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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스켓 Jan 16. 2017

진짜 아이슬란드는 이제 시작이야

아이슬란드 싱벨리르 국립공원



그와 나는 2년 전 초여름에 알게 됐어. 그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나는 그 카페에 찾아간 우연한 손님이었지. 웃긴 얘기지만 그는 나에게 첫눈에 반했었대. 한두 달쯤 지나고 우리는 교제를 시작했는데, 그전에 나는 유럽여행을, 그는 미국 여행을 다녀왔었어. 전혀 알지 못하는 우리가 유명하지도 않은 어느 작은 카페에서 만 게 된 점, 비슷한 시기에 한 달 동안 낯선 곳으로 여행을 했던 점, 그 외에도 이 시대에 책을 읽는다거나 라디오를 듣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속에 우리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 그런 사소함에 마음을 열고 그는 나에게 풍요로운 이야기를 나누어 주고 나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던 거 같아. 그게 우리의 시작이었지.


그는 미국 여행을 하면서 밤마다 나에게 전화를 했었는데 한국이랑은 시차가 있잖아. 그가 미국에서 밤에 전화를 걸면 한국은 새벽시간이었거든. 근데 참 이어지려면 어떻게든 이어지려는 건지, 나는 유럽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안 된 후라 나름의 시차 적응을 한답시고 새벽까지 깨어 있던 날들이 많았어. 우리의 통화는 시차에 관계없이 계속해서 이어졌지. 그때도 그는 렌트카 여행이 너무 재밌고 편하다며 미국은 꼭 한번 와바야 하는 곳이라고 노래를 불렀어. 달리는 차 창 밖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도로와 하늘, 그리고 주변에 흩어져 있는 산과 들의 풍경이 그의 눈에 깊이 각인됐었나 봐. 2년 전, 내가 처음 떠난 유럽 배낭여행을 아직까지도 감명 깊게 얘기하는 거처럼, 그에게도 미국 렌트카 여행은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여행인 것 같아.





그의 렌트카 여행에 대한 찬양은 그때부터 쭉 이어져 왔던 거였어. 그리고 드디어 아이슬란드에서 미국 여행에서 느꼈던 짜릿함을 다시 만나게 되었지! 아직까지도 면허가 없는 나에게 렌트카 여행은 그가 아니었다면 상상도 못 해봤을 여행이었기 때문에 나 또한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어. 나에겐 전혀 새로운 종류의 여행이었거든.


아이슬란드는 섬나라라서 제주도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좋아. 제주도 한가운데 한라산이 있듯이 아이슬란드 가운데는 하이랜드(인랜드)라고 일컫는 구역이 있어. 그곳은 비포장 도로를 통해 갈 수 있고 매우 위험해서 여름에만 개방을 하는 거 같았어. 우리는 가을에 아이슬란드를 방문했으므로 애초에 하이랜드는 루트에서 제외되었고, 아이슬란드의 1번 도로를 일컫는 '링로드'를 따라 여행을 하기로 했어.





아이슬란드에는 네 가지 도로가 존재해. 가장 잘 닦여져 있는 1번 도로-링로드와, 거의 포장이지만 비포장 도로도 간혹 존재하는 두 자릿수 도로, 비포장 도로에다 자갈길이 많은 세 자릿수 도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위험한 F도로. F도로는 도로 이름 앞에 F자가 붙어 있다는데 위에서 얘기한 하이랜드로 들어가는 길에 이 F자가 붙어 있대. F도로는 위험해서 아이슬란드인들도 꺼려한다고들 하더라구.


보통 A 지역에서 B 지역으로 이동하는 길은 링로드 위에 있어서 운전하는데 크게 어렵지 않지만, 우리가 보려고 하는 어떤 명소-예를 들면 데티포스 같은 폭포-로 가려고 하면 두 자릿수 도로나 세 자릿수 도로를 거쳐야 했어. 하지만 그건 나중에나 만났던 곳이었고, 링로드의 첫 출발선에 서 있던 오늘은 매끄럽게 잘 닦여진 도로를 신나게 달리기만 하면 될 뿐이었어.





우리는 식스트(Sixt)라는 유명한 글로벌 렌트카 회사에서 렌트를 했고, 2륜 구동에 풀 보험으로 계약을 했어. 우리에게 온 자동차는 새파란 색을 가진 조그만 붕붕이였어. 우리는 이 아이를 '스머프'라고 부르기로 했지.


렌트카는 빠른 속도로 레이캬비크를 벗어났고, 우리의 눈에는 차츰 도시의 그림이 사라지고 구름 사이로 새어 나오는 햇빛이나 척박한 땅이나 바람에 정신없이 휘날리는 들판 같은 모습만 들어왔어. 오랜만에 만나는 도시가 아닌 풍경에 낯선 여행에 대한 설렘은 증폭되었어.





우리의 첫 일정은 골든써클을 거쳐 비크까지 가는 거였어. 골든 서클은 아이슬란드의 가장 인기 코스로 싱벨리르, 굴포스, 게이시르를 묶어 부른다고 해. 이 곳은 '꽃보다 청춘'이라는 티비 프로그램에도 나와서 꽤 유명해진 곳이었어.





도로 옆 풍경은 잔잔하고 평화로웠어. 그 풍경을 질투하기라도 하듯 하늘에는 먹구름이 걸려 있었지만, 우리는 크게 개의치 않았어. 아이슬란드는 날씨가 변화무쌍하다는 말을 들어왔기 때문에 금방 사그라들거라 믿었거든.




점프 ~ 점프


갑자기 그가 차를 세우더니 저기를 보라며 손짓으로 창 밖을 가리켰어. 거기엔 먹구름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이 호수를 비추고 있었고, 그 호수 주변은 축축한 잔디로 덮여 있었어. 녹색도 갈색도 아닌 오묘한 색의 땅. 


많은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내려서 사진을 찍고 있었고, 우리도 그 대열에 합류해서 신나게 사진을 찍었어. 달려보기도 하고 높이 점프를 해보기도 하고, 여행 초반이라 체력은 넘칠 대로 넘쳐났어. 이런 식의 장소, 즉 여행 책자에 나와있는 명소가 아닌, 평범하지만 신선한 장소는 이 후에도 종종 나타났어.





우리는 다시 달렸고,





곧이어 '싱벨리르'에 도착을 했어. 나는 공항에서도 그랬듯이 아이슬란드의 모든 게 자연에 노출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 막 다른 나라처럼 명소라고 해서 어떠한 시설을 지어 놓는다거나 표지판을 놓아둔다거나, 그런 게 전혀 없을 거라 생각했어. 지금 생각해도 그렇게 생각한 내가 너무 우습지만, 뭐 아이슬란드를 상상했을 땐 그랬어. 그중에서도 가장 놀란 건 주차장이었어. 바닥에 선이 딱딱 그어져 있는 주차장.


'아이슬란드에도 주차장이 있구나..'


당연한 건데, 이상하더라고. 미국 그랜드캐년에도 주차장이 있을까? 이집트 피라미드에도 주차장이 있을까? 막 그런 생각들이 한꺼번에 들면서 이상했어. 우리는 여행지를 상상할 때 그곳의 풍경만 상상을 하지 그 옆의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아이슬란드에서 만난 풍경 중에 '평화롭다'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곳은 많지 않은데, 싱벨리르는 정말 평화로운 모습을 가지고 있던 곳이었어. 


싱벨리르에서는 과거에 매년 2주 동안 법을 검토하고 분쟁을 해결하는 알싱이라는 야외 의회가 열렸는데, 이 의회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관중 하나이고,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을 만큼 그 가치가 높대. 


근데, 이러한 역사적 사실보다 내가 가장 놀랐던 점은 이 평화로운 장소가 활화산 지대에 속해 있다는 것과, 또 아메리칸 판과 유라시아 판, 즉 대륙과 대륙이 만나는 경계점에 있다는 지리적인 특징이었어. 세계 지도를 보면 바다 위에 커다란 땅덩어리가 흩어져 있잖아. 그것들을 우리는 유럽, 북아메리카, 아시아 같은 이름으로 나눠 부르고 있는데, 입으로 불러만 보던 그 땅들의 경계가 바로 이 싱벨리르에서 시작되고 있었어.





유라시아판과 아메리칸 판의 경계, 싱벨리르. 이 곳을 링로드 일주에서 처음 만난 건 어쩌면 다행이었어. 그 뒤로 우리는 거대한 광경을 더 많이 보게 되었거든.





다음 목적지로 가는 길에 먹구름이 걷히기 시작했어. 아니지, 걷힌다기보다는 우리가 그 구름 사이를 빠져나가고 있다는 게 맞는 표현인 거 같아. 우리는 구름과 구름 사이를 건너 목적지로 달렸어.





여기저기 남아있는 구름 사이로 햇빛이 쏟아졌고, 그 빛에 반사되어 신기하게 생긴 땅의 모습은 더 신기하게 우리 눈에 들어왔어. 외계인이 있다면 이런 땅에서 살지 않을까, 하는 유치한 상상도 이 곳에서는 절로 들더라구.





달리는 차 안에서 본 평화로운 풍경들.





직접 땅에 발을 붙이지 않고, 공기를 얼굴에 닿지 않고도 만족스러운 여행을 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렌트카 여행 아닐까. 도로 위 풍경이 멋진 이유는 이국적인 풍경도 한몫했어. 도로의 끝이 보이질 않고 어느 때는 그 끝이 하늘인 경우, 그는 그 광활함이 너무나 좋다고 했어.





멀리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보였어. 저기가 바로 '게이시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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