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내리던 비가 무색할 만큼의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아파트 주변에는 연한 분홍색들로 세상이 하얗게 눈이 부셔 보일 정도로 꽃이 많이 폈다.
내가 살던 시골마을에서는 이때쯤이면, 벚꽃이 아닌 배꽃이 피었다.
그때의 내가 살던 곳에는, 이화(梨花)가 4월 산에 하얀 눈을 뿌렸다. 가장자리에 얕은 물결 모양의 주름이 산을 하얗게 물들이면 봄의 온화함을 전했다. 짧은 가지 끝에서 꽃을 피우던 것들이 바람에 날리어 흩어지며 배꽃 비를 만들었다.
나는 종종 그 비를 맞으며, 학교를 갔다. 손에 잡힐지도 모른다는 멍청한 생각을 하면서 날리는 꽃잎을 쫓았던 적도 있었다. 내가 꽃을 좋아했나? 아니다. 나는 꽃에 무감한 편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저 한철 지나가는 것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성격이 그랬고, 삶이 그랬다.
하나를 끝내면 하나가 기다렸고, 기다리던 것을 끝내면, 또 하나를 시작하려고 했다. 쉼을 주면 불안이 몰려왔기에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한철, 반짝, 비가 되어 내리는 꽃에 많은 마음을 주지 않았다. 그저, 어수선함에 마음을 뺏기지 않기 위해 '몽땅 떨어져 버렸으면 좋겠네.' 했던 밤이 더 많았다. 이 철만을 기다리는 연인들에게는 아주 심술 맞은 이가 되겠지만...
삭막했다. 내가.
그랬던 내가 아파트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벚꽃을 보며 멍하게 앉아 내리는 꽃을 구경하고 있다. '너 참 예쁜 아이였구나!' 카페 창문을 가득 채우는 하얀 물결을 보며 새삼 처음 알았다는 듯이 말이다. 이주가 다 지나가기도 전에 모두 떨어져 버리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눈 부시게 예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