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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예라 May 22. 2024

긍정 부스팅

feat. 상처가 별이 되어

2020년은  잊을 수 없는 해이다. 그때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했고, 편의점이나 식당, 도서관, 학원까지 문을 닫았다. 회사 문도 툭하면 닫혔다 열렸다를 반복했다.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들이 코로나로 인해 돌아가셨고, 비교적 지병이 없이 건강했던 2,30대 성인 남녀들도 사망했다는 소식이 여기저기 들려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거의 온 국민이 감염병 때문에 격리가 되는 상황이 매우 낯설고 힘들었다. 나는 그때, 대학원 코스웍을 마치고, 논문 주제를 정한 후에 한참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중이었다. 코로나 가운데서도 시간은 흘러갔다.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지지부진한 논문 진도를 걱정하다 지레 지쳐 쓰러질 지경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유행병 앞에 우리는 모두 상처를 입고 말았다.


논문을 쓰려면 연구를 해야 하는데, 그럴 형편이 허락되지 않았다. 사회과학 분야에서 질적연구 방법을 택했던 나는 연구 대상자이던 대안학교 교사들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하고, 분석을 한 내용으로 논문을 쓰기로 했다. 그러나 코로나의 단계가 점점 격상됨에 따라 그 선생님들과 잡았던 약속은 여지없이 취소되곤 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기 때문에 함부로 외부인을 만날 수 없고, 아무 장소나 쉽게 다닐 수 없다고 하셨다. 학생들이 학교에 언제 나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기에 교육청의 지시를 민감히 따르며 늘 긴장하는 마음으로 살던 분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냥 그분들을 조르거나 만나달라고 보챌 수 없었다.


거기에 논문을 쓸 시간과 공간도 없었다. 두 살짜리 아들과 초등학교 5학년 딸을 돌보느라 낮에는 노트북을 펴기도 힘들었다. 엄마가 책을 읽기만 하면 와서 책을 확 낚아채가기도 하고, 쓰고 있던 노트북을 덮어버리고, 심지어 노트북 위에 앉기도 했다.


"엄마. 나랑 놀아줘. 그거 그만 보고."


딸은 그때 막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이어서  앞머리를 코까지 기르며 점점 흑화가 되어가고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학교에도, 놀이터에도, 친구 집에도 못 가서 심기가 이를 데 없이 불편한 딸아이의 삼시 세끼를 차려주고, 간식을 챙겨주었다. 무슨 말만 걸면 톡톡 쏘며, 퉁명스러운 딸의 짜증을 받아내며, 아이의 비위를 맞추느라 힘든 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집안일을 하면서도 머릿속에는 '내 논문 어떻게 하지?'생각으로 가득 찼다. 남편이 퇴근한 저녁시간에 노트북과 책을 싸서 집 근처 도서관에 가서 논문을 쓰곤 했다. 그런데 코로나로 도서관도 문을 닫았다. 집 앞 카페도, 스터디 카페도 모두 영업이 정지되었다. 결국 나는 집에서 아들이 잠들기까지 기다렸다가, 조용한 주방, 식탁 위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수도 없이 창밖에 해가 다시 떠오르는 모습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 오늘도 밤을 새워버렸네...'


그때는 참 힘들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코로나로 인해 나는 강한 멘탈을 가진 용감무쌍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왜 하필 내가 논문을 쓸 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냐고 속으로 괜한 하나님을 원망했고, 코로나의 근원지라는 중국을 원망했다. 더는 연구 참여자와의 미팅을 미룰 수가 없어서 코로나가 가장 심하던 어느 날, 학교 교무실에 무작정 찾아가서 한 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나도 선생님도 마스크를 두 겹 쓰고 둘 사이의 거리를 1미터 정도 두고, 인터뷰를 하던 날이 잊히지 않는다. 연구 참여자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은 정말 이를 데가 없었다. 그분들 역시 코로나 바이러스를 옮길 수도 있는 나를, 목숨 걸고 만나주신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분들과의 인연이 생각할수록 귀하고, 감사하다.  


또한, 코로나 덕분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집중이 잘 되는 무서운 집중력을 가지게 되었다. 타고나기를 예민하게 태어나서 그런지 조금이라도 시끄럽거나 주변이 번잡스러우면 집중이 잘 안 되는 편이었다. 그러나 두 살 아들이 울고불고 난리를 친다 하더라도, 한 손에 논문을 들고, 한 손에는 형광펜을 들고 딱 한 줄만이라도 읽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1년을 버텨냈다. 이제는 웬만한 소음은 잘 들리지도 않는다. 밖에서 사이렌이 울리고, '불이야!'소리가 난다고 해도 꿈쩍 않고 쓰던 글을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언제 또다시 코로나가 심해져서 도서관 문이 닫힐지 모르니, 도서관 문이 열리기만 하면 달려가서 초인적인 힘으로 논문을 썼다. 기회 있을 때마다 한 줄이라도 쓰자는 마음으로 많은 페이지 수를 채워갔다.  티끌 모아 태산이 되듯, 짬 날 때마다 썼던 한 줄이 1년 뒤에는 한 권의 두꺼운 학위논문이 되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이처럼, 나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는 강철 멘탈과 집중력을 가지게 해 준 귀한 선물이다. 앞으로 또 어떤 악재가 닥칠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모든 일이 벌어짐에는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으며, 우연은 없다고 한다. 이제, 어려운 일이 닥칠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때를 잘 견뎌낼 힘과 지혜를 달라고 두 손 모아 기도해야겠다.


사진: UnsplashJoyce Hank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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