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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는 참 예쁘구나 Jan 18. 2016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안녕, 응답하라 1988.

응답하라 1988이 드디어 끝났다.

한시름 놓은 건 '종방'으로 인해 한동안 멀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참 나쁜 버릇이긴 하지만 나는 아직 내가 아픈 것에 대해 직면하는 법을 터득하지 못했다,

피하거나 숨거나 도망가서 시간이 지나길 바라는 게 내 유일한 처세술이었다.

드라마로 그렇게까지 오버하냐라고 주위 사람들이 많이들 나에게 이야기했지만,

귀에 조금도 들어오지 않았다.

응답하라를 보며 속이 상해 잠을 설친 적이 많아서 주위 사람들의 말 따위 안중에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주일 내내 새벽 세시, 다섯 시... 그것도 간신히 잠들 정도였으니까.)


가족 이야기만을 꺼내어 보자면 희로애락이 가득한 이야기였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공감하며 펑펑 울어봤을 거라 생각한다),  재미를 추구로 넣었다던 멜로의 요소는 날 항상 힘들게 했다.

누구보다 정열적이고 뜨겁게 사랑했던 정환이의 절절한 사랑이 장난스러운 고백으로 끝나버린 순간, 가슴이 너무 아파서 울분을 참지못하고 폭발했다가 진정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대전에서 놀려고 온 친구가 새벽까지 나를 다독일 정도였다.) 작가님과 연출 피디님이 정말 미워서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차라리 가족적인 드라마로 만들 예정이었다면 남편 따위 찾지 말고 그냥 삼각관계만으로 이루어졌어야 했고, 정환이 사랑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넣어선 안되었다라고 백번 생각했다. 좋아했던 덕선이와 택이가 너무 밉기만 했던 순간도 있었다.


19화를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파서 미치겠는 데 정환이는 끝까지 멋졌다. 둘째 딸이 왔다면서 부모님을 챙기는 그 녀석의 모습과 덕선이를 잡으라며 택이에게 충고하는 그 모습들. 나는 참 정환이가 멋졌다.


하지만 20화를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마지막회. 나는 그것을 평생 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가족 요소적인 이야기가 무진장 궁금했지만 나는 정환이의 오지랖을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기사에서 본 정환이는 끝까지 웃으며 남들을 챙기는 여유까지 보였더랬다.

'넌 지금 너도 멀쩡하지 않을 텐데, 누굴 챙길 여유까지 보이는 거니? 아주 보살 났네, 났어.'

'그 상황에서 너는 웃음이 나니?'

'넌 왜 정말 아무렇지 않은 거니?'


내가 겼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바보같이 후회했던 적이 그 상황이었다.

누군갈 열렬히 사랑했지만 표현하지 못해 마음고생만 하다가 내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로 눈을 돌린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이 났다.

그걸 알고 있었음에도 그들을 배려하고, 돕고, 축하해주고 웃었던  그때가 아직도 나에게는 악몽으로 남아있다.

그들이 없는 장소에서 항상 울고, 아파하고, 술로 달랬던  그때가 너무도 생생하게 다시 떠올랐다.


응답하라는 이상하게 시리즈마다 내가 겪었던 이야기, 느꼈던 마음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기도 했고 해결책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래서 난 단 한편의 응답하라 이야기도 소중하지 않았던 장면이 없었다.

하지만 정환이의 아픈 사랑이 소중한 이야기가 될지는 모르겠다.

정환이는 그 후에도 오래동안 허하고 아프고 후회되고 또 아프고 힘들어했을 것이 분명했을 테니까.


그럼에도 말하고 싶은 한가지.

그래도 참 좋았다, 응답하라 너란 드라마.

울면서도 욕하면서도 미워하면서도 그래도 좋아한다 말할 수밖에 없는 그 드라마가 난 참 아팠다.


사진출처: 히죽히죽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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