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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새의 산책 Oct 30. 2018

문장. 장면. 기억. 추억

책을 읽다가 문득 그곳으로 가곤 한다...

부산 초량동에 있는 옛 백제병원은 1922년에 지어졌으니 거의 100년을 살아온 셈이다. 처음에는 병원으로 지어졌지만, 중국집으로, 일제강점기 때는 장교 숙소로, 이후에는 치안대 사무소, 중국 영사관, 예식장으로 사용되었다. 한 세기 동안 셀 수 없는 사람들이, 환자들, 음식점 손님들, 일본 혹은 우리 군인들, 하객들이 이 난간을 쓰다듬고 오르내렸을 것이다. 방들은 건물의 변신에 맞추어 여러 모양으로 칸막이와 장식을 바꾸어왔지만, 계단과 난간과 창살과 문틀은 오래도록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남았다. 장식이 새겨진 엄지기둥, 계단의 목재 색깔, 난간대의 크기와 간격, 계단참의 창문과 창살은 건물 전체에 흐르는 일관된 미학을 자신 안에 담고 있었다. p.69

진심의 공간_김현진 에세이


어릴 때 병원이었다던 건물에 살았던 적이 있었다.

전면엔 아빠의 '광고사' 그리고 중앙 복도를 따라 들어가면 구석이지만 들어가면 꽤 넓고 깊이감 있는 엄마의 '만화방'이 있었다. 그 벽 너머 어디 즈음이 우리 식구의 방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하면 그곳은

 수술실이 아니었을까 싶다.

방이라기엔 지나치게 크고 높고 차가운 느낌.

2층으로 올라가는 하늘이 보이는 계단이 있던 곳엔 반만 열린 중정이 있었고 목욕탕 같지만 그보다 훨씬 깊은 탕? 이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아마 빨래하던 곳이 아닐까 생각했던 것도 같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중복도 양쪽으로 방문들이 쭉 있었다.

그 방들에서 친구들이랑 수첩 따먹기를 했었던 것 같은데

그곳은 아마도 병실이었으리라.

드문드문 하지만 제법 생생한 장면들이 아주 가끔 떠오른다...

그곳에서 하던 탐구생활(방학숙제)도 이유 없이 훅 떠오를 때가 있다.





책방 무사는 자리를 옮겨 제주에서 다시 문을 열었다. 무사를 아꼈던 사람들의 시간이 고스란히 그곳으로 옮겨갔다. 오래된 제주의 집을 수리한, 지난 시절의 간판조차 떼어내지 않은 공간이다. 이는 오래된 세월을 증명하는 낡은 건물에 대한 나의 애착이다. 서울 계동에서 책방 무사를 운영할 때도 외관과 간판을 거의 건드리지 않았던 나는 제주에서도 같우 이유로 지금의 공간을 선택했다. 지난 세월을 증명하는 듯한 모습. (한) 아름 상회가 오랫동안 수산리의 친목을 책임지는 아주 중요한 장소였다는 점도 내 마음을 기울게 했다. 마을 사람들의 정이 켜켜이 담겨 있는 곳을 그대로 더 지켜나가고 싶었다.
오늘도, 무사_요조 지음



사진으로만 보았지만 책방 무사의 외관은 한결같이 책방 주인의 감성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무심한 듯 소소하게 그렇게

간판집 딸로서 할 말이 아닌가 싶지만 한 글자 날아간 낡은 간판을 그대로 둔 것도 너무 좋고

하필 그 이름이 (한) 아름 상회인 것도

참 좋다^^

나의 엄마는 만화방 사장님 전에 청해 시장의 양품점 사장님이셨다.

그때 그 청해 시장 안에도 어느 지역에나 있었을법 한 '한아름 상회'가 있었다. 만화방 주인이 된 이후에도

 엄마는 자주 "한아름아~~" 불렀고 "한아름 이모한테 가서..."라며 심부름을 시켰었다.

이 새벽에 책을 읽다가 이제는 얼굴도 기억 안 나는 한아름 이모가 검정봉지에 넣어주던 콩나물이 생각나고.

 '아름'이 될 수도 있었다는 내 이름에 대한 (지금 우리 삼 남매의 이름은 '정다운 우리  집'이지만 '아름 다운 우리 집 만세' 까지 생각하셨었다나? 하마터면 오 남매네 큰 딸 정아름이 될 뻔?)

옛날 옛적 소소한 생각들까지 꼬리를 물며 잠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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