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셈법

by 혜윰의 해밀

[시와 시인의 노트] 2025.3.31.

바람의 셈법

임미옥


정년퇴직하시던 날

낡은 나무주판 하나 들고 돌아오신 아버지


반평생 직사각형 사무실에 갇혀

쉴 새 없이 놓던 바람이

문갑 위 정물이 되어 놓여 있었다.


견고한 생의 가름대를 넘나들며

윗구슬과 아랫구슬의 올림과 내림을 반복하던

당신의 엄지와 검지는 꿈에서도 곡예를 했건만


자식들 걱정에 아린 손끝

피땀에 절어 반들거리던 고동 구슬은

묵묵히 빛나던 당신의 눈빛처럼 정적에 가라앉았다.


하늘과 땅 사이

그득한 숫자들

멤대에 매달려 오르내리던 몫들은

정작 굳은살 밴 아버지의 손끝에선 튕겨져 나가고


빼기와 나누기밖에 할 줄 모르던

어머니마저 성긴 주판알 틈으로 빠져나갔을 때

껍데기만 남은 아버지의 손때 묻은 생은

낡은 틀 안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일이라는 기준자릿점에서

백, 천, 만의 자리...

상승을 넘보다가도

매번 스스로 털어내는 습성에 낮아지시던


아버지의 자리는 야트막한 바닷가 묘소

쉬엄쉬엄 빈 바람만 셈하고 계셨다.


– 《전남여고문학》 11호(2025) 발표


✍️ 시인의 노트 ― 「바람의 셈법」을 쓰며


아버지. 정년퇴직하시던 날 손에 들려 돌아온 낡은 주판 하나가 오래 마음에 남아 있었다. 꿈결에도 주산을 놓던 손끝의 버릇, 셈보다 털어냄에 더 익숙했던 한 사람의 생이 그 안에 닳아 있었다. 이 시는 그 오래된 구슬 몇 알 사이로 아버지의 침묵과 쓸쓸한 품격을 다시 만져 본 기록이다.

♤ 아버지의 옛날 사진

– 빛바랜 사진 속에서도 아버지는 환했다

아버지에게도 저토록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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