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내장 수술기 1

­– 빛을 견디는 시간

by 혜윰의 해밀

[심오재일기] 2026.2.25.

백내장 수술기 1

­– 빛을 견디는 시간


1.

백내장이 심하다 했다.

난시도 있고 노안도 있다 했다.

교정시력은 0.5, 0.7.


백내장 탓일 거라 짐작했던 흐릿함이 이토록 심했을 줄은 몰랐다. 더는 미룰 수 없이 수술로 걷어내야 할 불투명 막이 되었다. 수정체가 뿌옇게 흐려 망막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비로소 내 시야가 아니라 내 시간이 흐려지고 있음을 실감했다.


선택지가 놓였다.

단초점, 토릭, 다초점.


610만 원짜리 다초점은 진즉 내려놓았다. 예전에 비싼 다초점 안경을 맞췄다가 어지러워 쓰지 못하고 버린 기억이 있다. 세상이 겹쳐 보이는 불안을 나는 감당하지 못했다.


남은 것은 단초점과 토릭.

토릭은 310만 원. 단초점보다 260만 원이 더 비쌌다.

하지만 ‘일생 한 번뿐’이라는 말이 마음을 붙잡았다.

완전히 나아질 수 있다는데, 돈 때문에 멈추는 건 아닐까.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난시 0.75디옵터. 수술 후 1.0까지 느껴질 수 있다는 진단. 토릭을 하면 한 줄 더 또렷해질 수 있다는 설명.

그 한 줄이 무엇인지, 그 한 줄이 과연 내 삶을 얼마나 바꿀지, 나는 숫자와 마음 사이를 분주히 오갔다.


결국 단초점을 택했다.

완벽을 사지 않고, 충분을 택하기로 했다.

♤ 니콜라이 야로셴코(Nikolai Yaroshenko), 「수술 전」, 1884, 러시아 미술관

– 침묵 속에서 스스로를 붙드는 순간


2.

수술대에 누웠다.

정오의 태양을 맨눈으로 들여다보는 듯한 빛이 쏟아졌다. 눈을 한 번도 깜박이지 못한 채, 부릅뜬 눈으로 그 빛을 15분 남짓 견뎌야 했다. 두 개의 동전만 한 빛에 초점을 맞춘 채, 두 눈을 끝까지 크게 뜨고 있으라 했다.


오른쪽 눈은 가려지고, 왼쪽 눈꺼풀은 테이핑되어 있었다. 왼쪽 눈에는 소독약이 계속 들이부어지고, 탁해진 수정체가 걷혀 나가고, 새 수정체가 들어오는 동안 나는 두 눈을 부릅뜬 채 팔찌 묵주를 꼭 쥐고 있었다. 마취로 통증은 없었지만 눈에 칼이 닿는 감각은 분명했다.


나는 그 시간을 고문처럼 버텼다.


‘간단한 수술’이라는 말을 믿고 들어간 나에게는 기습 공격을 당한 듯한 충격이었다. 누가 이 수술을 별 것 아니라고 했던가. 차라리 “공포스럽고, 빛이 견디기 힘들 수 있습니다. 15~20분을 각오하고 버티십시오”라고 누군가 미리 말해주었다면 나는 덜 놀랐을 것이다.


수술이 끝났다, 잘됐다는 말을 하고 의사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간호사가 안대를 씌우는 처치를 한 후 의례적인 몇 마디를 건넨 뒤 일어나 내려가라고 했다. 얼마나 긴장하고 있었던지 침대에서 일어나려니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잠시 뒤, 진료실에서 의사는 다시 한 번 “수술은 잘 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말을 잘 안 듣는 환자입니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해졌다. 무슨 소리지? 나는 고문과도 같은 그 시간 속에서 빛을 보라면 빛을 보고, 오른쪽을 보라면 오른쪽을 보려고 기를 썼다. 하지만 그에게 나는 편안히 집도하기엔 성가신 환자였던 모양이다.


의사는 하루에도 여러 번 매일 하는 일이겠지만, 나는 일생에 단 한 번 처음 겪는 일이었다.

의사에겐 성가신 환자였을지 모르나, 나는 최선을 다한 환자였다.

♤ 안나 안케르, 「실내의 햇빛」, 19세기 말, 스카겐 미술관

– 눈을 가늘게 뜬 채, 빛을 견디는 자리


3.

동행한 남편과 함께 아래층 카페로 내려왔다. 나는 남편에게 참았던 울분을 토해냈다. 빛이 고문 같았다고, 인정머리 없는 의사의 말 한마디가 더 아팠다고.


남편은 묵묵히 듣다가 웃으며 말했다. 자기도 치과에 가면 늘 야단을 맞는다고. “왜 코로 숨쉬지 않고 입으로 숨을 쉬느냐”고. 몇 시간이고 입을 벌리고 있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인데도. 그렇지만 전체 임플란트를 마친 뒤 그 의사와 나란히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변명처럼, 자랑처럼 내어놓으며 잠시 웃었다.


늙으면 아프고, 아프면 서럽다. 그래서 늙으면 서럽다는 말을 실감했다. 그래도 함께 늙어가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었다. 각자의 통증을 안고 같은 병원 계단을 오르내리고, 같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서로의 서러움을 받아주고 있으니 감사했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작은 위로가 되었다.


집으로 바로 가는 버스표가 없어 네 시간의 공백이 생겼다. 한 시간마다 안약을 넣어야 하는 게 문제였다. 하는 수 없이 카페에서 한 번, 백화점 화장실에서 또 한 번, 식당을 나와 다시 한 번, 고속버스 안에서도 한 번 더 넣었다.


그 사이 저녁식사를 하려고 들어간 식당에서 안대를 쓴 나를 본 아주머니가 말했다.


“눈 수술 하셨어요? 고생하셨네요.”


그 한 마디에 마음이 녹았다. 수술실의 냉기가 스르르 풀렸다.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병원과 달리, 그 말에는 사람의 체온이 있었다. 키오스크 없이 사람이 직접 다가와 무얼 먹으면 수술의 고통과 긴장이 좀 풀릴지 친절히 응대해주는 것도 따뜻했다.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사람의 온기는 더 귀해진다. 그날 나는, “고생하셨어요”라는 한 마디가 얼마나 큰 약이 되는지 배웠다.

♤ 빌헬름 함메르쇼이 (Vilhelm Hammershøi), 「두 형상이 있는 실내(Interior with Two Figures)」, 1900년경, 히르슈스프룽 미술관

– 말없이 같은 빛을 견디는 두 사람


4.

돌아오는 고속버스 안. 남편과 나란히 앉아 눈을 감았다.

차창 밖과 버스 안, 눈 안의 어둠이 부드럽게 나를 감쌌다.


젊은 시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야간버스 안의 공기가 문득 떠올랐다. 고단했지만 묘하게 안온하던 그 느낌. 서로 말없이 기대어 앉아 여행의 피로를 풀던 시간이 각자의 통증을 품은 채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과 겹쳐졌다. 삶은 그렇게 젊음에서 늙음으로 돌아오는 길 위에서 서서히 자리를 바꾼다.


긴 고난의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빛을 견디고, 설움을 통과하고, 동행을 확인한 하루.

왼쪽 눈에는 아직 안대가 씌워져 있지만 나는 오늘 빛 하나를 통과했다.

완벽은 아니어도 좋다. 살아 있는 하루, 그거면 충분하다. 모든 것이 감사하다.

♤ 칼 라르손, 「자작나무 숲의 오후」, 1890년대, 스톡홀름 국립미술관

– 각자의 자리에서, 같은 빛 아래


5.

이제 왼쪽 눈은 안대로 가리고 돋보기를 쓴 채, 오른쪽 눈만으로 이 글을 쓴다.


언젠가 영화에서 본 장면처럼, 점점 짙어지는 안개 속을 더듬어 걸어온 시간이 길었다. 나는 그것이 노안 때문이라 여겼고,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그러나 오늘에서야 안다. 그 안개는 불투명해진 수정체가 드리운 장막이었음을.


그 하나의 막을 걷어냈으니 이제 세상이 조금은 선명해지려나.


아직은 안대를 풀지 않아서 모른다. 그러나 눈은 가려졌어도 기억은 또렷하다. 빛을 견딘 시간도, 의사의 냉기와 식당 아주머니의 온기도, 남편과 나란히 앉아 돌아오던 버스의 안온함도.


막을 걷어낸 것은 수정체만이 아니었다. 사람의 말 한 마디가 얼마나 깊이 스미는지, 함께 늙어간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도 조금 더 또렷해졌다.


한쪽 눈마저 다시 열리기 전에, 이 경험이 내 삶의 한 부분으로 굳어져 무덤덤해지기 전에, 빛과 공포와 설움이 아직 날것으로 살아 있는 지금, 나는 이 하루를 붙잡아 두기 위해 기록해 둔다.


오늘 나는 빛을 견디는 시간을 살았다.

♤ 칼 라르손, 「자화상(Ateljéinteriör med konstnären)」, 1912, 스톡홀름 국립미술관

– 빛을 통과한 뒤, 다시 붓을 드는 자

월, 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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