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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Sep 30. 2015

모래의 여자 - 아베 코보'살아있는 표정의 여인'

사구에 흐르는 바람무늬


달의 계곡과도 비슷한 모래사막은 여인의 나신이 누워있는 것 같다.

여자의 저 몸짓과 침묵은 터무니없는 의미를 갖고 있다.



<모래의 여자>를 읽기 전부터 화자인 남자보다 모래의 여자가 대체 누구인지 너무나 궁금했다. 남자는 우연하게 이 부락에 닿았다. 메마른 모래땅을 헤매다 마을의 한 노인을 만나 하룻밤 묵어갈 집으로 안내받는다. 그곳은 부락 가장 바깥쪽 사구의 능선에 접해 있는 구멍 가운데 하나였다. 지붕보다 세배는 높은 모래언덕을 사다리를 타고 내려간 곳엔 여인의 판잣집이 있었다. 안은 다다미가 썩어 문드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그는 함정 속으로 유인된 듯 보였다...



대형 시계의 진자처럼, 움직이는 집.... 요람 같은 집.... 사막의 배....
그리고 그런 배들이 모여 형성된 쉬지 않고 움직이는 집, 마을, 도시....
이곳은 이미 모래에 침식되어 일상적인 약속 따위는 전혀 통용되지 않는 특별한 세계....
타인을, 칠판 위의 분필 자국처럼 깨끗하게 지워버릴 수 있다고 믿는 세계.....



그 여인은 오로지 모래를 치우기 위해서 살고 있었다. 제대로 된 사방림砂防林 만들지 않고 싸게 먹히는 방법으로 궁핍한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사막에도 꽃은 피고 벌레와 짐승도 산다.... 강한 적응력을 이용하여 경쟁권 밖으로 벗어난 생물.... 그가 타고 내려온 사다리는 사라지고 여자와 함께 고립된다. 우산 아래에서 밥을 먹고 모래를 퍼다 날랐다. 그저 끝없는 모래와 하늘뿐.... 눈 속에 갇혀버린 것처럼....

나만 문제가 아니야. 당신도, 마찬가지 피해자가 아니냐고! (중략) 노예 취급을 받으면서 그렇게 대변자 같은 얼굴 하지 말라고!..... 아무도 당신을 여기에다 가두어놓을 권리는 없어!.... 그러니까, 빨리 불러! 여기서 나가자고! p63   



벽 너머로 들려오는 부삽 소리....
여자의 숨소리....
삼태기를 나르는 남자들의 구령 소리....
바람 소리에 섞여 웅웅거리는 삼륜차 소리....
멀리서 개 짖는 소리...
이곳은 낮보다 밤이 오히려 생기발랄하다.



그가 이곳으로 흘러들어갔던 이유는 모래땅에 적응력이 강한 곤충을 찾기 위해서였다. 사막 같은 곳에서도 살아남은 새로운 종을 발견하고 곤충도감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다면 보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임의 성가심과 무의미함으로부터 잠시나마 탈출하기 위해 휴가차 왔을 뿐인데.... 8월 어느 날 실종되어 7년이 흐르고 끝내 서류상 31세였던 니키 준페이 사망처리된다.



모래 알갱이 크기 1/8mm다. 모래는 일단 날아올랐다가 다시 낙하면서 바람을 따라 이동하게 된다. 1/8mm 크기는 가장 멀리 이동될 수 있는 크기의 입자다. 사막은 건조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흐름으로 인해 어떤 생물도 일체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모래의 흐름이 과거, 번영했던 도시와 대제국마저 멸망시키고 삼켜버린 적이 있다. 직경 1/8mm의 유동하는 모래의 법칙을 끝내 이겨내지 못 했다. 모래의 생명....

바람이 불고 강이 흐르고 바다가 넘실거리는 한, 모래는 토양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어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어 다닐 것이다. 모래는 절대 쉬지 않는다. 조용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지표를 덮고 멸망시킨다... p19



이야기를 읽으면서 풀어지지 않는 채증이 밀려왔다. 일본 우토로 마을에 남겨진 조선인들은 배수시설조차 없는 곳을 왜 떠나지 못했던 것일까? 우토로 주민들도 모래의 여자도 가족을 잃고 남아서 그곳을 지키려 했던 이유.... 다 사라지고 나면 지키려 했던 이유는 남는지.... 모래 알갱이 하나는 직경 1/8mm에 불과하지만 한 덩어리가 되어 유동하는 모래산은 파도 파도 끝이 없다. 그런 곳에서 빠져나올 길이 없다. 그런데 왜 자살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이런 일련의 물음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나를 살게 하는 고도는 끝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태양을 저지하려 했던 뫼르소는 사라지고 완고한 인간만 남았다... 베케트와 까뮈, 아베 보코... 20세기의 작가들은 한결같은지도 모르겠다. 사회에서 획일화된 개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를 증명하려면? 여기에 대한 답을 구하려고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혔을 것이다. 더 이상 묻지 않는 것에 대한 자유도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으로 나가 봐야, 딱히 할 일도 없고....
볼일도 없는데 나다녀봐야, 피로하기만 할 뿐이니까요....
걸어봤어요....정말이지, 끔찍하도록 걸었어요....
이곳에 올 때까지.....애를 안고, 오래오래....
이제, 걷는 데는 지쳤어요.....



그의 탈출이 여려 차례 실패로 돌아갔다. 남자의 주절거림이 무척 거슬렸다. 속 말이 끊임없다. 생각을 끊어낼 수 없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 또한!  똑같은 반복, 늘 다른 일을 꿈꾸면서 몸을 던지는 여전한 반복..... 그런 것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 정당하게 나를 사용할 수 있는 방법, 인간에게는 자기가 갖고 있는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의무가 있다.라고 외치지만.. 메아리 없이 울려 퍼질 뿐이다.... 남자가 자신을 괴롭혀 왔던 것들이 무엇이었을까? 그 해답은 갈등 없는 표정, 살아있는 표정을 지닌 이 여인에게 있을지도 모르겠다. 모래가 유동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은 유동 자체가 모래라는 그 말.... 세계는 모래 같은 것 나는 이해할 수 있을까?

인간은 다른 세계를 꿈꾸느라 바로 여기가 다른 세계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절대적 모순을 사는, 그리하여 늘 몸부림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p241 (옮긴이 김난주)


                                                                                     

불현듯, 새벽빛 슬픔이 북받친다.....서로 상처를 핥아주는 것도 좋겠지.
그러나 영원히 낫지 않을 상처를 영원히 핥고만 있는다면, 끝내 혓바닥이 마모되어 버리지 않을까?납득이 안 갔어....어차피 인생이란 거 일일이 납득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 아베 보코는 1963년 <모래의 여자>로 요미우리 문학상, 1964년 <모래의 여자> 영화 칸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 1968년 프랑스 최우수 외국문학상 수상하였다고 한다. 일본 작품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마지막 엔딩은 참으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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