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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는 참 예쁘구나 Dec 14. 2015

억울한 사연

도가 지나친 현실

새벽 두시.

한 남자가 어두운 방 안에서 책상 앞에 앉아 스탠드 불빛만을 의지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는 연이어 한숨만을 내쉬고 있다.

책상 위에 놓인 종이 한 장. 그리고,

구겨진 종이들이 가득한 휴지통.

무언가를 열심히 쓰다가 쓴 글씨들을 또 마구 긁어버리더니,

종이가 이내 구겨지고 가득 찬 휴지통에 놓이다 튕겨져 나온다.

떨어진 종이를 보다가 남자는 머리를 두 손으로 헝클기 시작한다.

땅이 꺼져라 바닥을 보며 한숨을 쉬어댄다.

이어, 다시 펜을 들고 새로운 종이에 다시 글씨를 써내려 간다.


사. 직. 서.


그는 오늘 3년 동안 다닌 직장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지긋지긋한 업무량.

자기를 발전시키기엔 너무 거리가 먼 회사 생활.

반복적인 일상.

이제는 너무 당연해진 야근과 주말출근.

이 모든 것을 참고 인내하여 3년 만에 가지게 된 절호의 기회.

그리고 날름 그 결과를 빼앗아간 거지 같은 실장 새끼.

실장... 새끼.

남자는 순간 속에서 무언가가 올라오더니 끝내 화장실로 뛰어가 먹은 것들을 게워내었다.

실장의 실 자만 생각해도 나오는 구역질에 그동안 그가 받아온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한지를 알 수 있었다.


'김대리, 우리 실장님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위에서 자기가 나한테 이야기했던 그 기획 말야. 평가가 좋았나 봐.

곧 너한테 좋은 소식이 있을 거 같아.'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다 회사 동기인 성대리가 전해 준 빛과 같은 이야기였다.

'드디어 그녀에게 프러포즈를 할 수 있겠어. 미리 축하할게.'

툭툭 어깨를 치고 내려가는 성대리를 보다가 남자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동안 힘들게 일하고 노력해 온 시간의 보상이라 생각했다.

이어 앞으로 좀 더 탄탄해질 자신의 미래가 보이기까지 했다.

절로 행복해졌다.

하루 동안 쌓인 업무를 진행하는 데도 힘들지 않고 자연스레 휘파람까지 나왔다.

그래서 더더욱 열심히 열과 성을 다해 일을 진행했었다.

하지만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시간을 그리 길지 않았다.

'야, 김대리.'

업무 중에 성대리에게 메세지가 왔다.

'이번에 기획한 거 너라고 하지 않았어?'

'어, 내가 했지.'

'민실장 그거 진짜 못돼 쳐 먹었네.'

'무슨 말이야? 우리 실장님이 왜?'

남자는 성대리의 다음 메시지에 손이 떨리고 숨이 가빠져 왔다.

가슴속에서 일렁이는 짜증이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그는 끝내 참지 못하고 자리를 벅차 실장님한테로 향했다.

'우리 실장님께서 민실장 곧 승진할 거 같다고 하더라. 어찌나  분해하시던지.  네 기획 민실장이 가로챘다고 멍청아.'


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한참을 묻고 있다 이내는 고개를 든 채 몽롱한 눈빛으로 멍하니 변기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한두 방울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곧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흐르게 되었다.

억울했고 또 억울했고 억울했다.

다른 감정 따윈 느낄 겨를도 없었다.

힘쓸 방법도 없이 당하기만 해야 했던 자신이, 그리고 지금이 이 상황이 그저 억울하기 그지없었다.


'이번에 네가 총괄해서 수정도 부탁해.'

'그건 제가 밤새서 작성한 기획서입니다. 실장님.'

'알아. 원래 다 이렇게 회사 생활하는 거야. 사회생활 처음 하는 것처럼 왜 그러나.'

'하지만 이건 제 첫 기획입니다.'

'그래서 어쩌자고?'

'고발하겠습니다.'

'그래? 한번 해봐. 어디 할 수 있으면.'

'실장님.'

'누구나 다 겪는 일이야. 자네 너무 억울할 필요 없어. 너도 내 자리 서면 알게 될 거야. 섭섭지 않게 도와줄게. 그러니 이번 주까지 수정 마쳐놓도록 하게.'


이후 남자는 매일 술을 마셨다.

지독히 힘들어했다.

하지만 멈출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기획을 수정하여 그대로 실장에게 제출까지 했다.


남자는 변기를 붙잡은 채 오열했다.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이 더 이상 없었다.

거지 같은 이 현실이  하루빨리 지나가기를,

아무렇지 않아지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책상에 놓인 종이에는

그의 사직서 내용이 적혀있었다.

'누구나 다 겪는 일을 저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직서를 제출하는 바입니다.'


그는 오늘 3년 동안 다닌 직장을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꾸며 쓰는 소설임에도 글을 쓰다가 끝내는 마음이 좋지 않아졌습니다. 글을 쓰고 말을 하는 데에 있어서 객관성과 주관성을 따지는 일은 참 애매합니다. 그래서 '당연하다'라는 말이 한순간에 이기적인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요새 참 많이 느끼게 됩니다. '누구나 다 겪는 일'이라는 말이 참... 이 말이 더 이상 일반화처럼 쓰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진출처: 히죽히죽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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