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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May 11. 2023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

인생이란 우리를 최후의 진실, 유일한 진실로 이끌어 가는 오류의 연속이다.



칠레의 밤  주인공은 문인이자 문학 평론가인 이바카체 신부이다. 그는 시를 쓰면서 박물관과 도서관을 드나들고, 유럽의 성당을 순례하며, 유적의 보호를 위한 보고서 초안을 쓰고, 칠레에 문학기사와 서평을 보내고 서재에서 고전에 심취하며 책을 읽고 밥을 먹고 산책하고 평안 속에 안주하였다. 


임종을 앞둔 칠레의 보수적 사제이자 저명한 문학 비평가 세바스티안 우루티아 라크루아. 그는 수수께끼의 그림자 같은 인물<늙다리 청년>에게 시달리며 피노체트 치하 칠레에서 보낸 일생을 회고하기 시작한다. 한때 비평가 페어웰을 문학적 스승으로 삼고 친분을 다지며 문학을 향한 열정을 불사르던 우루티아 사제는 잠시 유럽에 머물며 성당을 순례한 후 칠레로 돌아온다. 


1973년 쿠데타 이후의 어느 날, 오데임과 오이도라는 정체불명의 두 남자에게 부탁을 받고 피노체트와 그 수하의 몇몇 장군들에게 마르크스주의를 강의한다. 10주간의 비밀스런 강의를 마친 후 우루티아 사제는 마리아 카날레스의 문학 살롱에 발을 내딛는다. 미모의 부유한 작가 지망생인 마리아 카날레스는 칠레의 여러 문인들을 집으로 끌어들여 파티를 여는데……. 이제 이 모든 과거를 뒤로 한 우루티아 사제는 죽음 앞에 서서 다시금 자신의 양심을 되돌아본다.










내 이름은 

세바스티안 

우루티아 

라크루아이고 

칠레인이다.



나는 열네살의 나이에 신학교에 들어갔고, 세월이 흐른 후 졸업을 했을 때 어머니는 내 손에 입을 맞추며 나를신부님이라고 불렀다. 신학교에 들어가려 했을 때 아버지는 반대하셨다. 족제비나 뱀장어처럼 이 방 저 방 스르르 다니던 아버지 그림자가 기억난다. 나의 유년기와 청소년기 시절의 영상들이 되살아나 보였다. 나 자신의 목소리, 나의 꿈을 인도하는 내 초자아의 목소리, 불타는 도로를 달리는 냉동트럭을 운전하는 '나' 위의 '나'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내 평판은 석양을 닮았고, 그 평판은 거슴츠레한 눈꺼풀을 하고서 시간이 야기하는 잔잔한 경기(驚氣)와 온갖 파괴를 관조하리라. 나의 운명. 나의 소르델로. 지랄같이 노란 권태와 지랄같이 눈부시게 푸른 권태 사이를 쏘다녔다. 



칠레의 국기



죄를 짓고 있는 그림자들그림자 같은 새주요 파괴자 피에트로 신부가 매사냥으로 오래된 성당이 비둘기 소탕하였다. 부르고스 신부와 추위에 죽어 가고 있는 듯한 매 로드리고를 밤하늘에 날려보내며 말했다. 날아라, 로드리고. 매가 사라지기 전 자신의 발밑에 피투성이 비둘기들. 부르고스의 밤하늘로 사라져 버린 것이 자신의 잘못일지 모른다. 로드리고를 불러야 했다. 그랬으면 매가 되돌아왔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p92




시간이 자애로이 감추어 버린 것을 무엇 때문에 들쑤신단 말인가? 칠레에서는 이렇게 문학을 하지. 하지만 어디 칠레에서만 그런가.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렇게들 한다고. 유다의 나무. 유다의 나무.




소르델로 

이탈리아 태생의 13세기 음유시인 

단테는 이 소르델로를 신곡의 연옥편에서 

주인공 단테와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연옥의 산으로 안내하는 인물이다. 

소르델, 

소르델로, 

어느 소르델로냐고? 



길을 잃었던 것 같다. 

페어웰의 페온(주인에게 빚을 지고 노예처럼 얽매여 사는 일꾼) 셋이 보였고 무릎을 꿇고 내 손을 입에 갖다 대면서 말했다. 겁도 나고 구역질도 났지만 내버려 두었다. 그들은 길쭉한 빵을 내놓았다. 농부들 빵이 그렇듯이 딱딱했고, 그럭저럭 먹을 만했고, 감사를 표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성호를 그으면서 그 집을 나섰다. 


둘째 날 구불구불한 목장 길에 밀짚모자를 쓴 두 농부가 보이더니만 수양버들 아래로 사라졌다. 저택 본채 앞이 아니라 하느님에게 버림받은 듯한 경작지 앞이었다. 아보카도 나무가 몇 그루 있고, 그 그늘 아래로 아르침볼도(기괴한 그림 그렸던 16세기 이탈리아 화가)의 그림에 어울리는 땅을 지나가다가 아담과 이브처럼 벌거벗고 밭고랑을 따라 일일에 열중해 있는 소년과 소녀를 보았다. 


소년은 콧물 한 줄기가 코에서덜렁거리며 가슴께까지 내려와 격한 구역질을 참을 수 없었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소녀는 사라지고 없었다. 닭장을 지나치지 외양간과 돼지우리가 있어서 빙둘러 갔더니 그 반대편에 아라우카리아(전나물와 유사한 침엽수 곧고 높게 자란다)가 우뚝 서 있었다. 그렇게 고귀하고 아름다운 나무가 이런 곳에 하느님의 은총이 이런 곳에도.. 



절대 고독에 대한 확신이 계속되었다. 

그녀들을 보았다. 다크서클, 갈라진 입술, 빛나는 광대뼈, 기독교인의 체념과는 다른 인내심, 다른 차원의 인내심, 칠레 여인들이기는 하지만 칠레적이지 않은 인내심. 잉태된 적이 없는 인내심. 외계에서 비롯된 인내심. 인내심이 거의 바닥내려는 참이었다. 다들 추했다. 한 여인이 나를 데려다 주려고 했다. 거절했다. 웃음이 나서 전율했다. 웃음의 전율을 느낀 것이다. 


돼지들도 고통을 겪는군. 돼지들도 고통을 느끼지. 그 고통이 그들을 숭고하게 하고 정갈하게 하는 거니까. 아무 의미없는 말들 내 동포들의 낮은 수준과 무한한 절망을 담고 있었다. 



소르델로가 없는 것은 확실했다.

그곳에 무엇이 있을까? 우리는 알지 못했다. 푸르른 나무도 없다. 말을 달리지도 않는다. 토론도 연구도 없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향해 혹은 구천을 떠도는 조상들의 영혼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공덕과 타인들의 공덕이 함께 펼쳐 놓은 끝없는 평원을 향해서. 


희생의 시대와 그 뒤에 오는 건강한 성찰의 시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이따금 밤에 불을 꺼놓은 채 의자에 앉아 낮은 목소리로 파쇼fascista와 파당faccioso이 무슨 차이가 있는지 자문했다. 두 개의 단어일 뿐이다. 내가 제일 좋은 세상은 아니라도 <가능한> 세상, <실제> 세상에 있다는 막연한 느낌으로 산티아고의 공기를 호흡했다. 



삶은 계속되고 계속되고 계속되었다.

마치알갱이마다 미세하게 풍경을 그려 넣은 쌀알 목걸이 같은 삶이었다. 모든 사람이 그런 목걸이를 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목걸이를 벗어 눈에 가까이 대고 알갱이 마다 담겨 있는 풍경을 해독할 충분한 인내심이나 용의가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진실이었다. 우리는 권태에 찌들어 있었다. 우리는 책을 읽었고, 권태를 느꼈다. 지식인들이란, 밤이고 낮이고 책만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밤이고 낮이고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앞을 못 보는 티탄도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다. 



이제는 지겨워져서, 소르델 흉내를 내며, 소르델로, 어느 소르델로냐고?




오랫동안 피신하여

시간을 죽이는 동안

최고의 시인 네루다

최고의 비평가 페어웰

구세주,은총 살바도르




케르켄 광장
새 몇 마리가 뒤편에 있는 나무 군락에서 날아올랐다.
버려진 마을 이름인 케르켄이라고 우짖는 것도 같고 <키엔, 키엔, 키넨> 이라고 하는 듯도 했다.

키엔은 스페인어로 <누구야?>라는 뜻 p14,15




서품을 받기 며칠 전 혹은 며칠 후에 

페어웰, 그 유명한 페어웰을 알게 되었다. 페어웰은 라바 농장으로 나를 초대했다. 페어웰은 이름도 모를 젊은 시인과 함께 라바 농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비평에 관심이 있지만 시도 쓰는 터라, 페어웰과 젊은 시인의 유쾌하고 시끌벅적한 토론에 끼어드는 것은 비바람 속에 항해하는 짝일 듯싶었다. 젊은 시인은 알고 보니 네루다 추종자이다. 


조국의 모든 문학선(船)이 잠시 혹은 오랫동안 피신하는 강어귀라고 혼잣말을 했다. 그의 저택이 대서양 횡단 여객선처럼 페어웰의 집은 항구. 네루다와 페어웰이 얼싸안고 루벤 다리오의 시 몇 수를 듀엣으로 낭송하는 동안, 네루다의 젊은 추종자와 나는 그 시인이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이고 페어웰은 우리나라 최고의 비평가라고 단언하면서 연거푸 축배를 들었다.



나는 카톨릭 대학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시들을 발표하기 시작했고, 그다음에는 산티아고의 문학적 삶에 대한 기록인 비평들을 모은 책들도 처음으로 출간하기 시작했다. 비평을 위해 필명을 하나 만들고 시 창작에는 본명을 써야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페어웰 처럼 죽음의 해안가를 밝히는 겸허한 등대처럼 시민적 가치의 측면에서 생생한 표본이었다. 


살바도르 레예스 선생은 독일에서 알게된 가장 순수한 사람은 독일 작가 에른스트 윙어(독일군 장교 제복을 입은) 라고 했다. 제2차 세계전중 파리에서 칠레 대사관 근무할때  독일,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열린 파티에서 절세미인 조반나는 신비주의적인 장미같은 살롱으로 선생을 인도했다. 시간의 종말까지 지속될 그런 살롱들이었다. 살바도른 선생은 어느 과테말라 화가의 다락방에서 윙어를 만났다. 화가는 피난을 가지 못해 도왔으나 그는 은혜를 입고도 결코 감사를 표하지 않았다. 


살바도르 선생이 안쪽 의자에 앉아 당신 영혼의 활동적인 풍경을 바라보면서 시간을 죽이는 동안, 우울하고 골골한 과테말라인은 파리의 기묘하고 반복되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오싹한 그림자, 파리의 흔들리는 석양을바라보는 그 화가를 그만 보고 싶은 소망, 그를 잊으려는 충동, 야심을 감추는 소망, 들리지 않는 말을 듣데 되리라는 두려움이 선생의 영혼에 스친것이다. 





그의 사나운 얼굴

그의 상냥한 얼굴

늙다리 청년



나는 지금 죽어 가고 있건만 아직도 하고픈 말이 너무도 많다. 나 자신과는 평화롭게 지냈는데. 그저 묵묵히 평화를 누렸건만. 그런데 느닷없이 이 일 저 일 떠올랐다.  그놈의 늙다리 청년 탓이다. 그놈의 늙다리 청년이 내게 일부러 흠집을 내려고 불과 하룻밤 사이에 퍼뜨린 말을 뒤엎을.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느닷없이 집 앞에 나타나 딱히 이유도 없이 대놓고 욕을 한 그 늙다리 청년에게 대꾸할 힘이나 기억해 낼 힘은 아직 남아 있다.  1950년대 후반 그 늙다리 청년은 대여섯 살에 불과할 때였다. 그곳에는 네루다가 있고, 몇 미터 뒤에  내가 있고, 그 사이에는 밤과 달과 기마상과 조국 칠레의 무명의 품격인 풀과 나무가 있었다. 그 늙다리 청년은 틀림없이 이런 경험담이 없으리라. 네루다를 알지 못했으니까. 


달을 향해, 대지의 사물을 향해, 본질은 몰라도 직관으로 알 수 있는 천체를 향해 시를 읊고 있던 네루다가 그곳에 있었는데, 바로 그곳에 내가 사제복을 입고 추위에 덜덜 떨며 있었다고. 그곳에서 네루다가 시구를 낭송하고 있었고, 뜻은 파악하지 못했어도 나는 처음부터 영적 교감을 느꼈다. 


나는 그 늙다리 청년의 책들을 읽었다. 방황, 거리의 싸움박질, 골목 길의 끔찍한 죽음, 음탕함과 외설 등 시대의 요구에 부응한 성(性), 칠레가 아닌 일본의 어느 날 석약, 지옥과 혼돈, 지옥과 혼돈, 지옥과 혼돈 등은 있었다. 오늘날 나를 갉아먹고, 무기력하게 만들고, 늙다리 청년의 말을 들을 때마다 눈물을 글썽이게 만드는 우울증이기도 하다. 


오래전부터 늙다리 청년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제 나에게도 문인들에게도 비난을 퍼붓지 않는다. 이렇게 문학을 하고, 서구의 위대한 문학도 이렇게 하는데 늙다리 청년에게 머리에 똑똑히 새겨 두라고 말했다. 늙다리 청년은 <아니야>라는 입 모양을 한다. 혼자서는 역사에 대항하기는 힘들다. 늙다리 청년은 늘 혼자였고, 나는 늘 역사와 함께했다. 


해결책? 그렇게 문학하지 않는 해결책? 역사에 대항하여 혼자서 나아가는 문학을 하는 것...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진실을 외면하는 문학은 하지 않아야 한다. 지식인이 아니어도 알아야 한다. 어디에서 흔들리는지 어디에서 소리나고 있는지 주시해야 한다. 사람들은 거리로 뛰쳐나간다. 거리에 모인 사람들. 늙다리 청년은 어디 있는 거야? 왜 가버렸을까? 



진실이 차츰차츰 시신처럼 떠오른다. 바닷속 깊은 곳에서 혹은 낭떠러지 밑에서 떠오르는 시신. 떠오르는 늙다리 청년의 검은 윤곽이 보인다. 그의 흐느적거리는 윤곽. 그의 사나운 얼굴, 그의 상냥한 얼굴이 보인다.

<칠레의 밤> p156




<칠레의 밤> 저자로베르토 볼라뇨



소수의 평론가가 

정치 권력이나 문단 권력에 빌붙어 

마피아 같은 작태

피노체트 시대의 사회분위기 풍자



선거로 뽑힌 칠레 최초의 사회주의자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를 1973년 쿠데타로 몰아내고 권좌를 장악한 피노체트 장군. 17년간 수만명을 납치해 고문하고 수천명을 학살하면서 권좌를 유지했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광기, 정치범들에 대한 혹독한 고문, 일상의 삶에까지 강요된 침묵, 무차별적 ‘좌파’ 척결 등이다.  


오데임과 오이도라는 정체불명의 두 남자에게 부탁을 받고 집권한 쿠데타 주역들(피노체트 장군, 라이 장군, 메리노 해군 사령관, 멘도사 장군)에게 마르크스주의 지식을 전수하고, 독재시대에 칠레 지성계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던 우루티아 신부는 죽음을 앞두고 회개는커녕 자신의 행적을 합리화시키는 추악함을 보여준다. 


스페인어로 <oído>는 <귀>,<청각>이라는 뜻이고 강세 표시에 따라  <이>를 강하게 발음한다. 반면 이 등장인물의 이름은 oído로 앞의 <오>에 강세가 온다. 두 인물의 이름이 오데임 Odeim과 Oido는 거꾸로 읽으면 각각 공포와 증오를 뜻하는 <미에도 miedo>와 <오디오 odio>가 된다. 


조국의 문인들과 예술가들이 모이던 마리아 카날레스의 집, 우루티아 신부는 지하실에서 길을 잃는다. 그의 남편 지미 톰슨이 칠레 국가 정보국의 핵심 인사이며 자기 집을 심문소로 이용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반체제 인사들이 지미의 지하실을 거쳐 갔다. 아옌데의 옛 장관을 암살하고, 칠레인 망명자들을 목표로 아르헨티나와 유럽에서 수차례 테러를 기획했다. 


죽음을 앞둔 평론가인 사제의 고백으로 이 소설은 이어지는데 문단 권력을 누렸던 이 사람 또한 기실 피노체트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부역자였다. 무덤 속으로 가져갈 일... 그는 이 모든 사실을 털어놓은 뒤 죽음의 폭풍 속으로 사라진다. 









' 볼라뇨는 1953년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다. 그의 아버지인 레온 볼라뇨는 트럭 운전수였고 어머니인 빅토리아 아발로스는 학교 교사였다. 어릴 적에 학업을 그만두고 책을 훔쳐 독학을 시작했다. 청년 시절 유랑을 하다 1968년 멕시코로 이주해 일용직으로 생계를 꾸렸다. 그럼에도 시 쓰기를 멈추지 않았고 항상 스스로를 시인으로 여겼던 그는, 15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20대 초반에는 <인프라레알리스모>라는 반항적 시 문학 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이어 20대 중반  1977년부터 유럽으로 이주 스페인에 거주했다. 37세에 아들을 얻고 나서야 산문 창작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기로 결심하여 본격적으로 소설 쓰기에 투신한다. 


첫 장편 《아이스링크》(1993년)를 필두로 거의 매년 소설을 펴냈고, 각종 문학상을 휩쓸었다. 특히 1998년 발표한 방대한 소설 《야만스러운 탐정들》로 <라틴 아메리카의 노벨 문학상>이라 불리는 로물로 가예고스 상을 수상하며 라틴 아메리카의 대표적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2000년 출간된 『칠레의 밤』에서 다시 한번 진가를 발휘했고, 그리고 2003년 스페인의 블라네스에서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매달린 《2666》은 볼라뇨 필생의 역작이자 유작으로 스페인과 칠레, 미국의 문학상을 휩쓸었다.


오랫동안의 궁핍한 생활을 거쳐 2003년 간부전으로 사망하고 나서야 세계적인 작가가 된 로베르토 볼라뇨는 자전적인 색채를 가진 문학적 탐정 소설에 정치적 현실을 교묘하게 끼워넣는 작풍으로 유명하다. ' 


- 위키백과 발췌 -



한국 출간작 소설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 (La literatura nazi en América)》          

            《칠레의 밤 (Nocturno de Chile)》          

            《부적 (Amuleto)》          

            《먼 별 (Estrella distante)》          

            《전화 (Llamadas telefónicas)》          

            《야만스러운 탐정들1 (Los detectives salvajes)》          

            《야만스러운 탐정들2 (Los detectives salvajes)》          

            《제3제국 (El tercer Reich)》          

            《참을 수 없는 가우초 (El gaucho insufrible)》          

            《팽 선생 (Monsieur Pain)》          

            《2666  1~5 (2666)》          

            《안트베르펜 (Amberes)》          

            《아이스링크 (La pista de hielo)》          

            《살인 창녀들 (Putas asesinas)》          

            《낭만적인 개들 (Los perros románticos)》          




문학과 문인에 대한 저주 - 볼라뇨의 문학세계 -




『칠레의 밤』, 『야만스러운 탐정들』, 『2666』  

군사독재



선거로 뽑힌 칠레 최초의 사회주의자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를 1973년 쿠데타로 몰아내고 권좌를 장악한 피노체트 장군. 그는 이후 17년간 수만명을 납치해 고문하고 수천명을 학살하면서 권좌를 유지했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광기, 정치범들에 대한 혹독한 고문, 일상의 삶에까지 강요된 침묵, 무차별적 ‘좌파’ 척결 등이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후 ‘라틴 아메리카 최후의 작가’로까지 추앙받는 소설가 로베르토 볼라뇨(1953∼2003)는  칠레의 밤 에 그 풍경의 일단을 풀어놓았다.  소설의 주인공은 문인이자 문학 평론가인 이바카체 신부라는 인물이다. 쿠데타가 일어나고 학살과 고문이 자행되는 동안 서재에서 고전에 심취하고, 집권한 쿠데타 주역들에게 지식을 전수하고, 독재시대에 칠레 지성계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던 그는 죽음을 앞두고 회개는커녕 자신의 행적을 합리화시키는 추악함을 보여준다.


죽음을 앞둔 평론가인 사제의 고백으로 이 소설은 이어지는데 문단 권력을 누렸던 이 사람 또한 기실 피노체트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부역자였다. 그는 이 모든 사실을 털어놓은 뒤 죽음의 폭풍 속으로 사라진다. 이 소설은 ‘소수의 평론가가 정치 권력이나 문단 권력에 빌붙어 마피아 같은 작태’를 부리는 통렬한 풍자와 야유가 그 핵심이다. 


죽은 사람들과 그들의 운명적인 비가를 통해 우리 시대의 어리석음을 강력하게 고발하고 공격 (번역자 송병선)



마리아 카날레스라는 피노체트 치하 칠레 문단의 변두리 여성작가가 산티아고 교외 호화 주택에 문인들을 초청해 자주 파티를 열었다. 이곳에 드나든 문인들은 한둘이 아닌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여인의 남편은 칠레 정보국에 종사하는 미국인이었고 그 저택의 지하에는 고문하는 방이 있었으며 그곳에서 죽어간 이들도 많았다. 후일 정권이 바뀌고 그 사실이 알려지자 그 여인의 파티에 참석했던 문인들은 모두 발뺌하기에 바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두 시인 파블로 네루다나 옥타비오 파스도 그 공격에서 비켜나지 못했다. 네루다는 지나친 민족주의와 민중 함몰 때문에, 파스는 반대로 지나치게 상아탑 속에 갇혀 있었다는 이유로 가차없이 비판당했다. 마술적 리얼리즘의 전통을 이었다는 베스트셀러 작가 이사벨 아옌데도 ‘엉터리 작가’로 그에게 폄하당했다. 그녀는 볼라뇨가 죽었을 때 한 신문 인터뷰에서 “그가 죽었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매우 불쾌한 신사분이었다”고 인신공격도 마다하지 않았다.


볼라뇨는 안타깝게도 소설가로 문단에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지 불과 5년여 만인 2003년 7월14일 간 질환으로 죽었다. 시만 쓰다가 아이들이 태어나자 소설로 전향한 그는 1996년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을 출간하기 전까지는 몇 권의 시집을 낸 이름 없는 문인이었다. 


그를 일약 라틴 아메리카 최고의 문인으로 부각시킨 건 장편소설 ‘야만스러운 탐정들’(1998)이었다. 이 작품으로 라틴 아메리카의 노벨문학상으로 꼽히는 로물로 가예고스 상까지 수상하면서 폭발적인 관심 대상으로 부각됐다. 오랫동안 앓아온 간 질환으로 죽음을 예감하면서 신들린 듯 써내려간 방대한 소설 ‘2666’은 사후에 출간됐지만 여러 문학상을 받았고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유력매체들이 2008∼2009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하면서 기립박수를 보냈다. 이 작품은 멕시코 북부도시에서 실제로 일어난 수백명의 여인 살해사건을 모티브로 악의 궁극을 가감없이 보여주면서 한다.


국내에는 12종 17권으로 완역한 ‘로베르토 볼라뇨 컬렉션’(열린책들)이 출간됐다. 대표작 ‘2666’과 ‘야만스러운 탐정들’은 물론 ‘칠레의 밤’ ‘부적’ ‘먼 별’ ‘전화’ ‘제3제국’ ‘참을 수 없는 가우초’ ‘팽선생’ ‘안트베르펜’ ‘살인 창녀들’ ‘아이스링크’가 그 목록이다. 각 권의 표지 그림은 쿠바 작가 알베르토 아후벨에게 따로 청탁해 받아냈다. 


- 우석균 교수(라틴아메리카 연구소)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의 글 발췌 -








마무리.


작가 볼라뇨는 불타는 도로를 달리는 냉동트럭을 운전하는 '나' 위의 '나'를 작품안에 그려낸듯이 느껴졌다. 불타는 도로는 무엇이고 냉동트럭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생각했다. 길이 없어지고 나면 운전자는 자신의 냉동트럭을 멈출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길이 없어지기 전에 빠르게 질주해야만 하지 않을까 자신이 가진 유일한 냉동트럭이라면 그것을 가지고 목적지까지 쉼없이 달려야 하지 않을까.. 내 자동차는 다시금 시간의 터널 속으로, 시간의 속살을 갈아 부수는 거대한 기계 속으로 들어갔다. (중략) 냉장고 같은 거리로 장례 행진을 하면서 나는 그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관 속에요. p153-154


쿠데타의 주역 피노체트의 명분과 지식인들의 자기 합리화와 침묵 그리고 전달자의 의무 더이상의 소르델로는 없을 것이라는 암울함 등이 느껴졌다. 지랄맞은 권태는 체념과도 같은데 앞으로 그런 체념이 미래에 더 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학은 어디에 있는 걸까? 유다의 나무.


신부 우루티아는 가련한 사제가 되어 그들의 시인들 지존의 낭송을 감미롭게 즐기면서 침묵했고, 추종자가 되어 흠모하고 선망자와 토론하기도 하며, 한편으론 흠집내고 욕을 하기도 했다. 다양한 모습이 자신 안에 깃들어 있었다. 한마디로 요약할 수 없는 그런 것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들.. 해결책에 대해 되묻는다.


바뀌지 않는 인간에 대한 경고를 내릴 수 있을까 역사는 반복되고 반복되고 되돌아오고 되돌아온다. 호모 오푸스 데이(Opus Dei : 보수적이고 엄격한 로마 가톨릭 평신도 및 사제 조직. 철저한 자기 관리와 직업을 통해 가톨릭의 이상을 실천하고자 했다).  작가는 그런 실천을 하고자 했을까. 그 후 지랄 같은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p156



내가 존경하던 얼굴들, 내가 사랑하고 증오하고 질투하고 경멸하던 얼굴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내가 보호해 준 얼굴들, 내가 공격한 얼굴들, 내가 방어하던 얼굴들, 내가 헛되이 찾고자 한 얼굴들이.
그러니까 그 가련한 늙다리 청년이 바로 나란 말인가?
<칠레의 밤>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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