충전을 한터라 오늘은 양심상 배민 대신

오랜만에 냉장고에서 달걀 3개 꺼내 후라이도 하고

(그 와중에 쌍란 나옴 아싸)

엄마가 갖다 준 반찬들 꺼내면서

나 이렇게 사랑받고 있구나 괜히 뭉클도 해주시고,

찬장에 고이 모셔뒀던 그릇 중에서

어떤 그릇에 먹을까 룰루랄라 고민하다가

여름이니까~

아이스 느낌 나는 투명한 유리 대접 하나 꺼내서 

밥 반찬 달걀후라이 다 때려붓고

슥슥삭삭 맛나게 비벼준 뒤,

내친 김에 시원한 캔맥주까지 하나 똑 따서

입 안 가득 먹고 마시자니,


어라?! 나.. 너무 행복하네?!


내가 나를 위해 차린 밥 한 그릇.

그 안에 이렇게 다양한 기쁨이 있었는데,

이렇게 나부터가 나를 대접하며 살아야 하는데!




막연하고 불안할수록

당장 눈 앞의 무언가를 하면 되고,

(예를 들면 설거지?)

초라한 조명이 나를 감쌀 땐,

지금 내가 이미 가진 것에 집중하자 다짐하는 요즘,


내가 나를 위해 차리는 밥상에 정성을 다하던,

콧노래가 절로 나오던 바로 그 순간이

오늘 지금 내 인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기로.


내가 나를 위해 선택한 크리스탈 유리볼.

오늘은 딱 그 정도면, 충분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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