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거트 스무디에서 아메리카노를 먹기까지
며칠 전, 동행인과 점심식사 후 카페를 들렀다.
무엇을 먹겠냐는 동행인의 질문에, 그날따라 불현듯 이 메뉴를 주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먹을래. 아, 디카페인으로!"
나는 커피를 잘 먹지 않는다.
첫 번째 이유는 카페인에 취약해서 밤에 잠을 설칠까 봐이고,
두 번째 이유는 커피의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해서이다.
세 번째 이유는, 지금에서야 커피의 맛에 익숙해지긴 했지만 그냥 커피가 쓰고 맛이 없었다.
그런 내가 어느덧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날이 왔다.
주문하고 음료를 받았을 때도 사진 하나 남겨야지! 하며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날을 기록했다.
20살이 되어 타지로 대학을 올라와서, 과제를 하며 매일같이 카페를 갔다.
그때마다 나는 항상 달달한 메뉴를 골랐다.
요거트 스무디, 녹차 스무디, 녹차라떼 등등.
늘 이가 시릴 정도의 차갑고 달달한 메뉴를 먹으며 20대를 보냈고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아이스 아메리카노(a.k.a 아아)를 먹을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
(물론 지금도 굳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 먹지는 않지만)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한결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긍정보단 부정적인 쪽에 가까운 한결같음.
고집세고, 결과론적이고, 예민하고, 아닌 것은 아닌 거다라는 생각들.
올해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어떤 환경에 있을 때 가장 능률이 올라가는지, 어떤 환경에서 누구보다 우울함과 공허함을 느꼈는지 등.
최근 몇 년 동안 기존에 알던 나의 모습으로 사는 것에 이질감을 느꼈다. 내 모습이 아닌 것 같아서였다.
늘 고집이 세던 나는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불확실한 결과에 아무것도 못하던 나는 '열심히 했다는 게 중요하지 않나?'라는 태도를 가지고자 노력하고 있다.
성공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며 매일을 살아내는 삶을 살아야겠다로 바뀌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거 아닌 일이었던 사소한 다툼들과 지나가버린 인간관계에도, 예전처럼은 돌아갈 수 없을지언정 우연히 마주쳤을 때 소소한 안부를 물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30살, 마침내 자발적으로 아메리카노를 먹게 된 것처럼 나는 계속해서 변해왔고 계속해서 변할 것이다.
"카페에서 음료 사갈게, 뭐 먹을래?"
그 어느 때보다 추운 크리스마스이브,
오늘도 동행인은 나에게 메뉴를 묻는다.
"오늘은 커피가 당기네~ 따뜻한 아메리카노 디카페인으로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