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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예라 Mar 22. 2023

깨달음

난생처음 세차를 하며... 

사진: UnsplashClément M.


2010년 11월이었던가. 무려 필기시험에서 한 문제 틀리고, 장내 기능시험 한 번에 통과, 주행시험은 72점(커트라인이 70점)으로 나름 당당하게 취득한 운전면허증이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와 핑계와 사연으로 나는 그 면허증을 9년 5개월 동안 신분증 정도로만 사용했다. 면허를 따고도 운전을 못하는 것에 대한 진한 아쉬움을 신분증으로라도 내밀면서 어떻게든 달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나도 면허는 있는 여자예요..운전은 안(못)하지만...'


 매우 다행스럽게도 이제는 면허증이 더 이상 신분증이 아니다. 난 진짜로 (초보)운전하는 사람이니까. 자동차 열쇠를 돌려 시동을 걸 때 나는 부르릉 엔진 가동 소리에도 심장이 조이는 듯 부담스럽던 나였다. 그러나 자동차 운전은 이제 '인생은 진정 배울 것투성이'라는 사실과 '한 번만 더 해보는 용기'를 가르쳐주는 고마운 스승이 되었다. 

얼마 전에는 처음으로 주유소에 딸린 자동 세차장에서 세차를 받아보았다. 그런데 세차도 직접 하려니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주유 금액에 따라 세차 금액이 다르다는 사실과 자동 세차 레일에 차를 잘 조절해서 올려놓아야 한다는 것, 세차 중에는 반드시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어야 한다는 것, 세차 끝에는 자동 세차장 끝에 있는 신호등에 파란불이 들어올 때 다시 기어를 D에 놓고 앞으로 가야 한다는 것, 그렇게 안 했다가는 세차해 주시는 아저씨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는 사실을 새롭게 배웠다. 자동차의 브레이크를 목숨처럼 여기는 초보운전자에게 발에서 브레이크를 떼라는 지시는 나의 본능과 세차의 법칙이 세차게 어긋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동안 조수석에 편안히 앉아 세차장 지붕에서 물과 세척액이 마구 뿜어져 나오고 거대산 브러시가 차를 아래위로 훑어 청소해 주는 동안 카시트에 앉은 아들과 눈을 맞추며 "우와!! 신기하다.. 그렇지?.!! 아들, 무서워하지 마!" 하면 그만이었다. 아무런 걱정도 근심도 없이 그저 세차의 과정을 어린 아들과 즐기면 되었었다. 그런데 이런 즐김은 남편의 미세한 핸들조정, 브레이트 조절, 세차장 내 신호 준수 등의 수고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남편이 해주던 수고를 내가 직접 하며, 어깨와 등에서 땀을 비질비질 흘리며, 가까스로 '세차'라는 미션을 마쳤다.  말끔하고 반들반들하게 목욕을 마친 자동차가 나를 향해 "언니, 수고했어요."라고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종종 친정아버지가 차와 자신은 한 몸이 혹은 세상 친한 친구라면서, 운전을 시작하고 끝낼 때 차에게 말을 거는 모습을 보고는 뜨악했었다. '아 정말 우리 아버지가 왜 저러실까.' 했다. 그런데 그랬던 모습이 이제는 이해가 되려고 한다. 자동차에게 인격을 느끼는 순간이 진짜 나에게 찾아왔다. 

오늘 아침에는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렸는데, 도무지 마음에 안 들었다. 일단 옆차 와의 간격이 너무 붙어있었고, 차가 1자로 똑바로 있어야 하는데 약간 왼쪽으로 틀어져 있는 모습이 나의 잠자고 있던 완벽주의와 강박을 자극했다. 나도 모르게 '언니 가 한번 더 해볼게. 이건 좀 아니지?'라고 말하면서 다시 주차를 시도하기를 세 번인가 네 번인가. 그리고 주차 칸, 정중앙에 예쁘게 들어가 있는 나의 차를 확인하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수고했어!'라고 말하고 차의 잠금 버튼을 눌렀다. 


그동안 나는 배우는 것은 오직 '책'과 '교수님의 강의', 그리고 '논문'으로 하며, 의자에 앉아 글자를 들이 파면서 이해하고 익히는 것만을 선호해 왔다. 그런데 운전은 주유와 세차, 자동차 관리, 주차, 주행, 그 어느 것 하나 글자로 읽어서 배우는 것이 아닌 하나하나 몸으로 직접 해봐야 하는 것이었다. 책으로 운전을 배웠으면 나는 정말 100점 만점에 150점은 받았을 텐데... 몸으로 익히려니 귀찮고, 힘들고, 낯설다. 그렇지만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책을 수십 번 반복해서 읽듯, 주차도 반복해서 해보고 있다. 

남들은 매일 하는 이 세차와 주차를 통해서도 이토록 배울 것이 많은 인생이다. 나는 가늠도 할 수 없는 거대한 이 세상의 이치 앞에 저절로 겸손 진다.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한 번만 더 해보는 용기가 필요하며, 해볼수록 그 용기는 나를 더 크고 넓은 세상을 이끌어준다는 사실에 새삼스럽게 감사하다. 이토록 사소한 일상 속에 꼭꼭 숨어있는 심오한 진리를 발견했다는 사실에 기뻐하면서 오늘 하루에 겸허히 충실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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