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내장 수술기 2

– 빛을 보려면 빛을 견뎌라

by 혜윰의 해밀

[심오재일기] 2026.2.27.

백내장 수술기 2

– 빛을 보려면 빛을 견뎌라


세상이 아니라 내 눈이 문제였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말씀처럼, 들보는 세상이 아니라 내 눈 안에 있었다.


이른 아침 작은딸과 함께 오른쪽 눈을 마저 수술하려고 병원에 갔다. 간호사가 그때까지 왼쪽 눈에 붙여두었던 반창고를 떼어냈다. 이제 그대로 무엇이나 봐도 된다는 것이었다.


검회색인 줄 알았던 작은딸의 눈동자가 머루알처럼 까맸고, 빛이 바랬다고 느껴 버리길 바랐던 딸의 외투가 검정색 그대로였다.


왼쪽 눈 수술의 경험이 있었기에 한결 덜 긴장되었다. 지난번과 똑같이 수술대에 누워 정오의 햇빛 같은 불빛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의사는 여전히 못마땅한 듯 "환자분, 눈에 힘을 너무 줬어요. 힘을 빼세요." 했지만, 한 번뿐이었다. 나는 곧 힘을 뺄 수 있었고, 수술은 지난번보다 빠르게 진행됐다. 다시 한 번, "수술 잘 됐습니다. 끝났습니다."는 소리와 함께 의사는 떠나가고, 간호사는 의례적인 몇 마디를 건네고, 나는 일어나 수술실을 빠져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느껴졌다. 그 순간 의사와 간호사들이 빛을 다루는 천사들처럼 느껴졌다. 지난번과 달리 오늘은 수술 대기실에서 더 선명하게 바라본 십자가와 그 아래 쓰인 "St. Mary's Eye Clinic"이라는 글자가 그런 느낌을 유도했으리라.


빛은 하느님의 것이지만 그 빛을 제대로 바라보려면 사람의 것인 수술실과 의술의 빛을 견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을 마치고 작은딸의 팔을 잡고 나와 바라본 세상은 환했다. "비 온 뒤 맑음"이나 "맑게 개임" 그 자체였다.


지하도 바닥은 말끔했고, 지하철 안전문에 인쇄된 글씨나 그림들이 새 것처럼 선명했다.

내 운동화의 깨끗한 부분은 희었고 때 탄 부분은 검었다.

분명하게 검은 것은 검었고, 흰 것은 희었다.


딸과 함께 들어간 일식집에서 나온 반찬의 단무지는 노랗고, 오이지는 초록이었으며, 생강채는 주홍빛이었다. 흰 접시 위에서 색들이 또렷이 제 자리를 찾고 있었다.


우리집 식탁 옆 벽에 걸린 고흐의 그림에서 옐로우와 블루는 더 밝고 선명했다. 그것들은 더 이상 과장이 아니었다. 나는 이제야 밤이 품고 있던 빛을 알아보았다.


보이는 모든 것이 밝고 환하고 선명했다. 깨끗한 것은 더 깨끗해 보이고, 더러운 것은 더 더러워 보였다. 그동안 흑과 백, 깨끗함과 더러움이 모두 어중간해 보였었는데 내 눈의 혼탁을 걷어내고 보니 오히려 흑백이 분명했다.

♤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아를의 카페 테라스〉(Place du Forum, Arles, at Night), 1888.

– 밤 안에도 빛이 있다.


아침에 큰딸이 버스터미널까지 태워다주며, 수술 잘 하고 오라는 말 끝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런데 엄마 눈이 잘 보이면 우리 얼굴 보고 잔소리할까 봐, 그게 걱정이야."


작은딸이 맞장구치며 "나도 제일 먼저 그 생각했는데 어쩜 우리 생각이 똑같을까."


그러면서 한 목소리로 말한다.

"엄마 패턴이 그러니까."


"내가 그랬어? 엄마는..."


나는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딸들의 말대로 이제는 잘 보여도 모른 척할 줄 알아야 할 나이였다.


이제 세상은 더 잘 보이게 되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었다. 더 또렷해진 것은 사물의 윤곽이 아니라, 바라보는 자리의 문제였다.


눈이 밝아졌다고 해서 마음까지 자동으로 밝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하필 오늘, 먼 데서 한 선배가 보내온 설교 글을 읽었다. 그 안에서 '지혜'와 '관점'과 '눈'이라는 말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지혜란 머리가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관점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능력이라는 문장이 오래 남았다.

생각이 바뀌면 해석이 달라지고, 해석이 달라지면 삶의 결이 달라진다고 했다.

나는 그동안 과연 무엇을 분명히 본다고 믿었을까.


수정체의 혼탁은 수술로 걷어낼 수 있다. 그러나 관점의 혼탁은 무엇으로 걷어낼까.


쏟아지는 빛 속에 머물러 오래 생각해본다.

♤ 안나 케르(Anna Ancher), 〈푸른 방 안의 햇빛(Sunlight in the Blue Room)〉, 1891, 스카겐 미술관

– 빛 속에 머무르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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