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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투표만이 답이다.

by 훌리아


죄를 짓고 있는 그림자들

소르델로(이상적 애국심, 시인의 정체성 탐색, 정치적 도덕성)가 없는 것은 확실했다.

그곳에 무엇이 있을까?

우리는 알지 못했다.

푸르른 나무도 없다.

말을 달리지도 않는다.

토론도 연구도 없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향해 혹은 구천을 떠도는 조상들의 영혼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공덕과 타인들의 공덕이 함께 펼쳐 놓은 끝없는 평원을 향해서.



희생의 시대와 그 뒤에 오는 건강한 성찰의 시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이따금 밤에 불을 꺼놓은 채 의자에 앉아 낮은 목소리로 파쇼fascista(독재적이고 반민주적인 인물을 비하하거나 조롱할 때 쓰는 말.)와 파당faccioso(파벌주의자, 당파적 인물, 자신의 이익이나 소속 집단만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 무슨 차이가 있는지 자문했다.

두 개의 단어일 뿐이다.

내가 제일 좋은 세상은 아니라도 <가능한> 세상, <실제> 세상에 있다는 막연한 느낌으로 산티아고의 공기를 호흡했다.

삶은 계속되고 계속되고 계속되었다.

마치알갱이마다 미세하게 풍경을 그려 넣은 쌀알 목걸이 같은 삶이었다.

모든 사람이 그런 목걸이를 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목걸이를 벗어 눈에 가까이 대고 알갱이 마다 담겨 있는 풍경을 해독할 충분한 인내심이나 용의가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진실이었다.

우리는 권태에 찌들어 있었다.

우리는 책을 읽었고, 권태를 느꼈다.

지식인들이란, 밤이고 낮이고 책만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밤이고 낮이고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앞을 못 보는 티탄도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다.


이제는 지겨워져서, 소르델 흉내를 내며, 소르델로, 어느 소르델로냐고?



진실을 외면하는 문학은 하지 않아야 한다.

지식인이 아니어도 알아야 한다.

어디에서 흔들리는지 어디에서 소리나고 있는지 주시해야 한다.

사람들은 거리로 뛰쳐나간다.

거리에 모인 사람들.


죽음을 앞둔 평론가인 사제의 고백으로 이 소설은 이어지는데 문단 권력을 누렸던 이 사람 또한 기실 피노체트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부역자였다. 그는 이 모든 사실을 털어놓은 뒤 죽음의 폭풍 속으로 사라진다. 이 소설은 ‘소수의 평론가가 정치 권력이나 문단 권력에 빌붙어 마피아 같은 작태’를 부리는 통렬한 풍자와 야유가 그 핵심이다.


칠레의 밤_로베르토 볼라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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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5.28

어제 21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TV토론회가 있었다. 미래가 없는 토론회였다.

분노를 넘어서서 슬프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후보 자격도 없는- 들을 가치도 없는- 토론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투표만이 답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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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3일 불법 비상계엄 이후로 포스팅한 글이다.

공포와 불안, 경계, 참혹... 내 심경이 담겼던 날들이었다.

계엄이 끝난 것이 맞나?

정치를 몰라도 사람은 올바르게 알아봐야 한다.

저 사람이 왜 저 자리까지 서게 되었는지 그 발자취 거슬러서 봐야 한다.

얼굴만 다른 또 다른 전두환, 윤석열은 계속해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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