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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gital wanderlust May 22. 2018

01. 시칠리아 체팔루, 팔라조 아드리아노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

영화는 영화의 완벽함 그 자체로 비현실적인 판타지가 현실 그 이상의 감정이 되어 혼동스러울 때가 있다. 그 묘한 매력에 빠져 현실 도피처럼 숨어들기 좋은 장소가 바로 영화관이다. 아주 가끔 그 판타지를 현실로 느껴보고자 스크린 속으로 살짝 발을 들이미는데, 이것은 나에게 알랭드 보통이 말한 일종의 '여행의 기술'이다.

중학교 2학년 잠실에 살았던 나에게 '롯데월드 어드벤처'가 개장을 하고(개장 첫날 무료였다), 스위밍 풀, 아이스 스케이트 링크들이 생길 때마다 매번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다. 그러던 어느 날 롯데 시네마라는 영화관이 개관하고, 그곳에서 가족 모두 관람한 영화로 기억남는 작품이 바로 <시네마 천국>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인상 깊게 남아 있는 엔딩 씬.

https://youtu.be/oQHkTCq5e8c


그리고 그보다 더 강렬했던 엔니오 모리꼬네의 OST.

엔니오 모리꼬네의 첫 공연이 건강상의 이유로 취소된 이후에 두 번이나 내한 공연에 갈 수 있었던 건 매우 큰 행운이다. 나의 유년 시절에 대한 향수이자 OST의 위대함을 처음 맛보게 해 준 피아노 연주곡 'Cinema Paradiso'의 첫 선율로 시작된 공연이 아직도 눈에 선하고, 마에스트로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콘체르토를 나의 머리와 가슴에 깊이 새겨 두었다.



시칠리아의 운전길은 대체로 험하다. 낭떠러지처럼 펼쳐진 비좁은 길은 고불고불하고, 절벽에 위치한 마을들이 많다. 이에 익숙한 현지인들의 운전 실력은 매우 뛰어나다 보니 뒤에서 '빵빵' 소리도 자주 듣게 된다.

스트로베리 젤라또

시네마천국은 주로 '팔라조 아드리아노'에서 촬영했지만 바닷가에서의 야외 영화 상영 장면은 이 곳 '체팔루'다. 체팔루에 거의 다와서 구글 맵이 알려준 도로가 말도 안 되게 좁아 '설마 아니겠지.' 무시하고 지나쳤는데 맙소사. 더 상상을 초월하는 골목길이 나타났고, 주말이라 관광객들까지 넘쳐났으며 심지어 어렵사리 조심스럽게 한참을 들어가보니 막다른 길이라 후진해서 빠져나오던 순간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바퀴 조심하라고 소리치는 사람(고개를 내밀어 보니 뒷바퀴가 작은 돌로 된 둔턱 바로 뒤였다), 숙소에 거의 다다랐는데 이 길은 차량이 갈 수 없다는 사람, 갈 수 있다는 사람이 양 옆에서 소리지르던 그 순간, 옆에 있던 젤라또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Hotels.com에서 큰 맘 먹고 Sea view room으로 예약했는데 뭐가 잘못되었는지 예약이 안 되어 있어 말이 Garden view지, 한 개 남은 어두컴컴한 방에 짐을 풀자마자 나와 이 젤라또를 사먹었다.

젤라또의 본고장 이탈리아! 게다가 내 인생의 영화 <시네마천국>의 촬영지 '체팔루'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딸기맛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데 이 곳까지 오는 모든 여정의 순간들이 깨끗히 씻겨 나가면서 앞으로의 기대감과 행복감이 온 몸을 감싸 안는다.


체팔루 로까

체팔루는 생각보다 더 작은 동네인데 상업적인 관광지가 되다 보니 주말엔 사람들이 더 북적였다. 체팔루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이 곳 '로까'여서 정말 오랜만에 등산을 했고, 주변이 조용하다 보니 몸과 마음이 고요하게 평화로워져 마냥 바라보다 일몰 시간이 되어 발걸음을 옮겼다. 

이튿날, 체팔루에서 또다시 꼬불탕거리는 낭떠러지 길을 운전하여 드디어 진짜 <시네마 천국>의 한 장면 속으로 들어가던 순간. 약 5년 전부터 와보고 싶었던 장소다 보니 심장이 미친듯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팔라조 아드리아노(Palazzo Adriano)


한없이 맑고 푸르른 하늘 아래 이 곳 광장은 오히려 영화 속 세트장처럼 적막이 가득했고, 영화 속 장면과 변한 모습이라곤 전혀 없다 보니 어디선가 토토가 툭 하고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굳이 찾는다면 세트였던 영화관이 존재하지 않는 정도.

영화에서처럼 이 조용한 광장 한 가운데에 버스 한 대가 들어오면 우르르 사람들(주로 어린 학생들)이 내리고, 나를 힐끔거리며 쳐다보다 순식간에 모두 사라져 금방 텅 비어버린다.

어린 토토를 비롯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실제 이 곳 '팔라조 아드리아노' 주민들인데 나이가 많이 드신 분들이 보이면 '아 저 분도 영화 속에 등장하셨겠지?' 라는 상상이 된다.


시칠리아 섬은 <시네마천국>, <말레나> 감독 '쥬세페 페르나토레'의 고향이기도 한데 그가 왜 이 곳을 촬영지로 선택했는지 직접 보니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름답고 평온하면서도 그 것에서 변함이 없는 장소는 많지 않기 때문일게다.



<시네마천국>

누구에게나 인생 영화라 말하는 작품이 있을텐데 나에겐 이 영화가 그렇다. 중년이 된 토토가 회상하는 유년기 시절 알프레도와의 씬이 기억이자 추억이고, 마지막 장면에서 필름 조각들이 노스텔지어이듯, 나에겐 이 영화 자체가 OST와 함께 노스텔지어가 되었다.

 

해마다 봄이 되면, 입학 시절을, 그린빌딩 남산에서의 신입 시절을, 선물가게 시절을, 그리고 아빠를 보내드린 그 시간들을 온 몸이 기억해낸다. 살살 간지럽고도 그리운 과거라 슬픈 감정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영화 속 한 장면을 오늘도 살고 있는 것 같다.


https://youtu.be/B_E1lPt90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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