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카톨릭 세례명은 " 수산나"이다. 내가 그녀를 알게된 것은 아파트 입주 3년정도 지난 후 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 아파트는 옛날 동네를 재개발하여 신축 한 아파트이다. 환경에 적응을 잘하는 사람의 속성으로 보면 주변에 산책을 할수 있는 한강도 있고 유명한 문화거리도 있고 해서 아파트 가격이 높지 않아도 우리는 스스로 살기 좋은 아파트라 자부를 하며 살고있다.
그녀는 재개발이 되기전 옛날 동네에서도 나와 함께 살았다고 했으나 서로 살고 있는 방향이 틀려서 인지 그 시절은 그녀를 한번도 보지 못했다. 입주 후 2년이 지나서 나는 스스로 자원해서 아파트 회장직을 맡았다. 그러면서 주민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그녀도 주변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그녀는 60대 중반으로 남편과도 원만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다. 남매 아이 둘은 모두 결혼을 하여 하나는 외국에, 다른 하나는 지방에 살고있다고 한다. 60대가 되면 대체적으로 자기고집이 강해지는 나이 인가 보다. 부부가 둘이서 살고 있으면서 둘다 고집이 강하고 억세면 어쩔수없이 요즘 유행하는 "황혼이혼"도 생기고 아니면 한명이 고집을 부려도 다른 한명이 잠시 숨을 죽이며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무슨 일이 있었나" 하듯이 슬그머니 식어버리기도 한다. 그녀의 남편도 가끔 고집을 부리면 그녀는 슬기롭게 남편의 고집에 대응을 한다. 그때마다 유지되어 할 부부의 선은 다시 굳건하게 지켜지곤 한다.
그녀는 모든일에 열성적이다. 아파트의 큰일, 작은일 모두에 늘 앞장을 선다. 경로당의 총무직(사실 회장은 활동이 없어서 총무가 회장임)을 맡아서 아파트내 노인들을 위한 행사나 구청에서 지급되는 물건들을 나누는 일을 가끔 한다. 한번은 코로나 기간 중 구청에서 지급된 마스크를 노인들에게 나누어 줄때 그녀가 주관을 했다. 줄을 서서 마스크를 받아 가던 앞줄에 선 한분이 앞에서 받고는 욕심이 더 생겼는지 뒤줄로 살짝 와서 시치미를 떼고 한번 더 받아 갔다. 옆에 보던 다른 분이 그녀에게 두번 받는 것을 알려 줬다. 그러자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저도 알아요 그분을 여기서 지적하면 자칫 마음이 상해서 다시 안올수 있어요" "다음에 또 나눌 기회가 생기면 그때 그분에게 집에서 많이 필요하신가 봐요 하나 더 드릴까요" "그러면 대부분 다음에는 줄을 두번 서지 않아요"
그녀와 우리는 비슷한 세대이고 비슷한 환경이고 해서 동질감 때문인지 급속히 친해졌다. 그녀가 무슨 음식을 하면 우리와 나누고 또 우리가 하면 그녀와 나누고 여행도 함께 가고 삭막한 아파트에서 좀처럼 볼수없는 끈끈한 이웃이 되었다.
노인이 되고 난 후부터 새벽 잠이 없어졌다. 새벽에 한강 주변 길을 산책을 하면 그녀를 새벽 길에서 만난다. 그녀는
씩씩한 모습으로 걸어와 항상 밝은 모습으로 인사를 하면서
잊지않고 손 하트를 날려주고 팔을 흔들며 헤어 진다. 때로는 육십이 넘은 나이에 과하지 않나 싶어서 주위를 둘러보지 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인사를 하고 산책 길을 걸어 간다.
일년전 그녀와 나는 작은 다툼이 생겼다. 아파트 일로 서로
의견이 충돌하여 다툼으로 발전되었다. 그때 나는 너무 섭섭했다. "친구라 생각했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수가..." 그녀와 함께 배우는 요가 활동을 중지하고 다시는 만나기가 부담스러웠다.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만난 인간 관계는 그렇게 되면 그 순간에 관계가 끝나는게 보통이다. 어릴적 친구라면 서로의 성격을 알아서 이해를 해줄수 있겠지만 몇년 되지 않는 관계에서는 서로가 좋다고는 하지만 가슴 속 깊은 곳에 숨겨둔 나만의 비밀은 알려줄 수는 없다. 서로가 알아가는 시간이 짧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때 나는 그녀와 친구관계는 더 이상 갈수가 없고 끝났다 고 생각했다. 육십이 넘으면서 나름의 고집이 강해졌다. 또 기업의 대표 생활을 오랫동안 해서 인지 내가 옳다고 하면 내 고집을 나도 꺽을수가 없다. 설령 그것이 잘못되었다 하여도 고집을 접기는 너무 어렵다.
어느 날 저녁 그녀가 집으로 찾아왔다. "미안하다" "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다" 고 하면서 나에게 다시 종전의 친구 관계를 다시 가야 된다고 말했다. 그녀가 얼마나 힘들게 말을 꺼냈는지, 얼마나 어렵게 말을 했는지 그날저녁 나는 알고 있었다.
그후 그녀를 만나면 그때 고집을 부린 일이 생각나 보기가 민망스러운데 그녀는 마치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전혀 개의치 않고 항상 밝은 모습이다. 오히려 자신의 잘못이라고 탓하면서 자신을 내려놓은 그녀 앞에 나는 부끄럽고 옹졸하고 작아지기 만 한다.
노인이 되어가면 남성과 여성 이외에 "중성"이라는 또하나의 성이 더 생긴다고 한다. 그녀와 나는 서로 살아온 환경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양쪽 다 아이들은 모두 출가하여 떠났고 부부 둘만 살고 있다. 가끔은 사람이 그리워지는 나이 이다. 아파트내 이렇게 중성친구를 만날수 있게 되어 항상 감사해야겠다
"파이팅" 우리마을 대장 수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