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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HEIN Sep 20. 2015

나를 만들기

주인 행세, 나의 패턴 만들기.

아직까지도 나의 고민거리는 시간관리이다.

혹자는 시간은 관리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말에 공감도 간다. 시간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관리하는 것이다.

허구한 날, 시간관리 특강을 보거나, 엑셀로 시간표를 열심히 짜기도 하고, 하루를 분단위로 체크하기도 하였다.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변하지 않았다.

내가 놓치고 있는건 뭘까.

뭐, 비단 나뿐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보통 사람들보다 수면시간이 긴 나는, 더 바빠야 정상인데, 남은 활동 시간 조차도 남에게 휘둘리기 쉽상이다.

의지가 부족한 것일 수도 있고, 정에 약한 걸 수도 있고.


예를 들어, 오늘 해야할 공부가 있어도, 저녁약속이 잡히면, 그 이후의 시간은 오로지 그 사람을 위해 비워둔다. 저녁을 먹고 나면 차한잔 할테고, 담소가 두시간이 될지 세시간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번은, 나는 저녁을 다 비우고 나왔는데, 밥만먹고 일이 있다며, 자리를 떠 아쉽게한 친구가 있었다. 알고 보니 그 일이라는 것은 다름아닌 집에서의 영어공부였다.


또 한가지 케이스는, 이 사람에게는 룰이 있다. 이미 최고임에도(나에게는) 불구하고, 일주일간의 패턴이 있어서, 본인이 생각한 '노는 날'이 초대받은 날과 다르면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


사람사는 세상에 어떻게 저렇게 빡빡하게 살수 있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사람들이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제 시간, 제 할일을 잘 챙기고 산다고 해야 할까. 나에게 비춰진 그들은 그랬다. 


이 외에도 주변에 많은 케이스들에서, 나는 왜 저렇게 안 살지? 라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  내 인생은 내 것인데, 왜 내가 남들에게 많은 시간을 쏟고 살까. 왜 나에게는 시간을 투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같은 시간을 부여받아, 나를 위해 쓰기에도 아쉬운데, 남을 위해 너무 많이 써왔다는 생각. 더욱이 삼십대가 되면 시간에 초조해 한다고 하던데, 나는 왜 여태 내가 주체적이지 않고 남들에게 이끌려 살았나 싶었다. 리스본에서의 시한부 인생은 헛되이 하고 싶지 않았다.


다행인건 지금 나는 혼자라는 것이었다. 

내 속에 있는 어린아이는, 혼자서는 뭘 잘 못하는 것 같다. 학창시절 여학생들이 화장실에 같이 가듯, 혼자 할 수 있는 산책도, 혼자 볼 수 있는 영화도 '누군가'가 없으면 선뜻 나서지를 못하는 성격이다. 하지만 원래 그랬던 것 같진 않고, 항상 옆에 누군가가 있어줬기 때문에 버릇이 되어버린 듯도 하다.

이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어린아이가 징징 댈 때가 있다. 이런 것은 옆에 누군가가 있으면 더욱 그렇다.


이곳에서 나는 '혼자서 뭐든하기', '혼자만 하기'를 감행한다. 

남에게 의지하지도 않고, 남에게 휘둘리지도 않고, 나를 남에게 맞추지 않기.

'내가 왜?'라는 물음을 먼저 던진다.



-운동의 시작-

사람들은, 이 황금기회에 여행을 가야지 뭐하는 거야 라고 했지만, 돈보다는 시간이 많으니, 나는 그간 지친 육신을 달래고 힐링하는데에 투자했다. 운동의 중요성은 인지하고 있지만, 그 시간에 공부해야지 라는 구닥다리 생각에 여태 뒹굴거리던 나였다. 겪어보니 그랬다, 결국 그시간에 공부도 안한다는 거.

먼저 점심이 다 되어야 일어나던 지친몸을 위해 수영장을 등록했다. 사실 혼자서는 잘 안하는 성격탓에 같은 숙소에 있던, 수영장에 다니는 중국인 친구에게, 나도 수영장에 같이 가고 싶다고 이야기를 해두었다. 그 후, 수영복을 사는데 약 3주가 걸렸고, 한달여만에 등록할 수 있었다. 후에 이사를 가게되어 혼자 수영장을 가게 되었지만, 습관만들기 66회 법칙을 지키고자 하였고, 신기하게도 60회를 넘어가니 가는 것이 힘들지 않았다. 해보니 좋은점 투성이었다. 


-일상 패턴 만들기-

오전중에 수영을 하면, 학교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버스에서 내리면 연구실이 아닌 식당으로 직행하여 점심과 커피를 하고 연구실로 들어간다. 식당에가면, 연구실 사람들을 종종 만나 합석하게 되는데, 종종 그들은 '왜 넌 혼자 밥먹니?'라고 물었다. 가족애를 중심으로 공동체 문화가 끈끈한 리스본에서, 나는 굉장히 차갑고 외로운 동양인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이왕이면 연구실에 먼저 들러, 다같이 식사를 해도 되지만, 교수하나가 수업에서 늦게 오거나하면 사람들은 기다리면서 어슬렁 거리곤 한다. 수없이 경험한 '대기시간'은 무언가 집중하기도 그렇고, 차라리 나는 내 패턴을 선택한 것이다. 식당에서 만나 내가 먼저 식사를 마치면, 커피한잔을 하면서 그들의 식사가 마칠때까지 함께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먼저 들어오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어느 덧, 그들도 이시간 즈음에 내가 식당에 있을 거라는 예상을 하게 되고, 적당히 그때 즈음 식당으로 오는 발걸음이 늘었다. 


+혼자여서 좋았던 점은, 식당분들이 더 챙겨주신다는 것이다. 물론 동양인이어서 눈에 띄었을 수도 있지만, 본메뉴-과일샐러드-쥬스-식후커피를 3일째 주문하던날, 할아버지는 입으로 한번씩 확인을 하셨고 4일째 되는 날 부터는, 알아서 쟁반에 담아주셨다. 이 정겨움은 비단 학교만이 아니고, 집근처에 자주가던 식당에서도 받은 대접이었고, 반대로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일식부페에도 자주 갔지만 이런 서비스는 받지 못했다. 기억력이 아닌 리스본 사람들의 '사람에 대한 관심'이리라.


저녁에도 급히 잡히는 약속은 가급적 피하고, 저녁식사후 두세시간 나만의 시간을 갖었다. 가급적이면 책을 읽거나 영어공부를 하려고 노력하였다. 처음엔 약속을 거절하는 것도 어렵고, 티비가 아닌 책을 펴는 것도 어려웠지만, 차츰익숙해졌고 나중엔 습관이 되었다. 


-여유 있는 주말-

그리고 주로 토요일에는 친구를 만났는데, 아는 사람이 하나 둘 늘다보니, 평일에도 약속이 생기고는 했다. 만나서 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나는 계획적으로 만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빠져도 되는 자리인지, 꼭 그날이어야만 하는지를 생각하고, 항상 우선순위였던 타인과의 약속을 '내 일' 다음으로 미루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초대를 받는것도 주말이 되고, 주중에는 특별히 할일이 없더라도, 나만을 위해 시간을 비워둘 수 있게 되었다. 

이제까지는 외부의 스케쥴들에 의해 좌우되느라 순수하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들이 분산되어 있었는데, 집중할 시간을 먼저 확보하고, 남은 시간을 대외활동으로 보내니 훨씬 안정된 느낌이었다. 분산되있던 대외활동과 공부시간을 집중시켜주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현실로 돌아와서는 또다시 과거의 나로 돌아와 있다. 하루 빨리, 새 환경에서의 패턴을 되찾아야 겠다.)

사람만날 일이 없을 때엔, 우선은 밖으로 나가 걸었다. 공원에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작은 동네 식당에서 커피한잔 하기도 하고. 티비방송과 식사를 하고, 노트북과 커피한잔을 하던 것이, 파란하늘 보며 식사를하고, 새소리를 들으며 커피마시는 환경으로 바뀌어 있었다. 인터넷 탓을 하였지만, 정작 중요한건 내 마음가짐과 태도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여전히 마음대로 되지 않을때는 스마트기기를 모두 없애버리고 싶다.


-과감히 놀기-

혼자서 여행을 해본적이 거의 없다. 이유는, 내가 여행가겠다고 말하면, 주변에 같이가자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하고, 나역시도 내가 가는게 아니라 누가 갈때 따라가는 겪이었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유럽에서 여행한번 못가겠다 싶어, 일단은 비행기표를 예약해버렸다. 열흘간의 이탈리아 여행. 스스로 여행길에 올랐지만, 결국 여행에서 순수하게 혼자다닌 날은 며칠 되지 않는다. 이때에도 길에서 만난 동행인에 휘둘려서 마음껏 즐기지 못해 아쉬워하며,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을 끊어내지 못하는 성격을 탓해야만 했다. 하지만 여행은 투자할 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이를 위해서, 나는 여행 날이 다가오는 동안, 열심히 일을 하였고, 여행 또한 다 잊고 열심히 놀았다. 마지막 3일정도는 뒷꿈치가 아파 못걸을 정도였음에도, 쉬고싶다는 마음보다 아쉽고 억울한 마음이 더 컸다. 또한, 빨리 돌아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가득해졌다. 


-행동의 중요성-

'시작이 반이다', '천리길도 한걸음 부터'의 속담은 우선 '행동'하는 것을 강조한다. '하면 된다'라는 말을 머릿속으로만 알고 깨닫지 못했다. 대학생 공모전 시절, 마감을 1주일 앞두고 교수님께서 '너 이거 못할 것 같은데?'라고 하셨고, 나는 '할수 있는데요?'라며, 밤마다 '할수 있어'를 되뇌이며 작업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의 나의 열정이 많이 사그라들어 아마도 나는 당연한 진리를 잊고 살았던 것 같다. 마치 학습된 무기력 처럼.

짧고 굵게 이루어내는 결단력의 소유자는 아니지만, 과거 십년을 돌이키면, 내가 이자리에 있는 이유가 드러난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막연하게 '박사해야죠. 유학가고싶다'라고들 한다. 나도 그랬고. 하지만 많은 친구들이 백일몽만 꾸고만다. 내가 유학을 하게 된것은 매우 단순한 계기였고, 취직후 1년 적응기를 마친후, 난 당장 어학원을 등록했다. 그렇게 5~6년. 목표시간보다 2년이 늦어졌다. 부족한 결단력 때문에. 마지막엔 준비하던 것이 잘 안되어,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이 안되었지만, 포기하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했던말은 이거다. '그래서는 못간다, 그냥 떠나라, 그래서 언제가냐'. 사람들은 당장의 것만 보는 습성이 있다. 나역시도 그랬고. 인생은 장기투자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지만... 지금 그 사람들이 나에게 그런다. '그때를 생각해보면, 새삼 너가 대단해보인다.' 그들중 몇은, 당시 자기가 투자하지 않았음을 후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결단을 내리면 바로바로 행동으로 옮겨, 똑부러지게 마무리하는 사람들이 있다. 생각의 방식도 깨끗한 사람. 나는 이제서야 배워가고 있다. 리스본에서, 홀로서기를 감행하면서, 그동안 기억상실에 걸린 내 열정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래, 그때 나는 그랬었지하며. 그냥 휩쓸려 살다보면, 멍청한 뇌는 남들만 보며 나를 잊어버린다. 남을 보듯 나를 보기. 그리고, 남에게 조언하듯, 나에게 말하기. 


캐리비안 해적에서 좋아하는 대사가 있다. 멋쟁이 죠니뎁이 흐느적거리며 말한다.

'세상에는 두가지 사람이 있다. 행동하는 자와 행동하지 않는 자.' 

"There are only two absolute rules. What a man can do. And what a man can't do."

- Pirates Of The Caribbean 1 

'행동'은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 이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다시한번 되뇌인다.



내 의지로 되지 않을 때, 때로는 보이지 않는 것에 의지해 보는 것도 좋다. (포르투갈 신트라의 수도원_Convent Capuch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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